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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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의 삶이 문학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한 작가의 산문에서 느꼈다. 발췌 문장에서처럼 아버지가 소를 팔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등록금으로 대주었던 그 마음이 문학으로 표현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소설의 꼭지가 되듯, 문학은 우리 삶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삭제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문학은 소다. (22페이지)

 

소설가의 산문은 삶의 궤적이다. 작가가 느끼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열정도 어쩌면 삶의 또다른 표현이 아닌가. 산문에서 보이는 작가의 기억은 그가 쓰는 소설의 근간이다. 그의 문학의 뿌리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저 진중한 글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는 손홍규의 산문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산문의 시작부터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시골의 버거운 삶은 주로 소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나타나는데, 자식들 대학 등록금이 필요할 때마다 소 한 마리 씩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소를 팔아 학자금을 대주었고, 그 학자금으로 공부를 하고 오늘의 작가가 있는 것처럼 '문학은 소다' 라고 말하는 첫 편의 산문에서부터 나는 그저 작가의 글이 좋아졌다.

 

 

가까운 가족을 보내고 난 후의 감정들은 사실 표현하기가 막막하다. 그 슬픔을, 그 아픔을 작가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표현하겠나.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말하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의 차이가 있듯, 작가가 경험한 고모의 장례식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했다. 고모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촌 형제들의 마음을, 그저 엽전 한 잎을 놓고 갈라진 목소리로 그게 외쳤던 고모부의 외침에서 막막함을 보았다. 그 광경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산문을 보면,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사고를 당해 손가락 끝부분이 잘린 아버지, 팔 한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애틋함. 1톤 트럭을 사서 장에 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아버지의 고단함을 느끼는 자식으로서의 애틋함에 나도 몰래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동안 여러번 절망하였을 아버지가 사고로 팔이 다쳤을때 수술실 앞에서 손을 내민 장면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다. 다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삶을 알아가며 그는 소설을 쓸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절망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절망한 사람 가운데 정말 절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싶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인데 깊이 절망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75페이지)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과 산문이 비로소 접점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느꼈던 삶의 여러 모습들이 진중하고도 묵직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가 쓴 문장들에서 나는 그의 다른 작품들을 상상한다. 상처 투성이의 아이를 입양했던 터키인의 이야기를 그렸던 『이슬람 정육점』 같은 따뜻한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학은 그가 포기해버린 꿈을 일깨워 줘야 한다. 그가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가슴 한쪽에 숨겨둔 꿈을 꺼낼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결코 이룰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할 수도 없는 꿈에 말을 건네야 한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재 또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꿈을 꾸어서 인간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인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91페이지)

 

문장들이 좋다. 그가 말하는 문학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책과 독서에 얽힌 이야기가 좋다. 가볍게 말하는 듯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일상을 말하는 문장들에서도 진중함이 있다. 함부로 읽어내서는 안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기울여 진다. 그가 언급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두었던 감정들의 발화였음을 느끼게 된다.

 

밤이 되면 더욱 그렇다. 창문을 열면 밤이 내 작은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창문을 닫으면 밤 속에 고립된다. 나는 밤에 포위된 채 헛된 고뇌를 되풀이한다. 문학 말고 다른 가능성이 없는 시간, 밤은 우울하다. (141페이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님을 사랑함에도 생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많은 여행을 다닐 것을 후회해 보지만 생전에 계시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손을 내밀라고. 그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는 것임을 말했다.

 

작가가 말하는 고향과 자식으로서 바라보는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 혹은 함께 자랐던 사촌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이 스며있는 글이었다. 소설을 쓴 작가로서 바라보는 일상과 그것에서 오는 깊은 고뇌와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고작 두세 편의 소설일 뿐이지만, 산문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매혹적인 문장들, 깊은 생각들에서 오는 작가의 기억의 저편. 그것들이 그의 문학의 근간이었음을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다치는 것보다 마음을 다치는 것이 더 아픈 법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달래 줄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 받았던 부모님의 애정과 애틋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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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eeze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좋은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가 지나고 이제 내일이면 2019년이 시작되는데,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과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reeze 2019-01-07 17:0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인사가 늦어습니다.
서니데이님이 해주신 모든 말씀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8-12-3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기 인문학 -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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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 중에서 꼭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들어 있는 게 사마천의 『사기』와 노자의 『도덕경』이다.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정주의 작품은 이덕무의 작품을 말한 『문장의 온도』에서 이미 글맛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 인문학』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더군다나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라 일컫지 않는가. 가장 힘든게 인간에 대한 관계다.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한게 옳은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게 바로 사마천의 『사기』다. 사마천은 황제로부터 궁형을 받고도 『사기』를 썼다고 했다. 책을 끝마쳐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꼈다고 하니, 과히 꼭 읽어야 만하는 역사서 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 부와 권력, 리더로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았다. 성공한 리더는 아랫 사람을 잘 부린다. 아무리 뛰어나고 지혜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도 부하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면 그는 성공할 수 없다. 저자는 주왕과 항우와 유방, 진시황의 역사를 통해 성공한 리더로서의 표상을 말한다.

 

항우 장사라고 일컫는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힘과 재주를 지녔지만 혼자만 잘나서 다른 사람을 표용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유방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어 자기 곁에 두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큰 뜻을 품고 있는 리더는 자신의 뜻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을 때 유방처럼 대담하게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면, 결국 그로 인해 큰 실패와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7페이지)

 

리더가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부하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적재적소에 알맞는 인재를 잘 쓰는게 중요하다. 아울러 저자는 말한다. '인재를 잘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65페이지)이라고 말이다. 인재를 잘 썼던 유방에 비해 독단적인 성정과 기질 문에 그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항우의 실패를 말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향방은 크게 달라집니다.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를 쓰는 것이 일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80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한 명 꼽자면, 바로 고귀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미천한 신분의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도 감수하고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91페이지)

 

위 문장은 천하를 통일시켰던 진시황에 대한 이야기다. 진시황을 성공한 리더라고 말하며 그의 능력을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냉철한 현실 인식과 빠른 결단력이었고, 둘째, 경청의 힘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능력과 그 옳고 그름을 따져 합리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던 유방의 능력과 일맥상통한다. 셋째는 자기 통제력이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자기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뜻을 품은 자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찾아왔을때 과감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사람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147페이지)

 

올바른 정치, 그리고 올바른 리더십이란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과 기술 그 자체입니다. (174페이지)

 

상대방의 속마음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27페이지)

 

리더로서 성공하는 것과 부와 권력을 얻는 것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을 때 의심을 살 것을 고려하고, 사랑을 받을 때 미움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인간은 그 사람의 신뢰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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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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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만든다. 많은 작가들이 자기의 경험을 변주하여 이야기를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을 이 작품에도 넣었다가 다른 작품에도 넣었다가 하고,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빌어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소설화 시키기도 하는데, 때로는 실화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책의 소개글만 보고는 굉장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 여겨졌다. 죽어가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라고 해서였다. 막상 책을 펴니 작가의 실제 경험을 말한 글이었다. 카린이 호흡곤란으로 입원한뒤 임신 8개월인 아이를 수술로 꺼내고 그 시간들을 견디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톰의 이야기였다.

 

엊그제만해도 건강하게 보였던 카린이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후 급성 백혈병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뱃속의 아이는 건강했다.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를 단 카린은 아이 이름을 리비아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양가의 부모들과 친구들이 찾아왔고 결국 카린은 죽고 아이는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를(사람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나타냈다. 카린이 싫어하는 술을 마시고, 그녀와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과 시를 써 시집을 내야 하는 그는 카린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심경,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며 느끼는 뒤늦은 후회. 그토록 사랑하는 카린을 잃고 말았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톰은 어느 시기로 가고 싶을까. 처음 함께 살게 되는 시기로 가고 싶을 것이다. 카린과 아무 걱정없이 사랑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으로. 실제 톰은 상담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 부분에서 새로웠던 건 환자가 죽은후 그 보호자가 제대로 지내고 있는지 병원측에서 확인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스웨덴의 특성인지, 환자의 가족이 혹시 잘 지내지 못할까봐 염려의 차원이었다. 심리 상담사에게 하듯 카린과의 일들을, 새로 태어난 리비아와 지내는 이야기를 할때 톰은 비로소 위안을 얻은 것 같았다.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나타내고 싶었으리라. 사랑하는 카린과 새로 태어난 리비아와의 이야기들을 책이라는 매개체로 영원히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날들의 행복 마저도 그저 꿈에 불과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카린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리비아와 함께 한 시간들은 기쁨이었다. 현재의 일상을, 과거의 기억들을 불러 그는 카린을 추억한다.  

 

너는 나를 보며 죽음 앞에 독특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 현실 속에서는 모든 보호막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생과 마주할 수밖에 없고, 어디선가 자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고. 나는 그때 너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너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그것은 의식을 초월한 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365페이지)

 

한 사람의 사랑과 상실, 그로 인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그가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정직하게 기술했고, 그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을 알지 못했던 한 남자의 독백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 사랑하라고.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야말로 소중한 시간임을 잊지 말라고. 곁에 있는 사람이 다시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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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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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추리소설을 한두 권쯤 읽었던 것 같다. 읽는 작품마다 매우 만족해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뭐랄까 군더더기가 없다고 해야겠다. 누군가를 잔인하게 살해하지도 않고, 우리가 예상했던 살인범이 진짜 살인범일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처음부터 드러난 가해자로 비춰지는 인물이 담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가 이 소설의 관건이다.

 

소설을 풀어가는 인물은 연방 범죄수사국의 수사관이자 교관인 자비네 네메즈와 그를 가리켰던 최고의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다. 우리나라의 소설과 외국의 추리소설이 다른 점은 수사관들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영화를 보면 나쁜 경찰관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건 경찰관이 착한 사람들 편에 있다는 것이다. 억울한 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정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 소설속 자비네 네메즈 또한 정의를 위해 일하는 수사관처럼 보인다. 

 

물론 마르틴 슈나이더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총을 쏘았을때 그를 위해 위증을 했던 경험은 있다. 하지반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인물이다. 슈나이더에게 배운대로 철저하게 조사하고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인물이다. 그런 자비네에게 사건이 맡겨진다. 꽤 높은 직책에 있던 수사관들이 죽는다.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죽임을 당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연이어 수사관들이 죽어나가고 자비네는 슈나이더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냉정히 거절당한다. 

 

죽은 수사관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청 자료실에 그들이 연루되었을 일들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소설 중간에 이 사건의 중요인물로 보이는 하디라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죽은 수사관들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과거 마약판매를 했던 하디는 자신의 집에 직접 불을 지르고 아내와 아이들을 죽였다는 20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절대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그는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된 인물을 찾아 다닌다. 그와 친했던 이들이 그의 방문을 꺼려하고 그를 뒤쫒는 자가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20년 전의 사건은 아주 단순했다. 누군가가 그의 돈을 노리고 집에 불을 지르고 아내와 아이들 또한 죽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목숨을 당연히 노리는 인물을 예상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인물로 보여진다. 자비네가 알게 된 사건의 양에 따라 하디라는 인물의 겪어야 했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추리소설의 묘미가 사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가를 찾는 일이다. 작가가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것,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또다른 묘미다. 독자들이 예상가능한 인물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인데, 사람의 돈에 대한 욕심은 어디까지 인가. 씁쓸하게 여겨진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누군가를 속여서라도, 죽이기까지 해서 갖고 싶은게 돈이라는 것인가. 돈에 대해서라면 함께 일했던 동료도 쉽게 죽일 수 있는 악랄함.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악인은 멀리있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슈나이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프로파일러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의 활약과 그에 맞서 자비네의 활약이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두께가 꽤 있는 소설임에도 몰입해 읽다보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짜릿함을 주는 소설을 찾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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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메리크리스마스 하소서! 행복한 휴일되소서! 건강하시고 즐독^^

Breeze 2018-12-27 16:5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하셨죠?
영화 <메리 셸리> 보고 산책한번 했더니 하루가 후딱 지나가더라고요.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요. ^^
 
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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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알람과 함께 눈을 떠 라디오를 켜고, 저녁시간 퇴근과 함께 라디오를 켜 하루를 마감한다. 물론 하루종일 듣는게 아니라 아침 2시간 가까이, 저녁 2시간 정도를 듣는데, 습관처럼 켜고 끄는게 일상이다. 어느 코너에 맞춰 준비할 시간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만일 무슨 일이 있어 못듣게 되면 하루의 시작은 뒤죽박죽이다. 잠이 많아, 한밤중엔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는터라 한밤의 라디오를 듣지는 못한다. 겨울처럼 추운 날이면 침대의 이불속에 들어가 조용히 책 읽는걸 즐긴다. 아무래도 라디오를 듣다보면 사연에 귀기울여 소홀하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까.

 

라디오는 수많은 사연들의 보고다. 음악을 듣는 건 핑계고 누군가와 함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전국 방송을 통해 말해도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익명성에 기대어 그럴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연을 보내기도 한다. 평소 그냥 듣기만 하는터라 내밀한 사연을 말하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진행자가 나를 챙긴다는 그 기분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돌아갈수 없는 그날들과

여전히 기억해낼 수 있는 그 시간들을

매일 둥글고 보드랍게 깎으며

그 위에 조금씩 환상을 덧입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노라고.

견딜 만한 아픔이었고 시련이었다고.

 

그러니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영영 기억해낼 수 없는 허무함보다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을 그리워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니.

시간은 아프고 저린 기억들마저 아름답게 감싸 안아

우리에게 돌려줄테니.  (209페이지)

 

청취자들의 사연을 대하는 저자를 보니 그의 다정한 마음이 엿보인다. 에세이를 쓰게 된 이유도 청취자들의 귀한 사연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대로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들이라고 표현했다. 라디오의 사연들을 듣다보면 참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을 말하는 걸 보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 하고 느끼고, 아주 작은 선물이지만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지만 마치 친근한 사람들을 대하듯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아마 작가도 그랬으리라. 묻어 두기 아까운 사연을 다시 펼치고, 작가의 생각들을 담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건넨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시처럼 여겨지는 게 있어 살펴보니 노래 가사다. 시를 노래 가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사는 하나의 시처럼 다가온다. 책 속에서는 언급이 없었지만 가사 때문에 음악을 듣는 뮤지션 중의 하나가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가사를 써야지 하고 정해놓고 쓰지 않고, 문득 떠오르는 가사를 쓴다고 했던가. 그가 노래하는 걸 듣고 있다보면 노랫말은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아 있어 저절로 호감을 표하게 된다.

 

저자는 주로 감성적인 노래를 하는 가수들의 노랫말을 썼다. 성시경의 노랫말이 몇 곡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하나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사랑이란 게 어쩌면

둘이란 게 어쩌면

스쳐가는 짧은 봄날 같아서

잡아보려 할수록 점점 멀어지나봐

추억이란 자고 나면 하루만큼 더 아름다워져 (210페이지)

 

보라색으로 쓰여진 성시경의 <더 아름다워져> 라는 노랫말이다. 시처럼 다가오지 않는가. 작가가 언급한 노랫말에서 작가의 다정한 감성이 보인다.

 

 

어쩌면 가장 큰 축복은

지금 우리에게 갈망하는 소원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사연속 그녀가 소원을 빌고

흐뭇한 마음으로 잠들었기를.

오늘 당신의 밤에도

따뜻한 별빛이 내리길 바라본다.  (280페이지)

 

작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처럼 그의 말도 다정할까. 아쉬운 마음에 책소개에 나온 동영상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글처럼 목소리도 다정했다. 진행자가 허윤희라면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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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2-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시를 알리는 <꿈과 음악사이에> 허윤희 씨 목소리를 듣고서야 하루가 다 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해요. 저는~ ^^ 목소리가 너무 좋아 그리고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는데 이렇게 책소식을 들으니 반갑네요. ^^

Breeze 2018-12-20 16:22   좋아요 0 | URL
아.. 작가님 방송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설해목님은 방송을 들으시는 분이군요. 책으로 만나는 작가님은 또다른 느낌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