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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평점 :
예전에 읽었던 소설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으며 감탄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하며 놀라고 소설의 깊이 있는 내용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방황하는 소설』에 수록된 두 작품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작품이란 고로 몇 번을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창비교육에서 테마 소설집이 나오는데 이번에 나온 작품은 방황을 주제로 했다. 우리는 한때 방황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수많은 고민과 방황 끝에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록 작품은 총 일곱 편으로 정지아의 「존재의 증명」을 비롯해 박상영의 「요즘 애들」, 정소현의 「엔터 샌드맨」, 김금희의 「월계동月溪洞 옥주」와 김지연의 「먼바다 쪽으로」, 박민정의 「세실, 주희」 그리고 최은영의 「파종」이다. 단편의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으로 저마다 방황하는 시절이 있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미래에 대하여 생각해볼 때 자기의 존재를 잊는 치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작품에서 차라리 암에 걸리고 말지 치매는 정말 싫다고 했던 말에 남의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지아의 「존재의 증명」은 기억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머무는 장소에서 자기의 취향과는 별개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때의 난감함, 두려움이 남의 몫만은 아니다. 기억나지 않은 집의 소파에서 비로소 편안하게 누워 사람의 품격이 취향을 결정한다고 외치는 그가 못내 안타깝다. 「요즘 애들」은 신입 앵커 남준이 은채를 만나며 과거 자기들을 ‘요즘 애들’이라고 치부하며 깎아내렸던 첫 직장의 인턴 시절을 떠올린다. 남준 또한 과거의 배서정을 지금에야 이해할 수 있었으나 우리는 모두 방황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겠다. 관계에 대하여, 말이 주는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엔터 샌드맨」은 도시 괴담을 작성하고 재창작하여 무서운 이야기를 담당하는 지수의 이야기다. 매일같이 불면에 시달리는 지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나니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재 사고의 생존자였던 지수와 지훈은 사고에서 은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지수였다. 사고의 그늘에서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가까운 사람이 떠나 마음이 아팠던 옥주는 어학연수를 위해 베이징으로 왔다. 새벽녘 기숙사 문이 열릴 때까지 추위를 참으며 웅크리고 있었던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예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월계동月溪洞 옥주」 또한 방황하는 젊음을 엿볼 수 있다. 예후이는 옥주에게 중국어 강습을 시작했고, 중국어 강습을 받았던 친구들과 함께 예후이의 고향마을에 호수를 보러 갔다. 평안하지 않은 나날,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중국에서 예후이와 함께 보았던 호수의 빛깔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먼바다 쪽으로」의 현태는 불안 증세가 있다. 종희와 함께 서울을 떠나 바닷가가 보이는 펜션을 관리하고 머물고 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하며 누군가 자기를 죽이러 왔다고 여긴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거짓말이 불러온 효과일 것이다. 「세실, 주희」의 주희와 세실은 외국인 고객이 더 많은 뷰티 편집샵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인인 세실은 좋아하는 아이돌 때문에 한국에 왔고, 주희는 뉴올리언스에서 있었던 일이 촬영되어 동영상 사이트에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세실이 주희에게 예쁘다고 하는 말이 불편하다. 전범 기업이며 우익단체 지원하는 일본의 회사 이름이나, 할머니를 자랑스러워하는 세실의 할머니에 대한 진실은 문화가 다른 차이일 것이다. 세실이 소녀상의 의미를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 뉴올리언스에서 J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파종」은 고통을 외면하려던 사람이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는 소리와 함께 오빠의 텃밭에 있었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딸 소리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 했으나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법이다.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로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아픔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을 때에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팠던 흉터 또한 기억하고 싶은 매개체가 되어 우리를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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