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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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답장이되어줄게 #백승연 #텍스티



 

어딘가를 여행하면 방문하는 장소에 어김없이 우체통이 있다. 이번에는 포항이었다. 호미곶과 일본인 가옥 거리에 갔을 때도 있었다. 지난 3월 대구 여행에서 김광석 거리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엽서를 골라 탁자에 앉아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시간이 지난 후 받아본 편지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점점 짧아진다.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는 훗날 부끄럽지 않게 단문으로 쓴다. 편지라는 매개체는 느리게 전하는 메시지다. 어떤 편지는 1년이 걸리고, 어떤 편지는 6개월이다. 가장 짧은 건 2~3일의 기간이다. 지금도 개인 간 손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손편지를 받아본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백승연의 소설이 좋았다. 아날로그적 감성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울에 존재하는 편지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출간된 후, 마치 추억에 잠기듯 책을 읽었다. 편지가게 글월에서는 영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편지로 전하는 언니의 마음이 힘들어서 그것을 피해 서울로 도망친 효영이 주인공이었다. 대학 동기 선호의 권유로 편지가게 글월에서 일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편지가게 글월의 맞은편 연화아파트에 사는 영광과 효영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에 소설이 끝나 아쉬웠었다. 이 작품의 후속작 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는 효영이 영광과 짧은 사랑을 하고 헤어진 후 편지가게 글월성수점 매니저가 되어 글월을 이끌어가는 효영이 다시 돌아온 영광과 마주치며 소설이 시작된다.

 





후속작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영광과 라이벌이 될 인물로 동규가 등장한 것이다. 동규는 효영이 영화 커뮤니티에서 만나 친했던 인물로 파혼 뒤 요리를 배워 레스토랑을 열었다. 글월 성수점에 왔다가 펜팔을 시작하는 인물이다. 효영과 러닝메이트로 지내는데 누가 봐도 효영에게 마음이 있는 듯하다. 아주 늦게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된다. 효영을 사이에 두고 동규는 영광이 신경 쓰이고, 영광은 동규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질투에 가깝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듯 불현듯 깨닫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낸다. 용기를 낸 자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전작이 연희동을 배경으로 했다면, 후속작은 성수동을 배경으로 했다. 패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장소에서 사랑이야말로 느리게 걷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편지는 실제 연애편지를 공모받아 몇 편을 실었다.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이었다. 성수동을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낭만적인 장소로 탈바꿈한 것 같다.



 

사랑은 가만가만히 다가와 스며드는가 보다. 사랑이 희미해졌을 때조차 처음 설렘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고 흐뭇해하지 않나. 지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한 번씩 꺼내 보는 편지와도 같은 것. 서간집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마음의 표현이기에 상대방의 마음이 너무도 궁금한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그것들이 궁금해 자꾸 읽게 된다.



 

책 뒤편에는 공모한 편지 사본과 편지가게 글월을 찍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예쁜 편지지를 골랐을 그 마음이 먼저 엿보인다. 고심하며 썼을 시간의 흔적이 보였고,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편지를 쓴 순간이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편지는 결국 나를 내보이는 것. 아는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게 편지가 가진 역할이다.



 

만약 편지가게 글월이 주변에 있다면 과거 펜팔을 했던 경험을 살려 누군가와 편지를 나눌 것만 같다. 내 편지를 받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손꼽아 답장을 기다리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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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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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온여름 #성해나 #창비

 



2025년을 뜨겁게 달군 혼모노의 작가, 예스24, 2024년 젊은 작가상 1위에 선정된 작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살의 기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한 살의 재하와 가족이 되었다. 새어머니는 기하와 친해지려고 다가서지만 기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재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노력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면 모르겠지만,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 새로운 가족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성인이 된 기하가 4년 동안 가족으로 지냈던 재하와 재하 어머니에 대하여 좀 더 다가서지 못했던 후회의 감정을 말한다. 그와 동시에 재하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기하 형과 다정한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새아버지를 기억한다. 조곤조곤 말하듯, 편지 형식으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서술한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에게 저기혹은 그쪽이라고 불렀다. 반면 재하는 아버지와 금세 친해져서 우리 막내,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기하는 곁을 내주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다시 만나면, ‘잘 지냈니?’라는 말을 할 것 같았다. 늘 혼자 찍던 사진을 재하가 온 뒤 가족사진을 찍어 기하의 사진이 놓인 자리에 가족사진을 두었다. 왜 재하와 재하 어머니께 다정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시간을 지나, 마치 지난 안부를 묻는 듯하다.

 



농밀하게 자란 오리나무 사이에서 한 무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푸른 기운을 띄던 숲이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38페이지)



 

아무래도 소설의 제목을 암시하는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버지가 자주 출사를 나가곤 하던 인릉을 방문할 때면 홍살문을 빠져나올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남겨둔 거 같은 마음. 누군가가 붙잡는 거 같은 느낌. 아버지에 관한 서운함이 재하 모자를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다정함을 처음 느껴보는 재하에게 기하는 어렵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모두 친형제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반추한다. 친형제였다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열한 살의 재하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새아버지에게, 형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든 노력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인 척하며 산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진짜 가족은 느끼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비록 4년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 있지 않았을까. 먼 훗날 떠올려보며 그때 조금만 마음을 열었다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반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재하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 한편으로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는 상상 말이다. 재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재혼하지 않더라도 형제만큼은 친형제처럼 고민을 얘기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상당히 냉정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뀐 전화번호를 주지 않고, 그런 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먼 훗날 우연히 마주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해나의 문장이 좋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풀어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감동은 배가 된다. 어긋났던 관계를 뒤돌아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고 대하지 않을까.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두고온여름 #성해나 #창비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장편소설 #장편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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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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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이시봉의짧고투쟁없는삶 #이기호 #문학동네

 

이기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무려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기다렸던 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반려견 이시봉이다. 작가가 키우고 있는 반려견에게 역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반려견의 이름도 다름 아닌 이시봉이다. 이시봉이라는 이름은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이다. 새로운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그 생명력을 드러낸다.

 



이시봉은 이시습의 반려견이다. 도로에 뛰어든 이시봉을 구하려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시봉을 무시하고 이시습 또한 이시봉에게 애정을 주지 못한다. 다만 새벽에 이시봉을 데리고 야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려면 그 시간이어야만 했다.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이시봉이 뛰어갔다. 누군가 죽이려는 고양이를 이시봉이 구했다. 그 영상을 찍고 있던 리다가 SNS에 올린 후 앙시앙 하우스에서 거래를 제안해왔다. 이시봉을 그들에게 팔라고 했다. 이시봉의 혈통이 프랑스의 귀족 비숑 프리제라고 하면서 말이다.






 

소설은 세 가지의 갈래로 이시봉을 향한다. 그 첫 번째는 앙시앙 하우스의 정채민 대표와 파리에서 만난 김상우, 박유정이며 두 번째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스페인 왕국 고도이와 알바 공작부인 그리고 마리아 루이사 왕비 이야기로 향한다. 다른 하나는 이시봉을 데려다 키운 아버지가 회사의 파업에 참여한 노조 간부로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희망 퇴직원을 내는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낸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은 유머러스하고 휴머니즘을 다룬다. 물론 이 작품은 인간적인 것보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과 교류하는 동물을 보라. 특히 반려견은 인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인간을 돌보고 인간을 따른다. 비록 죽음이 다가온다고 해도 말이다. 개처럼 영리한 동물이 없는 것 같다. 산책을 가자고 하면 현관에 미리 가서 인간을 기다린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달려오고 인간의 기분을 살핀다.

 



인간은 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산다. 희망,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희망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희망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을 속이고 과시했던가! 개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에 들뜨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희망만 면밀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도 서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204페이지)

 



이번 작품에서 특별했던 점은 작가가 살았던 지역과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랐던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작가가 현재 머무는 광주광역시와 근교 나주가 그곳이다. 시습의 아버지가 처음 이시봉을 데려왔던 장소가 나주였고, 시습과 시봉이 살고 있는 장소 또한 광주다. 친숙한 지역이 거론되어 반가움마저 든다.

 



이시봉이 개 농장에 맡겨지기까지의 과정은 정채민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시습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조 간부가 된 인간 이시봉와 김태형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점이다. 이야기가 확정되어 시습과 시봉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 죽음의 책임을 이시봉에게 전가하고 보살피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이시봉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키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인간이 곁에 있는 개나 고양이를 왜 반려동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반려인으로서 동물이 주는 위로를 알고 있다. 시습의 아버지가 우리집 막내라고 했듯 우리집에서도 고양이는 우리집 막내. 가족 모두 엄마, 아빠, , 누나로 불린다. 우연찮게 우리집에 온 고양이는 가족이 되었다.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개를 보면 반갑고 예쁘다. 책이 출간되기 전, 책을 다 읽고 작가의 인스타에 방문했더니 이시봉이 달리고 있었다. ‘이시봉, 이리와!’ 소리에 달려오고, 달리는 이시봉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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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0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작가가 오랫만에 낸 책이 반갑네요. 소재는 독특하지 않은데 이름이 특이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재밌을거 같아요. 뭐 언제나 이기로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기대해봅니다.
 
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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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여름완주 #김금희 #무제



 

어렸을 적엔 겨울을 좋아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여름이 좋다고 말했다. 더위를 잘 타지 않아 땀을 많이 흘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전에 비해 뜨거워져서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내게 여름은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는 계절이다. 어느 계절이야 그렇지 않겠냐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건 시간의 소중함이다. 아마 애틋함이라고 해야겠다.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이다.

 



김금희 작가의 최근작을 읽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의 신작 소식은 반가웠고, 그 출판사가 배우 박정민이 대표라는 게 호기심이 생겼다. 더군다나 시각 장애인을 위하여 듣는 소설로 출간되었다고 해서 더 궁금했다.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 시리즈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오디오북을 먼저 발간한 후 이어서 종이책을 출간한다. 그 첫 번째를 연 작가가 김금희다.

 







소설의 내용을 보자. 창세기 비디오 대여점의 딸 손열매는 할아버지를 위해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스탠리 입키스의 대사를 성대모사했다. 그런 경험으로 성우가 된 열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룸메이트였던 고수미가 연락을 끊은 뒤 보증금마저 까먹고 있을 때 열매는 고수미의 고향 완주 마을로 향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완주 마을에 도착해 수미의 엄마가 하던 장의사 안의 매점에 눌러 앉는다. 매점에서 뜨거운 믹스 커피를 팔던 열매는 그곳을 방문하는 마을 사람 모두를 알게 되고 옆집의 어저귀와도 친해진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는 양미도 챙겨야 한다. 그들을 챙기느라 열매의 우울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은 희곡처럼 지문과 대사가 있다. 그런 까닭에 쉽게 읽히고 금방 읽게 된다. 감동 또한 크다. 등장인물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어저귀(강동경)만 달랐다. 나무의 소리를 듣고 숲의 모든 것과 교감하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감정을 묘하게 건드린다고 해야겠다.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돌보고 반대로 위안을 얻는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여럿이 모여 함께 일하기보다는 혼자서 일하는 경우도 많으며, 관계에 대하여 소홀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복작복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싸워주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가 있다. 갈 곳을 잃은 열매에게 수미의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머물게 한 수미의 엄마도 따뜻하다. 시골의 과한 관심이 좋지 않다고 여겼는데 소설에서는 그게 다정함으로 비친다. 그게 문제다. 자꾸만 현실에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소설에서는 바라게 되는 것이다. 공감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여긴다는 거다.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얻는 것들이 있다. 잃었던 나의 미래가 눈앞에 보이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학교라고는 담을 쌓았던 양미가 열매의 말을 듣고 친구들이 오기 전에 미리 학교 갈 준비하는 걸 보면 저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배려, 그리고 따뜻함이다. 누군가는 인간성을 잃어간다고 하는데, 살펴보면, 우리가 교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 한 조각을 내어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떤 방식으로 살더라도 현재까지 우리는 뛰고 있다. 저 멀리 완주가 눈앞이다. 아니, 여전히 완주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어디까지 왔던 현재까지가 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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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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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헤세 #북하우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서너 번쯤 읽은 것 같다. 여러 번을 읽어도 이 작품을 확실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데미안작품을 만나면 읽어 보고 싶다. 특히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나온 작품은 독문학자이자 독일문학 번역가인 전혜린 타계 60주기 기념 복원본이다. 외래어 표기와 맞춤법은 변경했으나 복원본이기에 60년대 특유의 어법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유려한 문장, 유려한 번역이라는 걸 실감했다. 데미안은 처음 전혜린이 번역했을 당시 파격적일 정도로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책이다. 더욱 유명한 일화는 전혜린의 친구가 데미안을 빌려가 돌려받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는 문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데미안이 무슨 작품이기에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을 붙잡고 있었나.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나와 달리 다른 독자들은 데미안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할 수 있나 궁금하다. 몇 번을 읽어도 머릿속에 부유하는 것들 때문에 제대로 읽었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성장소설로 분류한다. 하지만 한창 성장하는 중,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나 또한 아들이 중학생일 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데미안을 추천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는 소설이며, 읽으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었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다만 읽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해를 했든 하지 못했든 삶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로 소설을 발표한 작품이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난 후 삶의 변화를 이끄는 작품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삶의 방황기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 신의 또 다른 이름 '아프락사스'에 관한 탐구가 이어지며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찾는 과정이 크다. 어린 소년은 살아가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종교적인 삶, 학구적인 삶, 정치적인 삶 같은 거 말이다. 궁극적인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삶보다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있다. 마지못해 사는 삶이 행복하지는 않다. 자꾸 엇나가고 미끄러질지 모른다.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 손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그런 인물이었다. 과거 더 어렸던 소년 시절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해결해준 사람이 데미안이었으며 종교와 삶의 기로에서 방황할 때 떠올린 것도 데미안이었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소녀를 베아트리체라고 이름을 짓고, 밤마다 꿈을 꾸며 그 모습을 그린 후 들여다보았을 때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은 데미안과 비슷했다. 데미안을 넘어서는 인물로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인물이었다.

 



이마에 표지가 있는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 마치 연락을 받은 사람처럼 나타난다고 가정해보라. 특별한 능력을 있는 자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데미안과 데미안의 어머니 그리고 싱클레어가 특별한 표지를 갖고 태어났다.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전달된다. 만날 즈음이 되면 서로를 찾으며 어느 장소에서 스치듯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마치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매혹적인 소설이다. 삶의 고민, 삶의 방향과 기로에 서 어느 길로 갈지 판단할 수 없을 때 나에게 다가온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등대가 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방향대로 길을 가는 것보다, 삶의 본질적인 고민과 동시에 방향성을 갖게 된다. 살아가면서 두려움은 필연적이다. 어떤 길로 나서든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길을 향해 나서고, 가로막혀 있으면 뒤돌아 나오면 된다. 어떤 길로 가든 내가 선택한 길은 후회가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걸어갈 수 있다. 아프락사스를 향해 탐구하고 나아갔던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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