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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아말리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평점 :
그의 글은 주로 철학적인 에세이가 많은 것 같다.
꼭 철학적이기 보다는 모든 장르의 글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할까.
소설이되 소설 같지가 않고, 그녀의 삶의 이야기이되 또 음악과 함께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열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한 편으로 보면 인생에 대해서 관조하는 삶을 사는 것도 같다. 그의 작품 『옛날에 대하여』를 읽으며 이게 소설인가 싶었지만 엄연히 마지막 왕국 시리즈 장편소설이였다.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나는 줄을 긋고 싶은게 많아진다. 그의 글은 우리를 심연에 들게 한다. 그래서 깊이 새겨두려고 색색의 포스트 잇을 붙여놓고 자주 들여다보길 즐긴다. 이번 책은 『옛날에 대하여』라는 책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읽기 편한 글이었다. 역시나 그의 사유를 엿볼수 있는 글이다.
파스칼 키냐르의 분신과도 같은 안 이덴의 이야기이다.
음악을 하는 그의 모습과 역시나 음악 작업을 하는 안 이덴의 모습은 서로 거의 흡사할 정도이다.
『빌라 아말리아』에서의 안 이덴은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갑자기 모든 것을 정리한다. 함께 살고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키스 했다는 이유로 그의 짐을, 그가 속했던 모든 것을 지우고, 자신의 흔적도 지우기 시작한다. 그가 속해 있던 악보 만드는 일을 했던 직장도 정리하고 집도 매매해 버린다. 같이 살던 토마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모든 것을 지우기 시작한다. 지난 삶의 지겨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직 혼자가 되기 위한 삶을 꿈꾸었다. 새로운 삶에의 열망으로 아무 형체도, 존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시간이리라. 그 시간을 다른 여인이 살게 되리라. 그 시간은 다른 세계에 존재하리라. 그 세계가 다른 삶을 열어주리라. (95페이지 중에서)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안은 빌라 아말리아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녀는 집과 사랑에 빠졌다 - 즉 사로잡혔다. ((155페이지)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은 이제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부르는 집. 그녀를 매혹시킨 집과 열정적으로 강박적으로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곳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음악 작업을 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안. 그녀와 관능적인 우정을 나누는 라드니츠키의 딸 레냐를 만나며 안은 폭풍같은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만다. 말을 잘 하지도 못하는 아주 어린 여자아이 마그달레나와 쥘리에타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집착, 광기와도 같은 사랑.
아직 어린애일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몸의 각 부분이 빛을 발산해. 완전히 태양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어. 빛은 아이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거든.
(319페이지 중에서)
그녀가 만드는 음악. 음악가에 대한 헌사를 보낸다. 자신이 발굴한 악보나 그것에 대한 기억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작업. 요약하고, 장식을 제거하고, 잘라내고, 쳐내고, 압축하여 음악을 만든다. 음악을 만드는 주인공이어서 그런지 나는 피아노 곡을 떠올렸다.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곡. 안 이덴이 작곡 한듯 그렇게 음악에 빠져 지냈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솔직히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때도 있었다.
안 이덴 처럼. 나는 안 만큼 냉정하지도 않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기가 힘들어 떠남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도망친 아버지, 도망치는 삶을 사는 안 이덴. 우리는 모두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아주아주 멀리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새 삶을 준비하는 설렘, 두려움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도 그런 삶을 꿈꾸어본다. 한 번쯤은 나도 도망치고 싶다. 소멸하는 삶, 생성되는 삶. 나도 안 이덴 처럼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다시한번 파스칼 키냐르의 글에 매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