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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평점 :
아무도 없는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다지 우거진 숲도 아니었지만 사람의 발길도 뜸한 이른 아침의 숲은 왠지 두려움이 일게 했다.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들리는 숲의 자잘한 소리들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가 들릴라치면 가슴부터 뛰었다. 누군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도 무섭지만 갑자기 동물들이 뛰쳐 나올것도 같았다. 아는 길이었지만 인적이 없는 숲은 지금도 두렵다. 가다가 사람들을 발견했을때의 그 안도감이 생각난다.
만약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우거진 숲에 들어섰다가 방향을 잃어 길을 헤맨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도무지 나가는 일이 보이지 않을때의 그 두려움. 숲의 이야기,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숲의 두려움을 알게 해주는 소설이다.
1부는 실종된 형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간 이하인의 이야기이다.
치통때문에 자신을 매일 패기만 했던 형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형이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서쪽 숲으로 갔다. 새로운 관리인 박인수는 전 근무자를 알지도 못하고, 벌목꾼을 관리하는 진선생을 소개시켜 준다. 마을 사람들에게 형 이경인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형의 소재를 알고 싶어하는 변호사 이하인은 진선생을 만난 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2부에서는 숲의 관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루종일 할 일이 없이 일지를 기록하는 일만이 전부인 그의 숲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와 그의 과거, 현재의 기억들이 춤을 춘다. 꿈을 꾸었던 것처럼, 자신이 한 일들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이기도 하다. 3부는 마을 사람들인 숲에 얽힌 비밀들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들 같은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가 말하는 숲의 이야기이다.
이하인이 형 이경인을 찾으로 숲에 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인 최창기, 이안남, 한성수를 차례대로 만나며 형의 실종을 파헤쳐나가는 중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우리의 주인공이 갑자기 죽어버린 그런 허무함을 느꼈다. 형을 찾으러 온 이하인이 죽어버리면 형 이경인은 누가 찾는단 말인가. 사실 밤에 1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두려워 한밤중에 책을 조용히 덮기도 했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기에. 2부에서 또한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술에 취한 박인수의 행태를 보며 실종된 이경인을 유추할 뿐이다. 3부 또한 마찬가지. 관리인 박인수와 숲에서의 비밀을 쥐고 있는 최창기나 이안남, 한성수가 벌목꾼으로 있었을때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독자들을 후련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모호한 결말로 인해 계속 서쪽 숲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숲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경인이 실종되었으며, 또한 새로운 관리인 박인수가 보여주는 행태를 보며 박인수의 모습에서 이경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거울처럼 그들의 모습이 비슷하다. 박인수의 행동이 과거의 이경인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부엉이 소리 또한 마찬가지.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엉이가 이 책의 어떤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애매모호하다. 사방을 둘러보는 부엉이의 눈, 무언가를 했을텐데. 무슨 일인가를 했을텐데 그것 또한 모호하다. 우리의 상상에 맡기는 것인가. 많은 장치를 숨겨놓고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마치 불안한 우리의 삶처럼.
『서쪽 숲에 갔다』로 편혜영 작가를 처음 만났는데 글이 참 마음에 든다.
미스테리 소설인가 싶으면 아닌 것 같고, 우리를 글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글발도 마음에 든다. 고요히 서 있는 나무들로 뒤덮인 숲속에 가면 이 서쪽 숲이 떠오를 것 같다. 덩굴 때문에 발이 감기고 교교한 소리를 내는 검은 숲. 그 숲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 들도 떠오를것 같다. 기억속에 숨겨 놓은 숲에서의 일들을, 숲속으로 간 사람들을. 숲속에서 들리는 모호한 소리들에 귀 기울일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