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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 밤이 또 온다 ㅣ 소소한설 1
김강 지음, 이수현 그림 / 득수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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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이 필요한 장편소설과 소위 벽돌책이라고 부르는 책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었던 페이스북이 지고, 280자를 쓸 수 있는 X(옛 트위터)와 500자를 쓸 수 있는 스레드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글이 길면 읽지 않는다. 가볍고 언어전달력이 좋은 매체를 이용한다. 알고리즘에 뜨는 주제를 정하여 필요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원한다. 이런 까닭에 짧은 소설이 주목을 받는다. 애서가들에게는 다소 불만이다. 중단편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 짧은 소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다양한 생각들을 읽고 사유하는 즐거움도 있다. 다만, 한 편의 단편은 너무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서출판 득수에서도 이와 같은 출판계의 동향을 반영하여 짧은 소설 시리즈를 출간했다. 소소한설(小笑寒說)시리즈로, ‘작고 재미있고 차가운 이야기’를 표방한다. 보통의 단편보다 짧지만, 꽤 여러 편의 소설이 실려 있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다. 그 첫 번째로 김강 작가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신이 인간의 행복에 관여할 수 있을까.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이 신에게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어떤 대답을 줄까. 「규동의 기도」는 이러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규동이 술에 취해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행복하게 해 주소서!’ 라고 말이다. 평소에는 인간의 기도에 무관심했던 신은 하필 그날 규동의 기도를 들었다. 어떻게 해야 규동이 행복할 수 있는지 사자들에게 묻는데 아주 난해한 질문이었다. 사자 A가 규동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규동이 일하는 직장에 찾아가 행복의 기준을 묻지만, 규동은 어젯밤 신에게 했던 기도는 까맣게 잊었다. 낯선 방문자의 말과 행동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받기를 권한다. 만약 우리가 술에 취해 신에게 기도했다면 그 기도가 이루어질 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냥 넋두리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처럼 알 수 없다. 신이라고 해서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원을 사는 신은 인간의 마음을 알 리 없고, 인간 또한 신이 기도를 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물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신께 올리는 인간의 기도 같은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외로운 인간의 넋두리 같은 것 말이다.
스무 편의 짧은 소설을 출근길 버스 안에서, 점심시간 책상에 앉아서 한 편씩 읽었다. 마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는 사라지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수면이 상승하여 바닷물에 잠긴 마을이 배경이다. 카페 창밖으로 바다에 잠긴 마을이 보인다. 별도의 입장료와 좌석 추가 비용이 있지만, 창가 좌석에 앉은 연인은 음료를 주문하고 홀린 듯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에 잠긴 마을을 두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스며든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남자가 이야기한다. 카페 아주머니가 말한 이 집 전주인이 자기 어머니였다고 말이다.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사랑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못 하리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서 마음이 변한다. 사랑하는 순간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별이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표제작이기도 한 「곧, 그 밤이 또 온다」에서 연인들은 스테인리스 조각에 사랑을 새겨 월지에 던진다. 언젠가 월지를 발굴했을 때 영원한 사랑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거다. 하지만 어두운 밤 사랑의 맹세는 어디로 가고 남자 혼자서 월지 속으로 걸어가 손을 휘저어 무언가를 찾는다. 사랑의 증표마저 없애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건져내야 할 것이 지난 사랑의 각인뿐인가를 묻는 마지막 문장에 생각에 잠긴다.
유일한 연작소설이 「이기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이었던 희수의 이야기를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서 오랜만에 듣는다. 전학을 갔다던가, 자살했다던가 소문이 돌았었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기에게 다정하게 대하였다. 어떠한 사건으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속으로는 반가웠나 보다. 스님이 되어 부적을 써주더라는 말에 찾아가기로 했다. 옆집 아이가 사과한다며 건네준 사과를 가지고 말이다. 스님은 기가 찾아오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공양주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친구에게 혹은 모르는 이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걸 꺼내고자 함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일이 술술 풀린다고 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어떻겠냐는 말로 들린다.
‘소소한설’답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 인물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찾는 게 뭔지 잊고 있다가 문득 깨닫는 느낌에 가깝다. 소소한 이야기는 곧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 말이다. 떠나온 자와 머무는 자, 그 가운데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황하는 우리를 비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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