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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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과학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었다.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뛰어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의 탁월한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가 끝내 인간을 멸종시킨다면 지구는 다시 새로운 동물 혹은 인류를 받아들일 것이다. 핵전쟁으로 3차 대전이 일어난 후 갈 곳 잃은 인간들이 머물 곳은 극히 드물다. 방사능을 피할 수 있는 지하의 공간 어디쯤엔가 남은 인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상상력으로 제 3인류를 만든다는 설정이 조금은 개연성 있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베르베르는 이제 유전자 실험의 결과물로 신인류 즉 키메라의 탄생을 알렸다. 동물과 인간의 혼종을 만들어 폐허가 된 지구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먼저 첫 번째는 날아다니는 인간 즉 인간과 박쥐의 혼종으로 <에어리얼>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땅을 파는 인간이며 인간과 두더지의 혼종으로 <디거>라고 부른다. 세 번째는 헤엄치는 인간이며 인간과 돌고래의 혼종으로 <노틱>이라 부른다. 만약 이러한 혼종을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괴물을 만들었다며 키메라를 만든 과학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유전자 변이가 전문인 유전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가 주인공이다. 그는 연구 장관인 뱅자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변신 프로젝트>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했다. 하지만 연구실에 숨어든 기자가 이 사실을 알고 기사로 썼다. 변신 프로젝트 발표회 중 총을 겨눈 사건 때문에 알리스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피신한다. 우주정거장에서 혼종을 만드는데 열정을 다하여 마침내 실행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3차 대전(핵전쟁)이 발발하여 우주에 머물던 알리스도 연료 부족으로 위기에 처했다. 지구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마치 3차 대전인 것처럼 서로 싸우고 죽인다. 서로의 이권 때문인 건 알겠는데 인간의 욕심이 전쟁을 낳는다. 내 이익에 반한다고 하여 상대방을 해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동물과 다르지 않다. 소설가들이 지구의 미래를 불투명하고 어둡게 표현하는 걸 보며 지금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프랑스의 도시 한가운데, 지하로 향하는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상에서는 인간들을 찾을 수 없었는데 지하로 들어가니 쿵쿵 울려대는 음악 소리와 함께 파티 중인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방사능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세 종류의 혼종과 함께 도착한 알리스와 시몽이 받아들여졌다.

 



각자가 가진 역할과 재능을 좋은 일에 사용하면 좋겠지만, 권력을 갖는 순간 변하기 마련이다. 키메라를 창조한 알리스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동류 혹은 그 이하의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키메라는 구인류를 가리켜 사피엔스라 부른다. 신인류에게 사피엔스는 고지식하고 이해할 수 없는 종으로 비친다. 청년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신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현재와 비슷하다. 형제로 여기다가도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전쟁하고 적으로 지낸다. 전쟁이 시작된 후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안전거리를 두는 등 협상을 시작한다.

 



작가는 이 일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으로부터 5년 후에 일어난다고 써놓았다. 현재 세계는 극우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벌이는 이유도 미국의 이익 때문에 그렇지 않나.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협상을 벌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생존하려 싸우고, 어쩔 수 없이 공존하고 협력한다. 민주주의와 공산국가, 중립국이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게 세 혼종 간의 전쟁이었다. 이는 곧 지구의 종말을 보는 것 같았다. 아울러 작가는 말한다. 지구의 생명체 중에서 인간(사피엔스)만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오히려 동물과 인간의 혼종이 사피엔스보다 우월한 종일 수도 있으며 협력 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은 지구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박물관 혹은 동물원에서 인간을 전시하는 장면에서 아찔했다. 인간이 동물을 전시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사피엔스들이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거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였다. 생명의 다양성과 함께 반복되는 종족 간의 경쟁심은 혼돈의 세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의 전유물인 과학적 상상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빛난 작품이었다.

 


 

#키메라의땅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프랑스문학 #프랑스소설 #과학소설 #미래소설 #디스토피아 #김희진 #인류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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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피는 병원, 아즈사가와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최주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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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피는병원아즈사가와 #나쓰카와소스케 #문예춘추사

 



100세 시대가 되었다. 80세 만기였던 보험 계약도 변경되어 이제 100세까지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생겼다.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요양 병원과 요양원이 많아졌고, 그에 따른 가족의 부양 의무도 늘어갔다. 실제로 여동생의 시댁 외할머니(시어머니의 어머니)104세까지 사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정정하셨지만, 결국 요양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셨다.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가 폐렴이나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근처 종합병원으로 이동하여 치료를 받는다.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요양 병원으로 입원하는 일을 반복한다. 의사이자 신의 카르테의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의 신작 물망초 피는 병원, 아즈사가와는 고령화 시대에 삶과 죽음 앞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3년 차 간호사 쓰키오카 미코토와 1년 차 수련의 가쓰라 쇼타로로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인으로서 마음가짐을 담았다. 환자를 마주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와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과 애정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좀처럼 보기 드문 에피소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는 미코토와 가쓰라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로 변화한다. 아울러 80세 혹은 90세 이상의 환자가 응급으로 방문했을 때 치료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다.





 

가쓰라 쇼타로가 꽃집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그런 까닭에 꽃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가쓰라와 미코토가 처음 마주치게 된 것도 병실의 꽃병에 물을 교체해주기 위해서였다. 일곱 개의 꽃을 주제로 하여 소설이 시작되는데 매 순간 죽음을 마주하며 치료가 필요한가 그렇지 아니한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보기 싫은 것에는 뚜껑을 만들어 덮고, 보고도 못 본 척한다.

텔레비전이나 소설에는 극적이고 감동적인 죽음이 가득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단조롭고 더럽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죽음을 시설이나 병원에 밀어 넣고 묵살해 버린다. (285페이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매체에서는 감동의 스토리를 전하지만, 실제로는 불행함을 감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와상 환자에게 위루를 만들 것인가, 죽게 할 것인가, 치열하게 고민해보라는 지도의의 말에 독자 또한 고민해본다. 어떤 게 옳은 일인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94세인 환자가 내원했다.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환자 보호자와 상의하여 연명 치료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가 겨우 몇 시간, 하루 정도를 위해 연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연명 치료를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가,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보호자는 할 수 있는데 까지 해 보자가 먼저일 것이다. 나 또한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의사의 질문에 뭐든지 하겠다고 말했었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가 자가 호흡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도 의사의 의견에 반하는 가쓰라의 행동에 공감했었다. 일단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고령자에 대하여 일종의 한계점에 달했다고 말한 부분에도 공감하는 바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실제로 마주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하여 말할 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고통 없이,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자다가 죽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한다. 미코토와 가쓰라는 환자들에게 좀 더 헌신적이다. 환자의 생명을 위해 잠도 쫓아가며 일하고, 고민한다. 병실에 꽃병을 놓아두는 등 환자의 기분 전환 혹은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으며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다. 지금 야에 씨와 아들은 서로를 돌보며 서로에게 돌봄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의 등에 업히는 동시에 누군가를 등에 업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296~297페이지)

 



고령화 문제는 한국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드물고, 고령자 수는 늘어간다. 죽기 전까지 건강하면 좋겠지만 병치레를 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수록 병원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의료인으로서 삶과 죽음 앞에서 어떤 치료를 할 것인가. 고민과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묵직한 질문을 건네는 작품이다.

 

 



#물망초피는병원아즈사가와 #나쓰카와소스케 #문예춘추사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문학 #일본소설 #의학소설 #삶과죽음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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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전과를 숨긴 채 억만장자의 집에 가정부로 입주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대목에 혹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저택에 입주한 가정부가 종잡을 수 없는 가족과 지내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심리 스릴러다 보니 장이 술술 넘어간다. 더군다나 다락방의 잠금장치가 안에서는 잠글 수 없고 밖에만 있었다는 게 이 소설의 중요한 대목이다. 책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1장은 가정부로 입주한 밀리, 2장은 억만장자의 아내인 니나, 3장은 다시 밀리가 화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간다. 사이코패스에게 붙잡힌 여성의 이야기가 꽤 매력적이었다.

 



심리스릴러의 매력이 누가 살인자인가,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유가 관건이다. 누가 살인자인가를 따라가다 보면 그 이유까지 파악하게 된다. 아마도 그 과정이 스릴러 소설이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꽤 오랜만에 스릴러 소설을 읽었는데, 흡입력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밀리는 십 대 때 살인 혐의로 10년간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가 나왔다. 바텐더로 일하다 해고되어 차에서 생활했다. 입주 가정부 구인 광고에 윈체스터 저택을 방문 후 꼭 취직하고 싶었다. 더 이상 차 안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누울 수 있는 침대, 씻을 수 있는 욕실이 필요했다. 비록 머물 공간이 좁은 다락방이라도 말이다. 친절했던 니나 윈체스터 부인은 정신이 오락가락했고, 딸인 세실리아도 밀리를 싫어했다. 다만 억만장자이자 친절한 앤드루 윈체스터를 보자 그의 매력에 빠졌다. 밀리의 이상형이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저절로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앤드루가 더 젊은 여성과 결혼할 수도 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보다 10킬로나 더 살이 찐 니나를 사랑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밀리에게 친절하다가도 어느 때는 했던 말도 하지 않았다고 밀리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종잡을 수 없는 니나의 행동에도 꿋꿋이 참는다. 밀리는 감옥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소설의 장치였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니 교묘한 속임수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친절하게 작가는 니나의 시점으로도 소설을 이끌어간다. 니나가 앤드루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친절하고 매력적이며 부자이기까지 한 앤드루의 매력에 빠지지 않기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부자이고 잘생긴 매력적인 사람이 다가오면 거절하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딸이 있는 니나가 앤드루에게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했고, 밀리 또한 친절하고 다정하며 매너 있는 앤드루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내면에 숨겨진 독은 보지 못할 것이므로. 다락방에 갇힌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엔 마을의 정원사로 일하는 엔조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특히 윈체스터 저택에서 장시간 머물며 묵묵히 정원 일을 하는데, 영어라고는 한마디 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어로만 말하며 밀리에게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그 정체가 드러나는데 엔조 또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동네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쳤으니 말이다. 여성들의 시선이 엔조에게 향하고 있었다. 밀리도 엔조에게 마음을 표현했지만 차갑게 거절당한 전력이 있다. 엔조와 밀리의 인연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스릴러 소설의 즐거움은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있다.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짜릿한 결말에 주인공들을 마구 응원하게 된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스릴러 소설을 읽게 된다. 책장을 여는 순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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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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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의뢰 #김성민 #창비교육

 



12시가 되면 비밀채팅방 <해결 사이트> 공지란이 깜박거린다. ‘오늘의 의뢰라는 글이 올라오며 채팅방이 들썩거린다. 누군가 의뢰를 한다. 어디 고등학교 몇 학년 몇 반 실명까지 거론되며, 전교 1등인 그 아이가 전교 1등 못하게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한다. 이어 해결사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해결해주면 다음엔 자신의 의뢰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규칙은 간단하다. 약속을 못 지키면 영원히 사이트 이용 금지다. 매일 비밀번호를 바꿔가며 소수의 인원만 참가하게 되는 비밀채팅방이 열리면 다양한 의뢰가 생긴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준다. 아주 심플한 일일 것 같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 시끄럽게 짖는 개를 죽여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면 그건 동물보호법 위반이 될 것이다. 또한 동물에서 인간까지 해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에피소드 중에 문구 센터에서 볼펜을 구입해 계산대로 갔더니 점원이 슬쩍한 펜을 내놓으라고 했다며 문구 센터 유리창을 깨달라는 의뢰 같은 경우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에 의해 문구 센터 유리창이 와장창 소리가 나며 깨지고, 안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짜릿한 무언가를 찾아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점점 정도를 더할 것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가 오픈 채팅방에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가림 중학교 2학년 해민이는 반찬가게를 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2층에 새로 이사 온 도경과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 문예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해민에게 주영은 소중한 친구다. 해민은 친구가 많고 활달한 성격의 주영이 부럽다. 동아리에서 공감 에세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대상을 수상하며 동아리 회원인 소정이와 불편한 사이가 된다. 소정이는 해민의 대상을 인정할 수가 없다. 수상에 대한 욕심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소정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고 노력도 많이 한다. 부모님 또한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기에 꼭 대상을 받고 싶었다. 물론 당연히 대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것도 없지 않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기다려주면 되는데, 부모가 되는 순간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큰 기대를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는가 말이다.

 



해민과 도경, 주영은 어른에게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친구와 생겼던 오해도 스스로 풀 줄 알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가며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대화를 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약간의 결핍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우친다. 어떤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들면, 결국 자신의 삶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혹시 이런 글을 보고 실제로 채팅방을 만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어떤 게 옳은 일인지 파악하고 있다. 오히려 어른보다 더 나은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엔 친구가 거의 모든 것이다. 만약 친구와 싸웠다면 세상을 잃은 것 같다. 친구와 우정, 시험공부, 글쓰기,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중학생이 하는 일상적인 고민과 비밀채팅방에서 일어나는 오늘의 의뢰 사건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친구와의 관계를 고민해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등 현실적인 문제와 상상력을 가미한 비밀채팅방, 누군가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주변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다. 시험 고민이나 친구와의 갈등, 미래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위로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오늘의의뢰 #김성민 #창비교육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청소년 #청소년소설 #한국문학 #한국소설 #창비교육성장소설상 #성장소설 #비밀채팅방 #너만아는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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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집 -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아무튼 시리즈 62
김미리 지음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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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집 #김미리 #코난북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춰두었던 기억까지 꺼내야 하는 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진솔한 글이 되는 것 같다. 글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일. 솔직하지 않은 글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글은 마음을 두드리는 일. 글 쓰는 이가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어야 진심이 통하는 법이다. 이 글을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미리 작가는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작가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52촌 생활을 하는 작가. 퇴근 후 금요일마다 시골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든든하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다. 목요일 퇴근 후 간단한 짐을 꾸려놓고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시골집으로 향한다.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여행지에서 집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김미리 작가의 집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다. 나 또한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작가가 생각하는 집과 내가 생각하는 집의 차이를 알고자 했다. 집은 안식처이자 생활공간 혹은 일터이기도 하며 가족과 머무는 공간이다. 가족과 머문다는 건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으며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어쩌면 집은, 혹은 집안에서 가족은 작은 사회를 배우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집은 기억의 공간이다. 내가 거쳐 온 집,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살았던 시골집, 지방 소도시로 이사해 남의 집 문간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셋집, 엄마가 학교 앞에서 핫도그를 팔았던 다락이 있던 가겟집. 그리고 유달산 밑의 오래된 우리집.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이층집과 아파트, 아파트.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을 떠올릴 때면 그 집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과거의 기억과 맞닿은 집. 집은 곧 기억의 장소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다. 거의 주말마다, 시골집(농막), 여행지의 숙소를 떠돌아도 결국 우리집에 들어서는 길은 안온함이다. 저 멀리서부터 안도감이 든다. 어서 들어가고 싶다.



 

운동회가 시작되는 참에 전학을 가야하는 게 서러워 울었던 어느 날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랑 싸운 뒤 울음을 참고 집에 들어와서야 엎드려 울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숨길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보이던 등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말이라도 시키면 곧 울음이 터지고 말 그 표정 말이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비록 새로운 집이지만, 익숙한 물건과 사람이 있는 공간은 소중한 공간이다. 곧 집이라는 건 사람과 더불어 자란 역사다.



 

내가 닫은 문을 내가 다시 열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문은 열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만 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뒀던 내가 그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어느 회사의 최종합격 소식이 들려온 날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도 도착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렇게 울며불며 살아낸 만큼만 앞으로 간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이었다. (139~140페이지)



 

집은 추억의 공간이다. 시골집을 떠올릴 때면 늘 떠올렸던 증조할머니의 모습처럼, 저자 또한 집은 곧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추억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늘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이다. 집은 엄마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돌보아주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상실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집은 또 다른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시골집을 구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마음을 달랬다. 꼭대기집과 다르게 수풀집은 일주일 동안 쌓아두었던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 하나가 위로가 되는 법이다. 집을 가꾸고, 농작물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리다 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퇴사 후 유럽 여행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염병이 찾아왔고, 유럽 여행은 막혔다. 퇴사 후 여행을 떠나려고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집에서 한 달을 보냈다는 저자의 에피소드에 웃음이 났다. 한 달 동안 집과 동네를 탐색했던 저자가 보고 느꼈을 모든 것이 상상됐다. 분위기 좋은 카페, 맛있는 음식점,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 한구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집, 현재의 집, 미래의 집을 포개어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50페이지)



 

지금 집으로 이사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지난 집에서의 기억이 많다. 새로운 기억을 엮어갈 이 집에서 쌓아갈 기억들이 기대된다.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정 붙이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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