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 / 2019년 3월
평점 :
학창시절 하면 교복인데, 난 공교롭게도 교복 자율화가 시행 되던 시점이어서 중학교 1학년 까지만 교복을 입었다. 남들하고는 다른 일명 세라복. 교복을 입고 입학식을 했던 순간들을 많이 그려볼 텐데. 고등학교 때 사복 때문에 아침마다 고민했었던 시기였다. 그 눈부신 시절이 떠올랐던 그림에세이였다. 그림과 글을 쓴 작가가 아직 대학생이라는 점이 놀랍다. 글과 함께 필체가 고운 여학생을 바라 보는 느낌이랄까.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졸업식을 거쳐 이제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일년을 마친 시간들을 그림과 글로 나타낸 책이었다. 설렘반 두려움 반이 공존하는 입학식. 어떤 친구들이 있을 것이며,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반 분위기는 또 얼마나 궁금해 했던가.
하얀 기대 반, 검은 걱정 반, 잿빛 발걸음.
그 위로, 봄바람이 불어오더라.
'넌 충분히 빛나고 있어.'
향긋한 꽃향기가 말을 걸어왔어.
봄을 찾아 이끌리듯 다시 힘차게 내디딘 한 걸음.
'잘할 거야,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돼.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 (16페이지)
봄의 시작은 이처럼 핑크빛이던가. 곧 있으면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매화 개화 시기를 지나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 곧 다가오지 않던가. 그래서 작가의 그림도 핑크빛이다.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한 벚꽃의 계절을 봄으로 표현했다. 물론 새침하기 이를 데 없는 꽃샘 추위가 다가올테지만 그래도 설레기만 한 봄이다.
설레기만 한 봄과 열정 가득한 여름, 울긋불긋 결실을 맺을 가을, 모든 것이 얼어붙지만 다시 봄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해 사계절을 챕터로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그림과 함께 글로 풀어냈다.
바다 향기를 머금은
여름 길을 보며
한 걸음.
푸른 바람이 전하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또 한 걸음.
그러다
우산에 흘러온 하얀 구름에
내 걸음을 멈추었다. (94페이지)
이미 십 대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글도 어여쁘게 쓴다. 비록 아직 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언젠가는 긴 글도 쓰지 않을까. 나이에 맞게 성숙해가며 글과 그림이 더 찬란하지 않을까.
해가 채 뜨지 않은 겨울날.
소리 없이 눈이 내리던 날.
눈물이 날 정도로 시린 칼바람이 불던 날
겨울의 문을 열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의 새벽 속에는
네 웃음이 담긴 입김이
설렘이 담긴 목소리가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이
따뜻하게 남아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186페이지)
그림 실력이 꽤 좋은 것 같다. 부드럽게 편안한 그림에서 한때 우리가 겪어 왔던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는 그 시절을 지나야만 느낄 수 있다. 얼마전 종영했던 드라마 제목처럼 눈부신 시절이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시절.
이 책을 읽으면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그 시절을 만날 수 있다. 떠오르는 감정들,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추억.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 시절을 즐기라고. 그 시간 만큼 아름다운 순간도 없다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한 풍경이
지금부터 펼쳐질 거야.
깊은 밤의 별빛이 가득한 은하수
그리고 달빛이 스며든 바람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자, 이리 와.
내가 널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나와 여행을 떠나보지 않을래? (223페이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다. 그림도, 글도, 마음도. 한층 더 성숙해서 돌아오길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