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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 그리고 소설가 조해진의 수요일 ㅣ 다소 시리즈 1
조해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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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해변을 상상했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여름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이다. 다정한 위로의 말들을 건네며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로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해변이 아닌 워시토피아의 통창 안이다. 건조기와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파도 같고, 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이 해변처럼 보여 연인들은 이 장소를 해변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풍경은 어디쯤일까.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낯익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 서로의 감정을 나눈다는 게 퍽 낭만적으로 보였다. 힘든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만족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는 단편 「여름밤 해변에서, 우리」를 경장편으로 확장하였고, 소설의 뒷면엔 어느 달의 수요일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작가의 소설과 작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 편의 소설과 한 사람의 하루를 내세워 ‘다소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다산책방에서 출간된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이다. 다른 책과 달리 PVC로 된 책표지로 가방 한 귀퉁이에서 굴러다녀도 찢어질 염려가 없는 장점이 있다.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는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먼저 김은희는 50대의 여자로 두 번째 암이 발병하여 요양하고 있다. 무무 씨가 키우던 고양이 양평이와 오모리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 몇 달간 럭키타운 402호를 빌려주기로 했다. 럭키타운으로 오는 길은 세계의 지도에 있는 듯 가게의 이름이 다양하다. 삿포로와 바빌로체를 걷고 있을 수연 씨를 상상하는 은희는 집으로 초대를 한 그 사람을 기다렸다. 양평이와 오모리를 만날 사람, 자기의 추억이 온전한 곳에 타인을 들인다는 것 자체를 기대하는 듯해 보였다. 은희가 살고 있는 럭키타운 402호는 무무 씨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어 마음껏 그리워해도 문제가 없는 소박한 장소다.
동준의 소개로 럭키타운 402호를 알게 된 수연은 24리터의 캐리어 하나를 끌고 402호로 도착했다. 작은 방의 고양이들을 위해 신선한 물과 사료를 주었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배를 드러낸 양평이의 사진을 찍어 은희 씨에게 보냈다. 럭키타운 402호에 머물며 은희 씨의 흔적을 살핀다. 메모장을 열어보고, 붙어 있는 엽서의 그림을 바라보며 은희 씨와 무무 씨의 존재를 알아간다.
은희와 수연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방식이다. 서로의 접점인 동준이 속한 연구소의 일원이기도 했던 은희와 수연의 학교 동기인 동준이 간간이 등장한다. 짧은 소설임에도 서로의 마음을 무람없이 드러내는 은희와 수연 때문에 럭키타운 402호를 가기 위한 거리를 세계 지도를 그려놓은 듯한 풍경 묘사에 동화되었던 것 같다. 워시토피아의 창가에 앉아 통창 밖을 바라본 적이 있던가.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행자처럼 보였을 풍경이 어딘가 세계의 어느 한 곳에 있는 듯했다. 어깨를 마주 댄 채 창밖을 바라보는 쓸쓸하고도 다정한 연인들을 그렸다.
상무라는 이름이 직급으로 오인될까 봐 무무로 불러달라던 무무 씨는 이제 세상에 없다. 회사의 바쁜 업무에 치여 3~4일쯤 연락을 하지 않다가 찾아갔을 때 차갑게 식은 무무 씨를 발견한 은희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나.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은희의 마음은 무무 씨와 함께했던 여름밤의 해변으로 가지 않았을까.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여성이 서로 통화를 하고, 고양이의 안부를 전하는 ‘여성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인의 삶에 위로를 건네기는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반려동물을 돌보는 이야기를 하며 공통의 화제가 생겨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무무 씨와 은희가 해변이라 부르는 장소는 이들의 접점이 될 것이다. 눈빛을 나누며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타인과 교류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아무래도 작가는 보통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외국의 지역명을 입힌 가게 이름을 두고 어느 나라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묘사했고, 워시토피아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해변에 비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름의 더운 바람이 그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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