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 것일까.

비로소 사랑이 끝났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종종 과거의 시간을 떠올린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수줍음,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

그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만으로도 설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며칠 째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건 기본이다.

주말 내내 한 집에 있어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른 장소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예를 들면 아내인 지원은 거실에서 오래전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 붐>을 보며 남자 친구가 씌워주던 헤드폰 안의 음악을 듣는 소피 마르소와, 바깥의 다른 음악을 듣는 남자.

같은 장소에 있으나 다른 음악을 듣는 우리.

마치 우리들을 표현하는 것만 같은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지원이 거실에서 영화 <라 붐>을 보고 영화속 삽입곡을 듣고 있을 때

서재 방에서 일주일 째 기거하던 남편 영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어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붙잡아 이야기 좀 하자는 지원.

이들은 마음속으로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혼'이라는 말을 말할 때 비로소 이별이 현실화 된다. 

 

이별이 현실화 되기 시작했을 때 이 둘의 첫 만남을 말하기 시작한다.

스윙댄스를 배우는 동호회에서 진과 랄라 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만나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주었던 음악의 그 절묘함.

음악은 사랑의 시작과 확신을 주었다.

반면 결혼식에서 울려퍼지는 '사랑의 인사'라는 음악은 어떤가.

30분내내 같은 음악만 듣다보면 그처럼 지루한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지원의 언니 규원이 말했던 것처럼, 결혼이라는 건 같은 음악을 질리도록 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람과 결혼하지만

결혼은 종종 이들을 갈라놓기도 한다.

사소한 습관 하나가 모여 일주일 씩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이별의 단초가 되기 시작한다.

서로의 구속이 싫어지는 때, 상대방이 하는 말이 너무도 듣기 싫을 때 그걸 행복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족쇄가 되어 옭아맨다.

사랑의 감정은 저만치 사라지고, 서로를 견디지 못하게 되며 드디어 이혼이란 말을 꺼낸다.

이상하게 그냥 싸우고 말하지 않는 것과, '이혼'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건 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상상 속의 일이 현실화가 되어가듯 이들의 이혼도 현실이 되어간다.

 

그러한 과정 속에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마치 '사랑의 인사'를 묻는 듯 하다.

과거의 시간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을 기억한다.

이들의 사랑이 다시 맺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건 소설 속, 아니 판타지 속 이야기 일 뿐이다.

현실은 이혼이라는 작업을 착착 진행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어떤 순간에 불리게 되었는가, 를 묻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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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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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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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여자의 시각을 알게 되고, 우리는 삶의 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듯 우리 또한 작품속 인물들에 강하게 빙의되어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니콜 키드먼 주연의 동명 영화 <디 아워스>를 놓쳤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과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것을 느낀다.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과 영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달랐을 수도 있다. 왜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고민을 제대로 해보기 전에 동명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배우들의 특별한 연기에 힘입어 소설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클러리사를 죽일지 살릴지 고민이다. 1949년의 로라 브라운,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고 로라를 무척 사랑하는 남편과 리치라 불리는 아이가 있다. 1999년의 클러리사 본은 리처드로부터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작가인 리처드는 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있고, 클러리사는 리처드의 파티를 준비한다.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의 변주다. 울프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클러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소설은 시대를 달리한 세 여성들의 급박한 하루를 나타냈다.

 

 

 

영화의 시작도 소설과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의 시선을 피해 바닷가로 달려간다. 코트속에 크고 무거운 돌을 넣고서 그대로 들어간다. 다리까지, 허리까지, 목까지 차던 물은 그대로 울프 부인을 삼켜 버린다.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화면을 달리해가며 세 사람의 하루의 시작을 교차한다.

 

아들 리치와 함께 케이크를 굽던 로라는 이웃집 여성 키티의 방문을 받고 병원에 간다는 그녀를 안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 이 모습을 아들 리치가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 로라는 아들을 차에 태워 아이를 돌봐주는 부인에게 맡기고 자기만의 방을 빌린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는 어쩐지 처량하다. 자신을 버지니아 울프와 혼동하는 것 같다. 로라가 하루의 몇 시간을 호텔에 머무는 장면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맞닿아 있다. 지겨운 하루의 어떤 시간을 홀로 있고 싶어 아이를 맡기고 침대에 누워 하는 일이라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것일뿐인 로라. 우리도 어쩌면 이런 시간을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소설 속 세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보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거다.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러리사는 샐리와 함께 살고 있고, 클러리사의 딸인 줄리아는 또다른 여성과 함께 한다. 클러리사가 한때 좋아했던 리처드는 루이스와 사랑을 했고, 현재의 루이스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과 사랑에 빠져있다.

 

 

 

동성애 코드가 있지만 그렇게 거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시간을 사는 여성들의 고민과 삶의 애환이 보인다. 건강을 위해 런던에서 시골 리치몬드로 내려왔지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댈러웨이 부인인 클러리사를 죽일까 말까,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비로소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게 된다.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우울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고, 모두들 지난 시간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리처드의 죽음이, 갑자기 사라졌던 로라에 대한 리처드의 감정이 애잔하다. 누군가는 사라질 수 밖에 없고, 사라지고 싶어하고, 사라지지 못하는 삶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들은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을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어. 세상에, 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293페이지)

 

 

 

 

 

아주 운이 좋더라도 시간 자체에 잡아 먹힌다. 위로할 거라곤 우리 삶이, 그 모든 역경과 기대를 넘어선 우리 삶이 활짝 피어나 상상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어쩌면 아이들까지도) 그런 시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327~328페이지)

 

영화에서는 이 부분들을 세월로 번역하고 있었다. 시간과 세월은 어쩐지 다른 느낌이다. 시간은 현재를 말하는 것 같고, 세월은 지나간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모두 우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수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것일뿐. 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궁금했었는데, 마이클 커닝햄이 소설을 변주할 정도면 얼마나 좋았던 것일까. 궁금함에 잠못 이룰 것 같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질 수 밖에 없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 소설이 퓰리쳐 상과 펜 포크너 상을 동시 수상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동감하게 된 보기드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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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설을 바탕으로 쓴 『디 아워스』라는 작품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디 아워스』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다운 받아 봤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뜻밖에도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던 당시 리치몬드에서 생활하던 버지니아 울프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작 원작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클라리사와 피터 월시 사이의 ‘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볼 수 없어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긴 했지만요.
 

알쓸신잡 시즌이 끝나가며 모두들 책 한 권씩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김영하가 작가가 이 책을 소개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뭉클했던 감정을 떠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절판이었는데, TV프로그램 매체 때문에

다시 판매하게 되었다.

모두 알쓸신잡 덕분인 것 같다.

 

덕분에 나도 기분좋게 예약구매를 하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가 느끼는 그 감동을 함께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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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이토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하나같이 따스함을 나타낸다는 거다. 작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책으로 드러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글이 좋다. 음식을 만드는 식당 이야기를 했다가, 누군가에게 대필해주는 편지를 쓰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는 북유럽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한다. 얼핏 생각하기에 라트비아에 사는 일본인의 이야기려니 할수도 있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에 사는 마리카 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우리를 라트비아의 문화로 이끈다.

 

라트비아가 배경인 추리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추리소설과 오가와 이토의 작품은 매우 다르다. 전혀 같은 나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또는 그곳에 직접 사는 작가가 쓴 이야기 같다는 게 큰 장점인것 같다. 그림 또한 라트비아의 문화를 그대로 표현해내 책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루프마이제공화국.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빠는 여자 아이에게 마리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마리카에게는 오빠 셋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은 추운 나라라 엄지 장갑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좋아한다는 표현도 엄지 장갑을 직접 떠서 주었으며, 상대방이 장갑을 끼게 되면 그 마음을 받아준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엄지 장갑이라고 그래서 나는 엄지 손가락에만 끼는 장갑인줄 알았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쓰던 벙어리장갑이었다. 특별한 날에 끼는 게 다섯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는 장갑이라는 거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은 지역 특성상 모두 수공예를 할 줄 알아야 공화국에서 살 수 있었다.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한 활달한 마리카도 수공예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실을 잣고, 뜨개질을 해서 엄지 장갑을 떠야 했던 것. 할머니에게 많이 배웠지만 솜씨는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그런 마리카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그녀보다 한 살 많은 야니스였다. 춤을 배우는 교실에서 만났던 마리카는 그에게 줄 엄지장갑을 뜨기 시작했고, 그것을 받아든 야니스는 수줍게 웃으며 그 장갑을 꼈다.

 

동화같은 소설이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의 배경인 라트비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얼음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 그곳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야니스도 얼음제국으로 가야했다. 이별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었던 이별이었다.

 

 

소설의 뒷편엔 일러스트 작가와 함께 라트비아를 방문했던 에세이가 사진,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소설에서 만나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의 복장과 축제의 모습. 특별한 날에 끼는 장갑에 대한 이야기와 뜻이 담긴 예쁜 문양들을 실었다. 소설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에세이였다.

 

마리카의 장갑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 (110페이지)

 

엄지 장갑을 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엄지 장갑을 뜨다보면 그토록 서툴렀던 장갑의 모양도 어느새 제대로 된 예쁜 장갑을 뜰 수 있었다.   

 

털실은 무언가를 뜨기도 하지만, 다시 풀어 사용할수도 있다. 손재주가 젬병인 나를 생각하지 못하고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끼를 떠주겠다고 털실을 샀던 적이 있다. 뜨기 시작했다가 겨우 머플러 길이만큼 떴다가 다시 공처럼 둥글게 말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떴던 실을 다시 풀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나눠주는 마리카의 모습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온기를 내뿜는 사람이라는 거. 동화는 이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마리카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떴던 예쁜 문양의 장갑 혹은 곰인형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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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0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디자인이 마음에 들더군요. 흔한 털장갑 문양이잖아요. 누군지 아이디러가 좋더군요. 저는 뜨개질 안 해봤는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더군요. 실룩거리는 손끝에서 목도리가 나오고 장갑이 나오고 하는 걸 보면.^^

Breeze 2019-01-07 15:53   좋아요 0 | URL
일본판 표지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해요.
정말 이쁘죠?
이 소설 읽으니 라플란드라는 나라도 가고 싶었답니다. ^^
 

 

 

 

 

 

 

 

 

 

 

 

 

인체구조 학습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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