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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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사랑법 #박상영 #창비

 

영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명의 원작 영화. 김고은과 노상현 주연으로 정신없이 한 시절을 보내는 청춘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술 마시고, 남자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우정이란 게 무엇인지, 사랑이란 걸 탐구해가는 청춘들의 아픔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명 원작 중의 재희편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재희와 영의 첫 만남이 시작이다. 불문과 동기들이 보았다면 입방아에 올랐을 상황을 목격하고도 그를 단번에 이해한 인물로 비쳤다. 영이 마음을 트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술 마시는 게 일상인 재희는 남들과는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영과 소울 메이트에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재희가 머물던 방의 창 밑에 숨어있었던 남자 혹은 스토커 때문에 함께 살게 된 과정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라 하겠다.





 



영화는 좀 더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조명, 그 안에서 춤을 추는 영과 재희의 모습, 배우들의 말투와 몸짓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남자라고 해도 남자와 함께 사는 연인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드문 상황이다. 재희의 남자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재희는 남자 친구에게 룸메이트의 이름을 지은이라고 했고, 영에게 재희는 재호라는 이름으로 통칭했다. 영화에서 재희가 산부인과에서 훔친 자궁 모형을 들고 뛰던 장면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던 재희와 영의 모습이 젊은 날의 성장통처럼 느껴졌던 건 비단 나뿐일까.

 



다양한 문학 작품이 출간되고 있다. 처음 퀴어 문학을 읽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성적 취향이 다른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일인 것 같다. 이해와 포용을 기르는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암 투병하고 있는 엄마를 간병하며 만났던 형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엄마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사랑이라는 그 미묘한 감정을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골목에서 남자와 키스하던 장면을 보았던 엄마는 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이 보통의 엄마와 닮아있었다. 영화에서는 엄마가 영화 한 편을 보고 와서 아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부모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 또한 엄마가 영을 이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둘의 간극을 좁히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렇지만 매우 닮아있다는 게 놀랍다.



 

동명의 작품 대도시의 사랑법은 규호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만료된 여권을 들고 공항에 온 것부터 시작이다. 제주에서 형 때문에 올라온 규호는 간호학원을 다니며 클럽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클럽에서 만난 규호와의 연애는 규호의 배려와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야겠다. 규호가 외국으로 떠나고 다시 대도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씁쓸하지만 한 시절의 사랑은 여타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 영은 방콕에 왔다. 방콕에 와서도 규호를 생각한다. 규호가 떠난 후 영은 규호의 침대부터 버렸다. 방을 가로막던 침대는 규호의 분신과도 같았다. 하비비와 함께 지내면서도 그는 규호를 생각한다. 규호와 방콕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데, 마치 규호는 영의 첫사랑인 것만 같다. 잊지 못할 첫사랑의 기억들 같은 거. 풍등을 날리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소원을 적어 높이 떠오르는 풍등의 아름다움. 추억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55페이지)

 



K가 영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의 내용이다. 재희에서 이 문장이 몇 번 나오는데, 씁쓸한 사랑의 한 모습을 나타낸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지 못하는 한 시절을 나타내는 것 같다. 사랑이 그렇잖은가. 잊지 못하는 첫사랑의 기억들.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사랑하지 않나. 문학 작품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 왜 이 영화가 사랑을 받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영화에서 내뿜는 관계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관계겠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특히 노상현 배우가 재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재희가 친구임을 강조하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었다. 책 속에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과 에피소드가 있어 그제야 영화 속 감정이 더 와닿았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좋은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잖은가.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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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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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소설을 읽는데 어쩐지 읽었던 것 같았다. 권은과 인터뷰, 사진작가 그리고 스노우볼과 카메라라는 단어의 조합이 익숙했다. 어쩌면 어떤 소설의 확장판이 아닐까. 블로그를 뒤졌더니 단편 빛의 호위였다. 작은 빛이 모이는 순간들을 그렸던 소설이 더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눈을 내리는 장면을 본 승준이 권은의 인터뷰 장면을 떠올리며 소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제가 알았던 사람이란 것을 몰랐지만 우연히 알게 되며 애틋함을 느낀다. 과거 권은의 집에 찾아갔던 순간,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다주며 급기야 아버지의 카메라까지 권은에게 주었던 장면을 떠올린다. 그 카메라 때문에 권은은 사진작가가 되었다. 카메라에 잡힌 사람을 찍으며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을 것이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히지 않게 하는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했다.

 






권은이 블로그에서 반장을 향해 편지를 쓴다는 걸 알게 된 승준은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소식을 전한다. 권은이 승준의 딸 지유에게 쓰는 편지는 삶의 연대를 보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여성의 연대를 말한다. 나스차의 인터뷰를 반대했던 승준의 아내 민영의 감정 변화는 감동이다. 더불어 살마를 받아들이는 애나와 나스차를 런던으로 불러들이는 살마의 행동은 배려와 다정함에서 온다. 난민이었던 인물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산 사람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이렇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가 형성되고 그 모든 것들은 또 다른 희망으로 향한다.

 



소설의 주제는 전쟁으로 인한 연대와 희망 그리고 삶이다. 살아있다는 것이야말로 희망이며 빛이다. 작은 빛들이 모여 삶을 향한 희망을 나타낸다. 빛의 호위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의 시작이었다면 빛과 멜로디는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가 좀 더 확장된 스토리다. 승준이 나스차를 인터뷰하게 된 이유도 그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승준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던 민영의 바람 또한 나스차의 임신 소식을 듣고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그녀가 물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일이라고. (120페이지)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고 싶으니까요.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히지 않게 하는 사진을 찍는 거. 그게 내가 사는 이유예요. (128페이지)



 

권은이 애나 앤더슨을 만나게 된 이유도 그가 사진가 게리 앤더슨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고문 때문이었다. 오빠의 사진에 관한 기고문을 읽은 애나는 권은을 초대해 아버지와 오빠의 불화 그리고 그런 상처를 지닌 아버지를 사진에 담는 일을 맡겼다. 권은은 난민캠프에서 살마를 만나 사진으로 이끌어 그를 살렸다. 살마는 승준이 인터뷰했던 나스차를 돕기로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이 모든 행동이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졌다.



 

민영은 순간 삶이라는 높은 대지에 손가락 하나를 걸치고는 힘껏 매달려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지유가 민영을 붙들었다. 삶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을 대신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듯‥‥‥ (215페이지)

 



전쟁의 상흔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를 떠돈다. 어떤 장소에 정착하여도 다시 돌아갈 곳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쓸쓸하고 외롭다. 그 공간을 사람으로 채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며 작은 빛이 모여 큰 빛이 되는 과정을 나타낸 소설이었다. 연대와 환대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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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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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이름들의낙원 #허주은 #창비교육


 

소설의 배경은 정조대왕이 승하한 이후 정순왕후가 남인을 치기 위한 신유박해의 한가운데다. 천주교를 믿는 자들은 가족 혹은 주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여 죽임을 당했다. 한 여성이 코가 베인 채 시체로 발견되며 소설이 시작된다. 다모 설은 오빠를 찾으러 갔다가 도망을 쳤다는 이유로 왼쪽 뺨에 노비의 가 새겨졌다. 포도청의 다모가 되어 여성이 시체로 발견되면 나가서 살폈다. 설은 사건 조사에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한 종사관의 명령이 있기도 전에 누구를 만나야 할지를 알았다. 죽은 오 소저의 집에 찾아가 하녀 소이를 만나 주인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그 일환이다. 죽기 전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대사가 유명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이 소설을 읽는데 자꾸 그 드라마가 떠올랐다. 종사관과 다모, 조선 중기 정조대왕이 승하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여섯 살 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역사적 사건과 그로 인하여 이별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묘하게 울림을 주는 소설이었다.






 

다모 설의 독백이 이어진다. 누가 오 소저를 죽였을까. 서양의 이교 때문에 죽었을까. 소이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을까. 소이가 도망친 건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산으로 도망친 소이를 찾으러 갔다가 호랑이와 대치 중인 한 종사관을 살리기 위해 화살을 쏜다. 목숨을 구한 설에게 한 종사관은 죽은 여동생에게 주고 싶었던 노리개를 주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자유로운 신분을 만들어 줄 거라고 약속했다. 종사관 복장을 한 그의 눈을 바라보니 오라버니와 같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한 종사관을 바라볼 때마다 오라버니를 떠올린다. 이 상황들을 보며 한 종사관이 설의 오라버니가 아닐까 짐작하다가 점점 그가 설의 오라버니이기를 바란다. 설의 가족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언니는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고 한양으로 떠난 오라버니의 무덤을 찾으라고 했을까. 오라버니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이런 사람 보았느냐고 묻는 장면은 애틋하고도 간절하다.

 



오라버니를 찾는 과정과 사람을 죽이고 코를 베어 가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천주교와 관련이 있는지 탐색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오라버니의 말과 오 소저가 만났던 사내의 등장,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도움을 주었던 강씨 부인의 등장은 역사적 인물과 조우하는 느낌이었다. 천주교 전파에 앞장섰던 강완숙이라는 인물은 주준모 신부를 중국에서 입국시켰으며 신유박해사건 때 참수되었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역사적 배경을 실어 소설과 역사를 비교해서 볼 수 있게 해 한국의 역사를 앎과 동시에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사건을 따라가며 성장하는 설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설의 오라버니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과정도 즐거웠으며, 한 종사관의 과거와 그의 유일한 벗 심 부장이 숨긴 과거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다. 사건 현장과 관련 인물을 허투루 보지 않으며, 무엇보다 설에게는 호기심과 궁금증, 행동력이 큰 자산이었다.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에 다가서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수치심 때문에 살인을 할 수 있을까. 수치심을 잊기 위해 코를 베고, 사람을 죽여 수치심을 잊고자 하는가.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과 그 과정만큼 성장해가는 스토리가 감동이었다. K-드라마를 이어 노벨문학상을 잇는 K-역사소설도 세계적으로 펼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군다나 가장 매력적인 조선시대가 아닌가. 한 소녀의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자유롭게 풀려났어도 한양의 삶을 잊지 못한다. 사건을 해결하고 쓰임새가 있는 삶을 향하여 내딛는 설의 발걸음에 희망을 엿본다.

 



읖조리는 듯한 설의 생각들과 조선의 신유박해에 얽힌 사건과 정치. 십대 소녀의 성장이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새롭게 태어났다. 왜 창비가 아닌 창비교육에서 출간되었는지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한 마디 더 붙이자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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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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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의 명작. 두 여성의 삶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향한 여정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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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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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모든것 #백수린 #문학과지성사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 춥다. 마음이 추운 계절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봄이라고 느낀 순간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것 같고,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 마음이 아프면 저절로 몸을 움츠린다. 아직도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 같은 요즘, 봄밤이 그리운, 봄볕처럼 따스한 기운을 풍기는 소설을 만났다. 백수린의 소설이다.

 



일곱 편의 소설은 어느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나이는 이십 대에서 칠십 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이 나와 현재를 살고 있다. 때때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고, 겨울눈처럼 차가운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아주 환한 날들에서 여성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쓰기 강좌를 듣는 여성은 순전히 수요일이기 때문에 강좌를 신청했다. 숙제로 수필을 써야 하지만 쓸 말이 없어 못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위가 집에 찾아와 한 달 동안만 앵무새를 돌봐달라고 한다. 딸과는 몇 년째 소원한 관계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사위가 대신 찾아온다. 앵무새와 지내며 새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게 이렇듯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남편이 죽고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고 여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쓸쓸했던가 보다.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는 것. 나이 먹는 것 따위 아무 소용이 없다. 무작정 사랑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빛이 다가올 때는 여덟 살 차이 나는 인주 언니와 뉴욕에서의 해후를 담고 있다. 인주 언니는 아픈 큰이모의 눈이 되어 보살폈다. 큰이모의 바람대로 교수가 되었다. 뉴욕에 교환교수로 오게 되며, 역시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주인공과 함께 만나 한 시절을 보낸다. 영어가 서툰 언니와 자주 만나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한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개리와 가깝게 지낸다. 인주 언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 어린 개리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개리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어찌 나이를 말하겠는가. 사랑하는 이를 향한 눈빛의 반짝임은 감출 수 없다. 그 사랑의 빛을 어떻게 감추겠는가 말이다.



 

흰 눈과 개는 어떤 이유로 소원해진 아버지와 딸이 스위스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을 말한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부녀는 8년 가까이 만나지 않았다. 딸의 초대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산책길에서 다시 한번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는 홀로 산책을 하다 개와 함께 온 부부를 보며 이 광경을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딸과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아버지가 말하기도 전에 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따스한 빛으로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백수린의 이번 작품에서 엄마와 딸, 아버지와 딸은 유별나게 가까웠다가 지금은 서로를 만나지도 않은 상태로 나온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의 깊이는 큰 법,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관계가 안타깝다. 어떠한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때로는 동물이 서로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앵무새와 검은 개처럼.



 

호우豪雨의 소희나 눈이 내리네의 다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대학의 유적 답사 동아리 회원이다. 세 편의 연작소설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타냈다. 대학 시절 이모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늙을,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덧없는 삶, 한때 빛으로 가득했던 날들을 떠올리고 지나간 삶을 반추하지만 지금도 그 빛은 여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의 배경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각국의 풍경이 다채롭다. 힘든 시간을 겪는 사람들, 홀로이되 외롭지 않은 사람, 그러나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삶은 풍요롭지 않느냐 말이다.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것 같다. 시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마음. 빛으로 가득해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해와 포용, 감정의 전이, 이를테면 공감 같은 것들. 내가 아는 게 다 맞지 않다는 걸 훗날에야 알게 되는 법.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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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5-03-3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봄인데, 춥네요.
시국도 어수선하고, 산불 소식과 주변의 일들로 마음이 심란하고, 바람마저 거세게 부니 더 추운 것 같아요.

이 책 다 못 읽었는데, 동봉된 엽서에 적힌 저자의 메시지는 참 좋더라고요.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모두에게 공평히 추워 마음껏 웅크릴 수 있는 겨울과 달리,
어쩐지 봄에 잘 다린 새하얀 마음들 사이에 내 마음만 형편없이 구겨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이 추위도 다 지나가겠죠...
일교차 심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