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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떠올리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에 관한 수많은 명제가 우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때 어울렸던 친구들을 만났을 때, 함께 근무했던 예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울 수 없는 벽이 존재할뿐더러 이제는 도저히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른다. 그 벽의 안과 밖에 있는 듯한 순간들을 마주한 작품이다.
『사라진 것들』은 앤드루 포터가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한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후 15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라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열다섯 편의 짧은 소설에서 우리는 지금은 잊힌 과거의 순간을 마주한다. 한때는 젊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공허한 감각에 사로잡히는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에 이르는 남자들은 아내와 무난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지만 평온하지는 않다. 누군가의 아내는 우울증 때문에 아이와 남편을 떠나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는 이도 있고, 아이가 물에 빠지던 순간 몸이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어 아이를 구하지 못했던 남편도 있다. 죄의식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아이는 아빠와 멀어지고 그걸 견디기 힘들어한다.
아마도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기에 한 남자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과 삶을 이루는 모습 같았다. 뒷마당의 덱에서 맥주나 와인 한잔을 들고 옆집 혹은 울타리를 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한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평온을 가장하고 하루를 살아낸다. 술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잊고 진실을 마주할 힘을 얻는다.
소설의 배경은 텍사스의 소도시이며, 예술가이거나 같은 계통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들이 주로 나온다. 아내나 친구들은 동료 때문에 힘들고 자신의 감정에 휘둘린다. 불안한 시대, 허무와 공허의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소중한 나의 친구, 인생의 다른 수많은 일에서는 그토록 운이 좋았으나 한 번의 지독한 일격을 당한,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친구. 대니얼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의 수영장에 우리는 있는데 그는 없다는 것이 너무도 부당하게 느껴졌다. (325페이지, 「사라진 것들」 중에서)
상실의 고통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친구를 잃고 그의 집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며 과거에 머문 순간, 아릿하고도 슬픈 감정이 떠오른다. 친구를 잃는 일은 세상을 잃는 일과도 같은 법. 그 슬픈 감정을 어찌 가눌 수 있을까. 친구의 집 아름다운 수영장에 매트를 띄워 등을 대고 누워 느끼는 상실감은 아는 자만 알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젊음의 어떤 절정에 도달했다는 감각, 우리가 여전히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 그런 척할 수 있다는, 더 젊은 자아로 슬쩍 되돌아가 다시 대학 시절의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우리는 그 놀이를 자주는 아니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갔다. (111~112페이지, 「라인벡」 중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한다. 어쩌면 젊은 날의 우리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젊을 것처럼 살았던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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