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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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기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게 특히 좋다. 작가의 아이들이 내 주변에 있을 것만 같아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따스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작가로서 큰 부담일 것 같다. 숨기고 싶거나 굳이 들어내고 싶지 않은 일들까지 나타내야 제대로 된 소설이 되기에 곤란함에 처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나 같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은 말하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도록 체면이 중요한 것일까.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자란 작가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자전적 소설이 그렇다. 이기호 작가처럼 작가의 실명을 드러내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우리 어머니들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직접 보는 것 같아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오히려 우리 엄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책 표지의 소개처럼 특기는 물건값 깎기, 취미는 남편 닦달하기, 희망은 우리 아들 멀쩡해지기. 극성맞고 애들프고 요절복통 웃기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인도의 가정에서 열한 번째 입으로 태어났다. 인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가 직업을 새로 구해 네덜란드로 오게 되었다. 여행가방 두 개를 들고 말이다. 여행가방 안에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의 물건이 실려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구할 때 남편과 세 아들들은 가만히 앉아 있고 고개만 끄덕거리게 되는데 이 모든 게 어머니의 지시하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집 한 채 값을 인도에서라면 몇 채라도 사겠다며 사정없이 깎아버린다. 물론 탄두리처럼 불같은 성격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성격의 엄마에게 아빠는 순한 양처럼 군다. 집을 구할 때도, 세입자를 내쫓을 때도 그의 귓가에 조심하라는 말만 남길 뿐이다. 병리학 의사인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논문이라도 보고 있으면 델리의 생쥐보다도 돈을 못 벌어온다며 아버지를 닦달하고 논문을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또한 시체 냄새가 난다며 식탁에서 겨드랑이를 딱 붙이고 있으라고 한 어머니다.

 

 

 

그럼에도 지적 장애인인 큰 형을 낫게 하려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까지 가서 성수를 구해온다. 여기에서 장애들에게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장애인 통행증을 사용하겠다며 우기는 장면 또한 압권이다. 우리 같아도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들들과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소원이 큰 아들 아쉬르바트가 정상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둘째 아들이 무슬림 여자를 데리고 오고,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는 에른스트가 공부를 포기하고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낙담을 했다. 작가 에른스트가 어머니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고민 끝에 한 말은 '다 네 마음대로 지어내고 꾸며대고 바꿔도 상관없어. 어떻게 쓰든 다 괜찮아. 하지만 꼭 한 가지, 내가 희망을 포기했다고는 절대로 쓰면 안 돼.' 였다.

 

나는 어머니의 외침을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을 따름이다. "잘디! 잘디!" 잔디밭 위로 튀어오르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열정 그리고 환희에 넘치는 행복감. (166페이지)

 

극성스러운 어머니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따스하게 읽혀지는 건 비단 나 뿐만 아닐 것이다.  탄두리 화덕처럼 불 같은 성격의 어머니를 극성맞게 그렸음에도 작가와 가족들이 느끼는 따스함과 감동이 있었다. 역시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에른스트의 2세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쩐지 계속 이어질 것만 같다.

 

에른스트 환 데르 크봐스트의 이기호식 가족 소설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사, 예를들면 평생 직업을 가지지 않은 삼촌과 어머니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성격을 가진 이모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된다. 다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써볼까 생각중이라는 저자의 말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귓가에 속삭일 뿐인 아버지의 속엣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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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16: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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