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홍금보 2 - 완결 앙상블
육시몬 지음 / 청어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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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게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홍콩배우 홍금보를 기억하시는지. 둥글둥글한 얼굴에 역시 둥글둥글한 몸매를 가진 이다. 홍금보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홍콩배우 홍금보인데 조선에서도 홍금보가 있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기생으로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홍금보라는 조선 기생은 풍채가 큰 여성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내비친다. 또한 이 책이 코믹 시대물 로맨스 쯤 되겠구나 싶은 것이다. 청어람하면 영화사 외에 로맨스 소설을 많이 펴내므로.

 

육시몬 작가의 전작 『사이코 칸타타』가 좋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작가의 색다른 느낌의 책을 만나겠구나 기대했다. 『사이코 칸타타』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여있는 육시몬 신경정신과에 있는 사람들과 그 건물 옥상에 사는 일명 고양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합심하여 트로트 가요제에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잔잔하면서도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된 책이었다.  

 

『조선기생 홍금보』의 주인공 홍금보는 사백 년 늦게 태어났으면 팔등신 소리를 듣고 살았을텐데, 사백 년 일찍 태어난 죄로 기생이되 다른 기생들과는 너무 다른 육척의 키와 큰 골격을 가진 이다. 일단 키가 커버리니 아담하고 오밀조밀하게 생겼을 다른 기생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목청도 커 조신한 여자와는 거리가 먼 기생이다. 그런 만큼 홍금보는 아직도 머리를 얹지 못했다. 그랬던지 사람들은 금보를 독각귀라 부른다. 하지만 홍금보도 잘하는 것이 한가지 있었으니 바로 소리하는 것이다. 청아한 목소리를 가졌고, 시를 들으면 그걸로 음을 만들어 소리를 낼줄도 알았다.

 

금보에게도 오매불망 좋아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장이강이라는 이로 꽃미남과인 얼굴을 가졌다. 홍금보는 통사관 장이강을 바라보고, 장이강은 벙어리 기생인 설향을 바라보고, 푸른 눈과 금발의 백인인 박수타는 홍금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들의 시선은 마주보지 못했고, 서로의 등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수 있는게 전쟁이었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때이다. 무능한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갔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왕이었다. 이런 왕이기에 신하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권력을 위해 상대편의 당파를 치려고 하고 당파를 지키려 한다. 활빈당을 이끄는 홍길동과 홍길동을 도우는 허균이 장이강의 벗이기도 하다. 

 

 

『조선기생 홍금보』는 완벽하지 못한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성을 원하는 것인지 로맨스 소설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이성을 바란다. 우리 상상속의 인물로 주인공 이성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조금씩 부족하지 않는가. 얼굴이 좀 못생겼다든지, 재산이 없다든지 하는. 이런 인물들 속에서 역사속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시기와 맞물려 이들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듯 이들도 서로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가슴아파한다.   

 

예전에  본 영화 〈음란서생 〉에서 그림을 넘기며 움직이는 그림이라해서 동영상이라고 했듯 이 책에서도 언어유희의 즐거움이 있다. 벙어리 기생 설향은 병풍 앞에서 입을 벙긋거리며 노래부르는 시늉을 하고, 병풍 뒤에서는 금보가 목소리를 내어 노래부른다고 해서 립신구(立身嘔)하는 표현에서도 그렇고, 육십갑자에 빗대어 소간지, 개간지라 부르는 것도 그렇다.  

 

로맨스 소설 특유의 달달함이 약간 부족한 듯 하지만 소설은 다분히 영화적이다.

영화속에서라면 웃음을 터트릴 만한 에피소드 들이 많았다. 신방을 차린 곳에서 박수타가 금보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에 낯뜨거운 소설인 '색주부뎐'을 읽어달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매일밤 '색주부뎐'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라. 책은 내용도 그렇지만 스물여덟가지 체위가 그려져 있기도 하는 책이다. 밤새워서 읽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콩닥거리지 않겠는가.

 

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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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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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버스에 탔을 때 들려오는 아이들의 욕설에 놀랜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80%는 욕설이었다. 욕설을 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렇게 욕설을 입에 담고 있었다. 욕설이 자신들의 얼굴에 침뱉기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후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싫어하는 게 욕설이라고 말했었다. 사춘기의 아이는 친구들도 다 쓰는데 하면서도 집에서는 쓰지 않았다. 지금도 제일 싫어하는게 욕설이긴 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는 말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요즘 영화나 책에서는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때가 많다. 그런 것들도 처음엔 영 거슬리더니 자주 들으니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었다.

 

다만 책에서 욕설이 난무할때 참 난감하긴 하다.

예를 들면 씨.발. 같은거. 이 단어를 읽는 것과 입밖으로 내뱉는 것,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쓴다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하는 말이고, 엄마를 가리켜 하는 말이기도 해서, 또 이 책의 리뷰에서는 이 단어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다.

 

자신을 앨리시어라고 하는 여장 부랑자가 있다.

지명의 유래가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고모리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에겐 나이 든, 늙은 아버지가 있고, 젊은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동생이 있었다. 고모리에서 단층집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있었고, 공사장 한쪽의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개장옆 콘테이너에서 그들은 머물고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머니가 꿈을 꾼 날이면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무지막지하게 맞는다. 때리면서 횟수를 세라고 하면서 때리는데, 그 폭력앞에서 늙은 아버지는 무심할 뿐이다. 모른척하며 술을 마시러 자리를 피해버리고, 동네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폭력을 방치할 뿐이다. 폭력 속에서 자라나는 소년들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 고미와 함께 고미의 아버지가 하는 고물상 곁에서 논다. 고미와 함께 구청에 가서 가정폭력상담센터로 가지만 그마저도 그들에겐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앨리시어는 잠이 오지 않는 어린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가 했던 이야기 중 네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네꼬는 둥근 생물로, 네꼬의 심부에는 고래 한마리가 살았다 한다. 고래를 잃고 떠다니다가 네꼬에게 차가운 것이 달라붙었다는 거다. 털투성이 조그만 것들이 네꼬의 표면에서 돌아다니다가 그것들은 교미를 하고 계속 새끼를 낳고 있었다. 그들은 배꼽을 누르며 계속 사라지고 네꼬는 밝은 갤럭시를 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갤럭시는 은하수라는 뜻으로 앨리시어는 어린 동생에게 은하수를 건너는 네꼬의 이야기를 해주며 어린 동생을 꿈 속으로, 편안한 잠으로 이끌게 해 주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고모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버린 고모리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며, 토끼굴을 찾듯 그곳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앨리시어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생각한다. 단단하고 길쭉한 침처럼 지상을 향해 꽂히는 빗줄기다. 비가 내려 좋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이 방은 안전하게 고립된다. 바깥이 비로 촘촘하게 닫혀 있으므로 누구도 무엇도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다.  (26페이지) 

 

별과 우주가스가 모인 곳은 붉은 머리카락 다발 같고 보라색 꽃 같고 용맹한 말의 머리 같고 노랗고 파란 눈동자 같을 것이다. 지금도 부지런히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63페이지) 

 

그대에게 앨리시어의 계절에 관해 말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환등기처럼 돌아가고 돌아오는 사계에 관해 말이다. (88페이지)

 

앨리시어는 그 거리에서 오래전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의 냄새를 피우며, 흔적을 남겨놓고 그렇게 사람들 곁에서 오래전 고모리에서 살던 일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얇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으로 경장편이라고 표현되는 책이다. 얇은게 아쉽긴 하지만, 책을 한번 읽고 다시 읽었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차오르는 책이다. 고모리가 없어진 그곳을 헤매고 있는 소년 앨리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어머니와 흡사한 앨리시어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모습도 씨.발.년.으로 그 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 거리에서 나는 앨리시어의 냄새를, 흔적을 찾을 것 같다. 그가 그 거리에서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 거리에서 앨리시어의 꿈을 꿀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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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0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글에서 씨발 이니 뭐니 하는 욕을 써놓은 것을 보면 불쾌하더군요.마치 내가 욕먹은 느낌...
욕을 글에 쓰는 사람은 그냥 말하듯 쓴 것이니 친근한 표현 아니냐는 핑계를 댈지 모르겠지만...왠지 교양이 없어보이고 평소에도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Breeze 2013-11-08 11:27   좋아요 0 | URL
이 리뷰에 쓴 욕설도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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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분노의 포도』였다. 그외 존 스타인벡의 다른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을 읽게 되었다. 「붉은 망아지」는 존 스타인벡의 초기 작품으로 <선물> <깊은 산> <약속>, <대장>이라는 네 편의 연작으로 된 중편소설이다. 「불만의 겨울」은 존 스타인벡의 마지막 소설이며 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붉은 망아지」에서는 한 소년 조디가 나온다.

농장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빌리 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조디에게 붉은 망아지 한 마리를 사다 준다. '매'라는 뜻을 가진 '가빌란'이라 이름지어주고 온 마음을 다하여 망아지를 돌보았다. 어느날 비가 오지 않을거라는 빌리 벅의 말을 듣고 망아지를 밖에 놔두고 학교를 갔었는데 그날은 빌리 벅의 말과는 다르게 세찬 비가 내렸다. 붉은 망아지가 감기에 걸릴것 같아 애를 태우지만 그는 학교에 있었다. 학교가 끝난후 집에 돌아오자 망아지는 세찬 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고 가빌란은 감기에 걸리고 만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수 없을 정도로 가빌란을 돌보지만 가빌란은 독수리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망아지를 잃고 농장에서 생활하는 조디는 어느새 성큼 자라나는 성장소설이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조디, 자신의 분신처럼 망아지를 돌보는 모습, 빌리 벅을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믿고 따랐지만 빌리 벅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불만의 겨울」은 미국의 한 항구도시에서 살아가는 남자 이선 엘렌 홀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자 현재는 자신의 가게였던 곳의 점원으로 일하는 이선 홀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성 금요일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이르는 동안의 일들을 담았다.  

 

 

 

이선은 겉으로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다. 아내 메리를 사랑하며 십대의 딸과 아들을 사랑한다. 하루하루 점원으로 일하는게 지겹기도 하지만 아내가 가진 유산에도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한다. 우체국 직원과 은행장과도 친절하게 지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돈만 조금 없다 뿐이지 더할 나위없는 가장으로 비춰진다. 아내와 친하게 지내는 마지가 가게에 찾아오며 이선은 다른 삶에 접어들게 된다. 마지는 아내에게 좋은 친구로 비춰지지만, 가진 것을 놓치기 싫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을 이선의 욕망과 비춰보았을때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듯 평범한 가장인 그에게 다른 욕망이 생긴다.

자신이 점원으로 있는 가게의 주인인 마룰로가 불법 이민자 였음이 밝혀지고 누군가에 의해 신고되어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자신의 친구 데니는 술주정뱅이인데 그에게 알코올 치료에 쓰라며 천달러를 주는 모습 등도 보이게 된다. 이 모두 그의 숨은 의도가 있었다. 겉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였지만 자신의 욕망을 실천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돈에 관한한 이렇듯 남의 아픈 부분, 감추고 싶은 부분을 이용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 호황인 시절, 자본주의에 물들은 사람들의 비틀어진 욕망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용하고 그로 인해 그의 재산을 가로채는 일,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던가.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의 성공을 향해 좇는 사람들의 비틀어진 욕망 말이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는 소재이기도 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었던 십대 아들을 보고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투영되어 그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

 

이제 불만의 우리 겨울은

요크의 태양 덕분에 영광스러운 여름이 되었도다. (409페이지)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 1막1장의 첫 대사에서 따온 글로 이 글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비틀어진 욕망을 품었음에도 불만을 품었던 추운 겨울에서 한줄기 빛을 품어줄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는 책이었다. 이제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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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0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인벡은 장편도 잘쓰지만 <진주> <붉은 망아지>등 중편 분량도 재밌죠.<붉은 망아지>는 어린이 청소년용으로도 번역되었고요.특히 저는 외할아버지가 방문한 이야기가 인상깊었습니다.늘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는 장인어른과 한바탕한 남자(소년의 아버지), 친정아버지와 얼굴 붉히는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여자(소년의 어머니)를 보면서 우리나라 연속극에 나오는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Breeze 2013-11-06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장면에서 웃었어요.
지금과 다를바 없잖아요. 할아버지는 한 이야기 또하고 또 하고, 대개는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데, 책에서는 아버지가 듣기 싫어하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
 
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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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결혼 시장에서 외모, 집안, 재산, 직업에 따라 등급을 나누게 되는데 통틀어 D등급으로 표현된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며 나의 등급을 매겨보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는데, 이젠 고등학교의 성적과 외모를 5등급이라 표현한 여고생이 주인공인 소설을 만났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생, 아무리 노력하고, 과외를 해도 성적이 5등급 밖에 되지 않는다면 갈수 있는 대학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문을 두드릴수 없는 등급, 엄마는 서울에 있는 대학만이라도 가길 원하며 여고생의 등급을 올려보려 하지만 내가 봐도 힘들다 싶었다. 5등급으로 과연 무얼할 수 있을까.

 

그녀, 고등학교 3학년생, 방인영. 인영은 성적만 5등급인게 아니다. 엄마의 외모를 닮았으면 좋으련만, 엄마의 외모 등급인 2등급을 훨씬 밑도는 5등급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머리를 닮았으면 좋으련만, 인영은 엄마의 머리와 아빠의 외모를 닮았다. 공부가 안되면 외모로라도 어떻게 해볼텐데 그녀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인영의 마음속 낙타를 키우고 있는 걸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인영과 다를바 없는 성적 등급에서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과는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걸 보며 아이에 대한 기대치를 점점 낮춰가고 있었다. 그래도 잘하는 것 있겠지하며 아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안되는 공부, 안되는 외모, 있는 돈, 자신을 속박하는 엄마, 자신을 무시하는 부자 아빠. 이 모든 게 인영이 꿈 속에서 낙타를 타고 모래위를 걷게 하는 것 같았다.  

 

재벌 총수와 사회 고위층 비리층을 변호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 변호사라 부르는 인영은 자신을 옭아매는 어머니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 40대 공무원인 '모래의 남자'를 꿰뚫어보며 그에게 청부 살해를 의뢰한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기숙학원을 알아보며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방변호사와 엄마에게서 자유롭기 위해.

 

 

순전히 부모에게서 자유롭기 위해 자신의 부모를 청부 살해 의뢰를 한다. 더구나 여고생이. 살인을 하는데 여고생과 남고생이 특별하게 차이가 없을테지만 작가는 우리의 발상을 뒤엎는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방인영이라는 인물은. 작가는 여고생의 마음속을 빌어 현재 고등학교 생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머리 등급은 좋지 않지만 외모로 돈 있는 남자를 만나 아이에게 좋은 학교를 보내겠다며 과외를 붙이고, 아이의 모든 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더구나 하는 일이라곤 피트니스에서 몸매 관리에만 쏟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또한 머리가 좋아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고시에 패스에 변호사를 하며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죄가 안되게 변호를 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이런 부모와 삼촌, 고모의 모습들을 빌어 요즘 기성세대의 모습들을 고발한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사람들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인영이 한 달에 한 번씩 꾸는 꿈이 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꿈을 꾸는지, 낙타가 나타나는 꿈을 꾼다. 모래먼지가 안개처럼 흩날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을 낙타를 타고 모래위를 걷는 꿈이다. 인영이 타고 있는 낙타는 어느새 코뚜레를 하고 있다. 앞이 흐려진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다. 꿈속에 나타는 코뚜레를 하고 있는 낙타는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하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모래위. 어느새 인영의 모래에 갇힌 여자가 되고 만다. 다른 남자를 불러와야만 하는 모래의 여자.

 

자신의 미래를 알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무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 미래.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는게 한 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한 여자아이를 살인 청부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나. 내 삶을 헤쳐 나가는 주체도 나.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염원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펀치 한 방 맞았다.

이재찬이라는 작가에게, 발칙한 여고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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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1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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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었던 집은 이런 집이다.

기와가 얹혀진 자그마한 한옥집, 마당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집 양쪽엔 하얀 꽃을 피우며 주변에 향기를 흩뿌려주는 은목서를 두 그루쯤 심어져 있는 집. 햇볕이 많이 들어오게 창은 넓어야 하고, 하늘거리는 하얀색 레이스 커튼이 달려져 있는 집. 벽 한쪽 면엔 천장까지 닿을 책장이 있어, 책을 찾으려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는 곳. 책을 자주 읽기 때문에 푹신한 쇼파가 있었으면 좋겠고, 주방엔 자주 커피를 내려 마실 커피메이커가 있는 집을 상상한다. 물론 그 공간을 함께 사용할 사람이 있어야겠지.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공간.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꿈꾸는 집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집, 짓고 싶은 집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어도, 어느 순간에 보면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짓고 또 짓고 쌓아갈 것이다. 상상속의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꾸미고자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여기 칸트라 불리우는 두 인물이 있다.

자신이라는 집에 갇혀 사는 '나의 형 칸트'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지은 집 속에 갇혀 버린 '건축가 칸트'가 있다. 이 둘은 사람과의 소통에 힘겨워하고 자신의 안에 갇혀 사는 인물이다. 열다섯 살의 소년 열무(김치 담그는 그 열무김치라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열일곱 살의 형 소나무,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섬으로 이사 왔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 해서 그럴듯 해보이지만 휴가때 펜션으로 내놓았던 곳이다. 가까이 가보면 페인트는 벗겨지고 색이 바래 허름해 보이는 곳이다. 서울의 아빠가 있는 집을 떠나 온 곳, 이곳은 예전에 열무 가족이 휴가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했다. 하지만 함께 공간을 엮어갈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걸 계산에 넣었을것 같지는 않다.  

 

 

매일 같은 시각에 검정색 길다란 코트를 입고 새떼를 끌고 다니며 산책하는 남자가 있다. 어느 누구와도 눈인사를 하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산책을 하는 남자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와 비슷하다며 그를 가리켜 칸트라 부른다. 또 한 명의 칸트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야하고 식판에 줄맞춰 반찬을 놓아야지만 밥을 먹는 자신의 규칙안에서 생활하는 칸트 나무가 그다. 나, 열무는 건축가 칸트를 남들처럼 소장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상자같은 집, 관 같은 집엘 다닌다. 그의 뒤에는 그의 형 나무가 뒤따른다. 두 칸트는 서로 만났을때 인사법도 독특하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자신만의 인사법으로 서로를 맞는다.

 

다른 이들과 소통에 문제 있었던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무심한듯 소통을 하고 있었다.

관처럼 생긴 곳에서 살아가는 그가 한때 유명한 건축가 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명의 칸트와 열무는 칸트의 집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칸트의 집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형 나무는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자기가 수집한 바닷가의 물품들을 서랍장에 보관하고, 소장님은 책상앞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무심한 듯 책을 읽는다. 이 둘을 관찰하는 열무는 소장님이 열무와 나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의 행동에서 그게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아했던 칸트도 어느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이 하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칸트의 집에 가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타나지 않았을때 허망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난 나이 든 칸트, 그가 산책나갔다가 시간에 맞춰오려고 뛰어왔던 숨소리를 보았던 날이다. 말로는 오지 말라고 했으면서 은근히 그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칸트의 행동에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만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소통하는 이야기이다. 나이를 떠나, 그 모든 것을 떠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혼자만의 시간을 두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열었던 건축가 칸트와 가장 완벽한 집은 이미 마음속에 지어져 있단다. (10페이지) 라고 이야기하며 집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어느새 마음속에 자신만의 집을 그릴수 있게 된 열무와 나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 대한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했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다. 지나간 과거를 끌어안고 외로움을 썩히느냐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는 일, 마음을 열어 누군가와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참 따뜻한 책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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