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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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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알 수 없다.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하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가정을 질문으로 건네보지만, 가지 않은 길은 알 수 없다. 그저 상상에 맡길 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빅토리아는 왜 집에 머물지 않았느냐다. 물론 1948년의 여성의 지위는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빅토리아의 엄마도 죽기 전에는 집안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었나. 사실을 말하고 아이를 낳고 키웠다면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를 잃고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 모든 게 작가의 계획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십 대 소녀 빅토리아는 수줍어하고 말이 없다. 지금은 호수가 된 아이올라의 내시 복숭아 농장의 딸인 빅토리아는 어머니와 오빠, 이모를 사고로 잃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폭력적인 남동생 세스, 이모부는 전쟁에 나갔다가 다쳐 휠체어에 앉아 시간을 축낼 뿐이다. 남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새벽이면 복숭아를 따는 게 빅토리아의 일상이었다. 어느 날 세스를 찾으러 갔다가 이방인 윌 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윌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구릿빛 피부에 왜소한 몸매를 가졌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인전이라고 하며 차별하며 경시한다. 역사는 이긴 자의 거라고 하던가. 아메리카를 지키던 인디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놓고 오히려 자기들의 목숨을 위협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던 윌에게 마음을 빼앗긴 빅토리아는 그를 찾는 이들을 피해 도망가기를 바랐지만, 그는 빅토리아의 곁에 머물렀다.
윌이 피부가 벗겨진 채 시체로 발견되었던 날, 빅토리아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다.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복대로도 더 이상 감출 수 없자 윌와 함께 보냈던 산막으로 향했다. 혼자 아이를 낳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산에서 내려왔다가 젖을 먹이며 소풍을 즐기는 가족의 차 안에 아이를 넣어두고 도망쳤다. 빅토리아가 배고픔에 집으로 돌아갔다면 아버지는 그녀와 아이를 환영하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댐 건설로 아이올라 마을이 수몰될 거라고 공무원이 찾아오자 빅토리아는 가장 먼저 땅을 판 사람이 되었다.
빅토리아는 대지의 여신에 가깝다. 집과 농장을 판 뒤에 멀리 떠날 줄 알았다. 달콤한 복숭아를 살리기 위해 대학교수를 찾아가 복숭아나무 모두를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던 건 의외였다. 오래된 나무는 토양이 다르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대학 교수와 연구팀은 토양에 적응시키는 작업을 하고 일이 년 사이에 핀 꽃은 모두 따 주어야 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내시 복숭아가 다시 달콤해졌을 때 빅토리아는 아들이 그리워졌다. 소풍 나온 가족을 발견했던 골짜기의 바위 위에 아들의 나이만큼 돌을 올려두기 시작했다. 아마 이 시점부터 간절하게 바랐던 거 같다. 빅토리아와 아들이 만날 수 있기를, 빅토리아에게 선물처럼 찾아오기를 바랐다. 어쩌면 빅토리아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상상했던 거 같다.
쫓기던 윌을 품어주고, 산막에서 돌아온 빅토리아를 품어준 루비엘리스 할머니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 사람 모두가 기피하는 대상이었으나 윌에게 누비이불을 건네주고 집에서 머물게 했을뿐더러 말없이 둘을 이어주었다. 루비엘리스가 쓰러졌을 때 집으로 데려와 가까이에서 그녀를 돌봐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루비엘리스나 빅토리아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터전에서 기적의 복숭아를 탄생시켰던 장면에 감탄했다. 기온을 정확히 지키고 때에 맞춰 복숭아를 수확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10년 넘게 복숭아나무를 키웠지만 한 번도 그 맛을 보지 못했다. 그 비법이 궁금했다.
빅토리아 혼자서 아이를 낳는 장면과 슬픔을 속으로 삭이는 장면에 펑펑 울었다. 빅토리아에게 왜 이렇게 가혹한가. 그녀를 돌봐줄 어른이 없다는 게 슬펐다. 그녀가 추스를 수 있었을 때 비로소 친구가 생기는 장면은 이 모든 관계는 내가 마음을 열어야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143페이지)
윌의 말은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른다. 빅토리아의 삶의 모토였다. 잃어버린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거라는 거.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도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갈 거로 생각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 같았다. 수몰된 마을, 저수지 밑바닥에 있을 마을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장면 또한 기억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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