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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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동화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어떻게 변주되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도 하는데, 만약 그게 추리소설 형식이라면 독자들은 또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의 소설가이자 동화작가, 번역가 이기도 한 살라 시무카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추리소설처럼 변주했다.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속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비슷한 성격의 여자아이 루미키를 창조해 낸 것이다. 루미키라는 이름은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백설공주를 좋아하는 엄마가 지어준 백설공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눈처럼 희다』는 화이트 앤솔로지의 트릴로지 중 두번째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그녀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편 『피처럼 붉다』를 읽지 않아도, 책의 첫 부분에 전편에 대한 대강의 이야기가 있어 무리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피묻은 돈을 발견한 앨리사와 학교 친구들 때문에 힘들었던 루미키는 프라하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자기를 따라다니는 한 젊은 여성을 보았다. 그녀가 다가와 힘들게 건넨 말은 '내가 네 언니인 것 같아'라는 말이었다.

 

다정한 가족은 아니지만 여태 한번도 자기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두운 부모 표정에 비춰보자면 자신에게 언니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자기의 언니라고 말하는 젤렌카의 말을 들어보니 아빠가 프라하 여행중에 만난 여자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은 자기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가끔씩 꾸는 꿈 속에서도 언니가 있었던 듯하다. 피에 물든 자신의 손,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여자아이가 언니인 것만 같다. 부모님은 왜 자기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여태 숨겼을까. 자신에게 혹은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십대 소녀답지 않게 루미키는 강단이 있었다.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블레이즈가 자신을 떠나 사라졌을 때도 마음이 아팠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루미키는 젤렌카가 하는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언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젤렌카가 가족이라고 말한 곳에 함께 가기까지 했다. 물론 문밖에서 거절당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과 다른 이들에게 배타적인 그들의 삶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리고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고, 젤렌카가 머물고 있는 곳이 홀리 화이트 패밀리라고 부르는 공동체 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루미키는 방송국 기자인 이르지 하셰크와 함께 젤렌카를 구하려 하고, 루미키는 곧 그들에게 잡히고 만다.

 

작가는 소설에서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첫편인 『피처럼 붉다』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이번 편인 『눈처럼 희다』에서도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그녀를 떠난 블레이즈의 정체성도 아주 조금의 사실만 드러내었다. 또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가족들의 상황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이 일게 했다. 동화 작가답게 동화같은 내용으로 독자들을 압도했다. 물론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조금 싱겁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동화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이 소설이 잔혹 동화일 것이며,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얇지만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라 여겨질 것이다.

 

루미키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지, 한번 본 사람을 기억해내는 그녀의 눈썰미와 아이답지 않은 루미키만의 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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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
박태식 지음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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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운 일이다. 영화를 이야기하고 영화속에서 인권을 말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우리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속에서 혹은 소설속에서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난듯 느껴지는 건 그동안 우리가 폭력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었던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톰 행크스가 주연을 한 영화였다. 실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화가 아닌것만 같았다. 비행기가 강에 빠졌는데 탑승했던 155명 전원이 살아남았다는게 과연 실화일까. 혹시 우리가 꿈꾸었던 상상의 결과물 아닌가 했다. 이륙한 비행기가 새에 부딪혀 양쪽 엔진을 잃고 회항해야 하는데 건물과 인명 피해가 예상되어 허드슨강으로 비상착륙했던 이야기였다. 탑승했던 전원이 구출되는 장면을 보고는 나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맨 나중에 나오는 기장의 모습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캡틴이라면 무릇 탑승한 사람의 안전을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을.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한국영화  「한공주」에서부터  「이다」라는 영화까지 우리의 인권을 말하는 에세이였다.  「한공주」와  「도희야」를 묶어 말하는 글에서 작가는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말했다.

 

우리에게는 이 영화들을 볼 책임이 있다. 그래야 약자들이 내쉬는 조그만 숨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폭력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23페이지 중에서)

 

과거  「도가니」라는 영화가 개봉된 뒤 장애자에 대한 폭력과 인권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었던 것처럼 폭력 피해자가 아프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폭력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폭력 피해자가 학교를 옮기는 등 도망다녀야 하는지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던 영화였다.

 

 

국가는 통치술만 잘 구비한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완비된 통치술로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힘으로 국민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비쳐진 프랑스 한국 영사 및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위선적인 미소는 결코 국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30페이지)

 

세월호 사건시 국가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인지. 지금도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차오르는데, 저자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국가의 역할 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가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오래전에 보았던 <가족의 탄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더 가족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최근에 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에서 키운 정과 낳은 정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뒤바뀌어져 다른 아이를 키웠던 부모. 자식에게 상당히 차가운 부모였지만 그 아이가 타인의 아이라는 것과 이제는 함께 살수 없는 시점에서야 자신이 아들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아버지가 되어가는 감정들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부모라는 것도 배워가는 과정인 것을 알수 있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지는 걸까? 머릿속에서 과거가 모두 사라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때조차도 그 사람을 엄마나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껍데기뿐인 사람도 사람일까? (217페이지)

 

영화 <스틸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자신을 잊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변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누구보다도 이 말이 와닿았다. 만일 나에게 병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암일지라도 치매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같은게 생겼다.

 

보지 않았던 영화들을 몇 편 찾아보았다. 시간을 정해놓고 볼 생각이다. 아무리 평이 좋지 않아도 취향에 따라,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면 그 영화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 영화일수도 있는 것임을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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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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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특유한 감정을 만나는 때가 있다.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에서 느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희망없이 살고 있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은 그런 주인공의 삶에서 나는 허무함을 보았다. 내일이 없는데 희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를 꿈꾸지 않을 것이므로. 전작인 『호텔 로열』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의 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 호텔 로열을 경영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한 젊은 여자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엄마의 애인과 결혼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또한 결혼하기 전 다녔던 직장 상사와도 잠을 자는 사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세쓰코. 그녀 엄마의 애인이며 세쓰코의 남편의 이름은 기이치로. 일본의 명절인 오봉에 한 여자가 분신 자살을 했다. 이야기는 과거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많은 남자들이 드나들었던 집에서의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당했을 때도 지켜보았던 엄마, 또는 돈을 세었던 엄마의 모습이 진짜였을까. 세쓰코가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때 흔쾌히 허락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엄마가 맞나 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 만의 삶을 살라는 남편의 청혼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단가 모임을 다녔다. 그녀 이름으로 된 단가집을 내는게 꿈이었다. 그녀가 쓴 단가집의 제목은 '유리 갈대'였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라는 한 수가 그것이었다. 이 글은 세쓰코 자신의 삶을 나타냈다. 바슬바슬 모래가 되어 유리 갈대속에 흐르는 모래알 같은 자신의 삶을. 단가 모임에서는 성애를 주제로 했다고 평했다. 단가 모임에서 만난 사노 미치코와 미치코의 딸 마유미가 소설에서 세쓰코에게 큰 역할을 하게 한다. 

 

어느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세쓰코는 우연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와 이야길 나누게 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마유미의 손목에서 멍을 발견했다. 자신의 엄마처럼 미치코도 마유미에게 학대를 가하는가. 그렇지만 그건 마유미의 삶일 뿐. 그녀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남편 기이치로가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해 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 와중에 마유미가 온 몸에 멍 투성이로 세쓰코에게로 왔다. 남편 딸의 집에 마유미를 맡기고 보살피게 했다. 마유미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 세쓰코였기에 미치코는 마유미를 그녀에게 맡겼으리라.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 같은 소설은 마유미가 집으로 돌아간 후 미치코의 남편이 유괴 사건으로 신고하면서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허무함 가득한 다소 밋밋해보이는 소설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죽을 경우 그녀가 호텔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호텔 일을 도와주던 도시코가 맡아 하길 바랐다. 이때 도시코가 세쓰코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젊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요, 홀가분해지는 건 무서운 거예요. 속박이 없는 생활의 무서움, 아세요?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221페이지)

 

홀가분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어느 정도 구속은 활력소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아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우리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내일을 계획 했을까? 그녀가 버리고자 하는 것,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것. 진정한 홀가분함을 느꼈을 그녀의 표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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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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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가 마을이 있다. 이곳은 호랑이가 말을 하는 곳이다. 호랑이가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은 판타지 또는 우화가 분명할텐데, 책을 읽다보면 우화 같지 않다. 그저 워터멜론 슈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일컬어 자연주의 작가라고도 하던데, 『미국의 송어낚시』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워터멜론 슈가마을의 '아이디아뜨(iDEATH)' 근처의 한 통나무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나'. 창밖으로 아이디아뜨를 볼 수 있고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오두막은 워터멜론 송어 기름으로 만든 등이 타고 있고, 이곳에서 그는 책을 쓰고 있다. 그에게는 첫사랑 마가렛이 있다. 그의 오두막으로 건너올 때 늘 널빤지를 밟고 건너온다. 오로지 마가렛 만이 소리내는 널빤지를 밟기 때문에 그는 누가 건너오는지 금방 알수 있다. 어느 날에도 널빤지 밟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가렛이 돌아가고 난뒤 친구 프레드가 찾아와 폴린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어떤 곳을 걷던지, 강물을 응시하고 있을 때라던지, 아이였을때 했던 놀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 메아리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호랑이가 오두막으로 들어와 엄마 아빠를 먹었던 때를 기억한다. 부모님을 먹으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때. 그리고 산수 숙제를 도와줬던 호랑이들을 기억한다. '잊혀진 작품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그들이 모아두었던 물건들. 인보일 일당이 있었던 잊혀진 작품들의 세계로 들어갔던 이해할 수 없었던 마가렛. 그리고 송어 부화장에서의 인보일 일당의 죽음들.

 

 

 

삽화와 함께 짧은 시적인 글들로 채워졌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말하고자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그리는 워터멜론 마을은 모호한 안개 풍경이었다. 요일마다 다른 색을 내는 워터멜론과 요일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워터멜론의 의미. 오두막 전체가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폴린의 집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이상향이었던 걸까. 헨젤과 그레텔이 발견한 과자로 만든 집처럼.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폴린과 함께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가 아름답다고 표현했던 아이디아뜨도 결국엔 죽은 호랑이들의 집을 태우고 난 뒤의 장소가 아니던다.

 

아이디아뜨는 죽음과 생성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호랑이들이 죽인 자리에 만들어진 송어 부화장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본다. 이미 죽은 것과 앞으로 살아갈 것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송어 부화장은 피바다가 될지도 모르고 이어 송어들은 집단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뭔가 다른 것이야. 어떻게 될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56페이지)

 

워터멜론 슈가라는 아주 달콤한 제목에서, 잊혀진 것들을 생각하고, 잊혀진 것들의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과 그곳을 멀리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엔 삶과 죽음은 한끝차이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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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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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녀에게 위무의 시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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