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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ㅣ Endless 2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평점 :
#나는자정에결혼했다 #한지수 #넥서스
한지수 작가의 책을 받아들고 처음 만나는 작가라 설렘을 안고 책장을 폈다. 책을 다 읽고 혹시나 하고 내 블로그에 검색해보니 몇 년 전에 읽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40일의 발칙한 아내』라는 작품으로 가상의 공간과 현실이 교묘히 섞인 다분히 영화적인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어쩐지 익숙한 문체라고 여겼던 듯하다.
새로운 한국 작가의 작품 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소위 문학 마니아라고 우기면서 한국 작가를 몰라서 되겠느냐는 나름의 방어적 기제랄까. 7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소설집으로 작가가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경험,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한 작가가 편집자에게서 5일간의 시간을 얻은 후 모텔방에 틀어박혀 3박 4일 동안 썼던 작품 「이불 개는 남자」가 있다.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낮에만 방에 틀어박혀 지냈던 여자가 밤에만 사용하는 남자에게 남기는 쪽지 한 장이 이 소설의 제목이다. 시간이 다르지만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만남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사용한 공간에서 나의 공간으로 전이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 상대방과 내가 모두 좋을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다.
「천사들의 도시」는 한국에서 완구를 수입하다 부도가 나 필리핀의 앙겔레스 시티 즉 천사들의 도시에 터를 잡은 제임스가 겪은 이야기다. 그는 필리핀의 이민국으로부터 워킹비자를 아직 얻지 못한 상태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돈으로 비자를 받기 위해 애쓰지만, 필리핀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제임스가 밝혔다시피 ‘여기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말이지만, 이 땅은 안 되는 게 없고 또 되는 것도 없다.’(103페이지)라는 거다. 워킹비자만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 같지만, 이민국에 아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추궁하면 뒤꽁무니를 빼는 식이다. 밟거나 밤이면 오므라드는 보라색 잎을 가진 미모사와 제임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치과의사가 나오는 「페르마타」는 최근 이사 준비로 사랑니에 염증이 생겨 치과에 누워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치과의사가 공황장애가 생기면 충치나 신경치료에 필요한 작업을 할 때 실수하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겁이 났다. 본래 박자보다 길게 연주하라는 음표, 페르마타. 죽어가던 고혈압 환자의 눈과 비유했던 장면은 두려움을 유발했다. 치과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거. 그러한 염려가 두려움의 형태로 나타나는가 싶었다.
한지수의 소설은 뭐랄까. 꽤 섬세하면서도 최근 젊은 작가들과는 다른 작품을 쓰는 것 같다. 자기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부터가 달랐던 듯하다. 모호하고 몽환적인 혹은 불투명한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보는 게 아니다. 현실에 맞서 싸우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다. 우리의 삶을, 담담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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