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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집 -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울 것 같은 마음으로 ㅣ 아무튼 시리즈 62
김미리 지음 / 코난북스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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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나를 드러내는 일.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춰두었던 기억까지 꺼내야 하는 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진솔한 글이 되는 것 같다. 글은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일. 솔직하지 않은 글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글은 마음을 두드리는 일. 글 쓰는 이가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어야 진심이 통하는 법이다. 이 글을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미리 작가는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작가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5도 2촌 생활을 하는 작가. 퇴근 후 금요일마다 시골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든든하다.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다. 목요일 퇴근 후 간단한 짐을 꾸려놓고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시골집으로 향한다.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여행지에서 집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김미리 작가의 집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다. 나 또한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작가가 생각하는 집과 내가 생각하는 집의 차이를 알고자 했다. 집은 안식처이자 생활공간 혹은 일터이기도 하며 가족과 머무는 공간이다. 가족과 머문다는 건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으며 배려와 양보가 필요하다. 어쩌면 집은, 혹은 집안에서 가족은 작은 사회를 배우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

집은 기억의 공간이다. 내가 거쳐 온 집,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다섯 식구가 살았던 시골집, 지방 소도시로 이사해 남의 집 문간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셋집, 엄마가 학교 앞에서 핫도그를 팔았던 다락이 있던 가겟집. 그리고 유달산 밑의 오래된 우리집.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이층집과 아파트, 아파트.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을 떠올릴 때면 그 집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과거의 기억과 맞닿은 집. 집은 곧 기억의 장소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다. 거의 주말마다, 시골집(농막), 여행지의 숙소를 떠돌아도 결국 우리집에 들어서는 길은 안온함이다. 저 멀리서부터 안도감이 든다. 어서 들어가고 싶다.
운동회가 시작되는 참에 전학을 가야하는 게 서러워 울었던 어느 날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랑 싸운 뒤 울음을 참고 집에 들어와서야 엎드려 울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숨길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보이던 등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말이라도 시키면 곧 울음이 터지고 말 그 표정 말이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비록 새로운 집이지만, 익숙한 물건과 사람이 있는 공간은 소중한 공간이다. 곧 집이라는 건 사람과 더불어 자란 역사다.
내가 닫은 문을 내가 다시 열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문은 열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만 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뒀던 내가 그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어느 회사의 최종합격 소식이 들려온 날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도 도착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렇게 울며불며 살아낸 만큼만 앞으로 간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이었다. (139~140페이지)
집은 추억의 공간이다. 시골집을 떠올릴 때면 늘 떠올렸던 증조할머니의 모습처럼, 저자 또한 집은 곧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추억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늘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이다. 집은 엄마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돌보아주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상실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집은 또 다른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시골집을 구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마음을 달랬다. 꼭대기집과 다르게 수풀집은 일주일 동안 쌓아두었던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 하나가 위로가 되는 법이다. 집을 가꾸고, 농작물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리다 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퇴사 후 유럽 여행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염병이 찾아왔고, 유럽 여행은 막혔다. 퇴사 후 여행을 떠나려고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집에서 한 달을 보냈다는 저자의 에피소드에 웃음이 났다. 한 달 동안 집과 동네를 탐색했던 저자가 보고 느꼈을 모든 것이 상상됐다. 분위기 좋은 카페, 맛있는 음식점,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 한구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여전히 내 안에서 나를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집, 현재의 집, 미래의 집을 포개어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150페이지)
지금 집으로 이사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지난 집에서의 기억이 많다. 새로운 기억을 엮어갈 이 집에서 쌓아갈 기억들이 기대된다. 아픈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정 붙이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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