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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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전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불행과 관심을 독식했던 전수미와 달리 부모의 관심과 돌봄을 받지 못하고 홀로 견뎌야 했던 전수영을 대변하는, 세상 모든 곳의 전수영을 위한 이야기다.



 

전수미는 전수영의 한 살 터울 언니다. 전수미를 전수미라 부르거나 수미년이라고 부른다. 호칭에서 전수영이 전수미를 대하는 마음이 보인다. 전수영이 바라보는 전수미는 나쁘다. 전수미를 위해 떠난 캠핑에서 아무렇지 않게 텐트에 불을 지르거나 엄마와 수영이 단둘이 외출했을 때 낯선 남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을 죽였다고 엄마가 연락을 했다. 재판을 받으며 변호사는 각종 사건에 연루된 전수미를 위하여 목격자로 나서주길 원하지만, 우리가 보는 전수영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가족은 개뿔.






 

지금의 전수영은 노견돌봄센터에서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 쇠약해진 개들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하는 돌봄센터다. 수의사인 양 원장이 금요일 오후 직원들에게 퇴근하라고 하는 날이면 수영과 소란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개에게 무척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양 원장이지만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반려동물을 맡긴 보호자들은 CCTV로 개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 때로 보호자들은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고 불평불만을 쏟아놓는다. 보호자들의 연락이 뜸해지거나 면회하러 오지 않을 때 양 원장은 금요일 오후 직원들을 퇴근시킨다.



 

개가 입원한 돌봄케어센터의 직원들과 죽어가는 개들을 보니 요양병원이나 요양원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입원비와 치료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보호자들과, 삶이 바쁘다고 부모를 보러 오지 않은 가족들의 모습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관심과 돌봄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필요하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은 환자들은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진다. 동물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배를 쓸어주고 귓가를 만져주면 인간에게 최선을 다한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유기하려는 순간,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순간, 마치 피부에 스치듯 느끼지 않을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연명 치료는 숙제다. 편안하고 안전한 죽음이 존재하기는 할까. 지나친 연명 치료에 모두 병들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전수미에게서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전수미가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곳의 뒷면이었다. 온 세상이 내게 전수미였다. (117페이지)

 



세상의 모든 불행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전수미와 달리 수영은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온 자 특유의 감각이 발달해 있다. 흡사 짐승처럼 예리하고 돌연한 날것의 감각이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런 식으로 생존해왔던 전수영은 이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며 감각이 무디어졌다. 개들을 돌보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감각이 먼저 열려 수정을 고통스럽게 했다. 수영이 사는 방법은 수미와 다르게, 수미 보다 더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언제나 수미가 빨랐다.



 

수영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놀라운 발견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행동했을 거로 보였던 전수미가 계획하에 어떤 행동을 했다는 거다. 엄마 아빠도 알지 못하게, 오직 전수영만 알게 했다. 진실은 항상 나중에야 드러난다. 수영이 수미와 경쟁하듯 감정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 다른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수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저 바라보아야 하고, 나를 감추는 일이 힘들었을 것이다. 수영이 전수미와 다른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는 순간은 짜릿했다. 수영 만의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이제 수영은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꽃이 피면 시들어버릴 걸 염려해 수영은 꽃이 피지 않는 세 개의 화분을 그린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작은 희망의 메시지로 보였다. 식물을 돌보고 동물을 돌본다는 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곳의 전수영,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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