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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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하자키 목련 빌라의 모습을 그려본다. 하드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쓰노다 고다이의 저택 앞으로 콘크리트로 지어진 다섯 채씩 총 열 개의 빌라가 있다. 빌라 입구에는 목련 한 그루를 심어 목련빌라라 불린다. 제법 두껍게 콘크리트를 지었던지 옆집의 소음은 들리지 않은 데 비해 창문 아래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유일한 빈집 3호에서 사체가 발견되었다. 부동산 사장의 아내가 젊은 부부에게 집을 보여주다가 발견했다. 시체를 발견한 부동산 사장 아내와 젊은 부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주택에 시체가 발견된 경우, 주변 사람부터 조사하여 용의자를 좁힌다. 그런데 목련 빌라의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도 주민들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인을 유추해보지만 그럴수록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피해자는 비교적 작은 키에 검은 피부를 가졌고, 오른쪽 송곳니가 없다. 돈이 없어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입고 있던 옷도 허름하다.


 


 

 

빌라의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이유는 시체가 나타내는 인물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거다.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시청 공무원 후유, 고서점 기토당을 운영하는 노리코, 빈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고다마 부동산의 사장, 호텔 남해장을 경영하는 세리나, 이웃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케미 등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는 거다. 용의자들은 차고 넘친다.

 


이웃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두려움에 떨 법한데 목련 빌라의 주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스스로 탐정 역할을 한다. 중요한 단서는 후유의 쌍둥이 딸의 떠드는 말에서 나타났고 경찰들은 용의자를 점점 좁혀간다. 그러다가 또 한 건의 살인이 발생하고 두 사건이 연쇄 살인인지, 살인이 일어난 틈을 이용해 다른 살인을 계획한 것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소설에서 하드보일드 작가 부부의 정체도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작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내의 말에서 무언가 숨기는 것만 같다. 결말에 가서야 쓰노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난다. 살인 사건이라고 해서 모두 심각한 것만 아니다. 약간은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후유의 딸들이 켄을 쫓아 달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몇 명이 한 줄로 늘어서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가공의 바닷가 도시 하자키를 배경으로 하는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과 함께 읽으면 좋을 거 같다. 물론 각 권은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닐까. 이들의 일상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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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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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건가. 힘든 시절을 겪었어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를 전자책으로 아주 서서히 읽고 있던 참에 이 책의 가제본을 읽고 책이 출간된 후 다시 읽었다. 하버드 스퀘어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을 그린다.



 


는 열일곱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여름 캠퍼스 투어 중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곳 매사추세츠에 와 있다. 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말해왔던 장소를 캠퍼스 투어 중에 찾아와 감회에 젖었다. 그리운 학창시절을 떠올리지만, 아들은 캠퍼스 투어에 시큰둥하다. 조금 변하긴 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기엔 충분하다. 돌아갈 수 없었던 하버드 시절, 가난 때문에 힘들었어도 인생의 단 한 명의 친구를 만난 시간이기도 하다.


 

1977년 여름의 케임브리지. 여름방학을 맞은 캠퍼스에서 는 도서관 한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돈은 모두 집세로 들어갔다. 17세기 문학에 관한 종합시험을 치르는데 필요한 책을 읽는 중이다. 시간이 되면 카페 알제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던 와중에 따다다다프랑스어를 들었다. 칼라슈니코프 즉 칼라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와 친구가 되었다. 다소 거칠고 군인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그 시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케임브리지에서 유일한 친구였다.

 


가장 힘들 때 버팀목처럼 곁에 있어 주었던 친구다. 하버드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면서 지난 시절의 인연이 부끄러워졌다. 앨리슨의 부자 아빠와 저녁을 먹었을 때도, ‘는 칼라지와 마주칠까 봐 피해 다녔다. 종합시험에 통과하고 강사로 일할 때, 로이드-그레빌 교수와 저녁을 먹을 때에도 칼라지의 눈을 모른 척했다. 그린카드를 얻지 못하면 강제 추방이 될 줄 알면서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비겁해지는 건 어느 한순간이다. 친구의 곤란한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주류의 삶에 끼어든 나와 차별을 두고 싶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교묘하게 바쁜 척, 모르는 척하면 된다.


 

수치심은 비유이고 단어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혼이라는 커다란 환전소에서, 수치심은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에 가까이 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또 하나의 결핍된 단어일 뿐이었다. (333~334페이지)

 


칼라지를 버리는 일은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싶은 것.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이집트에서 부모님이 추방당했던 것처럼. 그의 사정을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지난날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 일부러 감춰 둔 기억을 헤집으며 그 시절의 자신과 마주했다. 단 하나의 친구를 버림과 동시에 묻었던 기억이었다. 부끄러움,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올리는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나 마주했던 기억들은 고통이며 또한 애증이었다. 아름다웠던 시절.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간이다.


 

만약 그 시절의 그라면 우리도 그러지 않았을까. 마냥 그의 책임만 물을 수는 없다. 칼라지도 그를 나무라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 작별인사쯤은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시절을 같이 보낸 관계로 누구보다도 가깝게 여겼으니까. 그 모든 일을 뒤로하고도 그 시절은 그리운 법이다. 다만 추억할 뿐이다. 그 시간 속에 머물렀던 기억들을. 어쩌면 그 기억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삶이란 그런 법이므로.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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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설 상.하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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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와 여행을 자주 다닌다. 한 자매가 멀리 있을 때는 자주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 오면서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열심히 친해지는 중이다. 사람은 타인이든 가족이든 자주 만날수록 가까워지는 거 같다.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고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자매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게 되면 어쩐지 내 자매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이번에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성적인 시각과 여성의 문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오사카의 마키오카 집안의 네 자매 이야기다. 네 자매 중에서 셋째 딸인 유키코의 혼담을 주제로 하여 오사카 지방의 다양한 문화를 나타낸다. 자매들의 결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비교되기도 한데 자매간의 관계가 더 주를 이룬 게 특색이다.


 


 

 

소설 속에서 몇 번 언급하는데, 편지나 전화에서 받았던 자매간의 갈등도 마주보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의견이 달라 다투지만, 결국엔 미워할 수 없는 자매들의 특성을 나타냈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일본식 미인으로 비치는 유키코의 결혼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남자들은 왜 유키코의 매력을 보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니 우울하게 비치는 것도 있었다. 유키코와 혼담이 오갔던 남자들은 정숙하고 조용한 여성을 바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더 선호하는 거 같았다. 미용실을 하는 이타니 씨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언니 사치코나 다에코가 함께 나오는 걸 주저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키코가 빛나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이 눈에 띄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신부보다 화려한 옷을 입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가장 빛이 나야 할 사람을 가리게 되므로 그렇다.


 

유키코와 다에코, 사치코의 맏언니인 쓰루코를 내심 미워했다. 비록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였다지만 유키코와 다에코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쓰루코와 남편 다쓰오는 사치코의 집에 머무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듯했다. 물론 쓰루코의 자식들은 여섯 명이나 되어 경제적으로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소설의 전개상 계산적인 면을 내보이는 데서 나타난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사치코와 데이노스케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자매들에게 헌신적인 사치코를 이해했고 아끼는 모습에서다. 원래는 유키코나 다에코는 큰집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도쿄나 우에혼마치의 집을 불편하게 여겼고, 무엇보다 유키코는 사치코와 데이노스케 부부의 딸 에쓰코를 자기의 친딸처럼 아꼈다. 유키코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랐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다아시 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다. 우리의 희망에 불과했다.

 


유키코와 대조적인 인물로 넷째 딸인 다에코를 들 수 있겠다. 인형 만드는 손재주가 있어 그 시대에는 드문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나온다.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비치는데 일찍이 오쿠바타케와 가출한 전력도 있었다. 오쿠바타케나 그의 점원이었다가 사진사가 된 이타쿠라와 염문을 뿌리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자매들은 유키코의 혼담이 깨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다에코의 행실을 든다. 아무래도 이 시대는 혼담이 오가는 사람의 가족들 면면을 상세히 알아보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인 다에코를 응원했다. 유키코와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줄 알고 양재 기술과 인형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되길 바랐던 거 같다.


 



 

 

통속소설은 그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전쟁 중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임에도 다양한 문화를 즐길 줄 알았던 것들에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려함을 엿보았다. 자매들과 함께 벚꽃놀이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에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 행복을 이루는 요소 중에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기도 하다.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 달쯤 뒷면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매화가 필 무렵이나 벚꽃 필 무렵에 자매들과 다시 꽃놀이를 가야겠다. 거창한 게 필요하겠나. 그저 마키오카 가 자매들처럼 다음 해에는 함께 여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떠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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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2-21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자매여행 부럽습니다. 형제보다 자매의 연이 더 끈끈한가 싶기도 하고 같이 나이 들어가며 비슷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여동생과의 여행이 편하더군요.
앞으론 좀 자주 하면 좋겠다 싶어요.
세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Breeze 2022-03-10 16:31   좋아요 1 | URL
여동생과는 더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
 
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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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소설처럼 우리 삶의 모든 것과 관통하는 것은 없다. 사실적이며 풍자적이다. 소설 속 인물 묘사에 감탄하며 우리 삶과 비교해보게 된다. 주인공이 가리키는 삶의 한 형태에서 서머싯 몸이 가진 삶의 통찰을 엿본다.

 


이전에 읽었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읽은 책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나타낸 글이다. 소설 속 인물로 회자된 토마스 하디나 작가의 친구인 휴 월폴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아마 사실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작가 어셴든은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게 되었다며 소년 시절 알고 지냈던 어셴든으로부터 과거의 드리필드의 이야기를 적어 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어셴든은 과거 에드워드 드리필드와 그의 첫 번째 부인 로지를 떠올린다. 술집 여급 출신이었지만 천진한 매력을 가졌던 로지, 드리필드와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케이크와 맥주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로지를 쾌락과 유희에 빠진 인물로, 드리필드를 성공에 눈이 먼 작가로 그린다.


 

어떤 사람의 전기를 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이룬 업적 위주로 쓴 글로 포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리필드의 전기를 쓸 때 앨로이와 드리필드 부인은 드리필드의 첫 번째 부인 로지의 이야기를 깎아내리고 축약하여 나타내고 싶다. 드리필드의 유명한 작품은 모두 로지와 함께 살 때 썼던 글이다. 로지가 나이든 남자 조지 경과 달아났을 때 그 원인 한가지로 트래퍼드 부인을 꼽을 수 있다.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트래퍼드 부인이 소개한 사람만 만날 수 있게 했으며, 모든 역할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으나 잃었던 것이 더 많음을 나타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흔히 위대한 작가라고 말할 때,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가를 가리키는 말과 같다. 현시대에는 위대한 작가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지칭할 수 있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서머싯 몸이 주장하는 위대한 작가란 누군가에 의해 추켜세워지는 작가가 아니다. 화자 어셴든이 드리필드의 작품을 재미있는 작품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을 보면 된다.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작품 속 인물을 창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동일시되는 작중 인물이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형태의 인물로 묘사되고, 신적인 존재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인물일 것이며 여러 사람에게서 따와 하나의 인물을 창조했음을 밝히기도 한다.


 

작가의 삶이란 가시밭길이다. 우선 가난과 세상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대중에 휘둘린다.

작가를 흔드는 인간들은 수두룩하다. 인터뷰를 하려는 신문 기자들,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원고를 달라는 편집자들, 소득세를 긁어가는 세금 징수원들, 오찬을 같이 하자는 귀한 몸들, 강연을 부탁하는 협회 국장들,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들, (중략) 어떤 감정이든, 어떤 번뇌든 그저 글로 풀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걸 소설의 주제로, 수필의 소재로 활용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작가는 유일한 자유인이다. (294~295페이지)

 


서머싯 몸의 명쾌한 논리가 파악되지 않는가. 작가의 역할, 작가를 이루는 요소들, 그 모든 것들에서도 무엇이든 글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작가의 냉소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인간의 굴레에서의 못다 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이런 까닭에 전작이라도 해도 좋을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서머싯 몸의 책은 인간의 굴레에서. 인간사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데, 아이가 죽은 날에도 천진난만하게 다른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고 온 로지와 비슷한 삶을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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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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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유리의 입장에 서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유리가 가진 가족이, 그것을 이루는 관계가 너무 아팠다. 가족이라는 것은 꼭 피와 연결되지 않아도 끈끈해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다.

 


입양하는 부모의 역할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어느 한순간에 의지해 입양하는 건 옳지 않다.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게 입양이 아닐까 한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 유리. 2년을 어서 채워 대학 합격을 빌미로 훌훌 집을 떠날 계획만 세우고 있다. 자신을 입양한 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으로 서정희 씨의 아들 연우가 왔다. 함께 살고 있던 할아버지는 일말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다. 유리에게 연우를 맡겨두고 할아버지가 여행 비슷한 것을 떠난다. 엄마의 친아들인 연우조차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은 듯하다. 유리는 연우를 돌보며 연우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기를 입양했다가 할아버지 집에 버려두고 떠난 서정희 씨의 삶에 대하여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연우를 왜 학대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로써 암이 아닐까 싶은 할아버지와의 관계의 변화도 생긴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했다. 어떤 상처도, 어떤 부대낌도, 어떤 위태로운 기대나 상처가 되고 말 애정도 할아버지와 내게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 (172페이지)


 

유리가 비로소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우도 자기처럼 생각하고 살아갈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병원 치료인 듯했던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에게도 캐물어 그가 복막암인 것도 알게 된다.


 

무덤덤하고 무감각하게 사는 유리에게는 친구 미희와 주봉이가 있었다. 자기가 입양된 아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편한 관계였다. 동아리 때문에 함께 어울리게 된 세윤이 입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유리는 자기의 입양을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자기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엄마는 왜 자기를 입양했다가 버렸는지, 친부모를 만나면 자기를 왜 버렸는지 당당하게 이유를 듣고 싶었던 유리였다. 인정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유리에게 다정한 다른 한 사람 담임 고향숙 선생님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 유리를 바라봐 줄줄 알고 말없이 위로해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품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던 연우가 유리에게 말을 놓기 시작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207페이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어느 누군가 그랬다. 고통은 자기가 감당할 무게만큼 오는 거라고. 그 고통이 아무리 커도 아이들한테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 눈 앞의 고통을 모른척하고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하게 살아가려는 유리에게 연우의 등장은 파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서 같았다. 이렇듯 사람이 우리의 삶에 등불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마음을 여는 순간 잡게 되는 손. 그것을 알려주는 관계의 힘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피로 이어진 가족도 얇은 유리처럼 쉽게 깨어질 관계인 경우가 많다.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서로 마음을 열고 내민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한 관계. 진짜 가족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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