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곱 가지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가 마을이 있다. 이곳은 호랑이가 말을 하는 곳이다. 호랑이가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은 판타지 또는 우화가 분명할텐데, 책을 읽다보면 우화 같지 않다. 그저 워터멜론 슈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일컬어 자연주의 작가라고도 하던데, 『미국의 송어낚시』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워터멜론 슈가마을의 '아이디아뜨(iDEATH)' 근처의 한 통나무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나'. 창밖으로 아이디아뜨를 볼 수 있고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오두막은 워터멜론 송어 기름으로 만든 등이 타고 있고, 이곳에서 그는 책을 쓰고 있다. 그에게는 첫사랑 마가렛이 있다. 그의 오두막으로 건너올 때 늘 널빤지를 밟고 건너온다. 오로지 마가렛 만이 소리내는 널빤지를 밟기 때문에 그는 누가 건너오는지 금방 알수 있다. 어느 날에도 널빤지 밟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가렛이 돌아가고 난뒤 친구 프레드가 찾아와 폴린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정해진 이름이 없다고 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어떤 곳을 걷던지, 강물을 응시하고 있을 때라던지, 아이였을때 했던 놀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 메아리에 가까운 목소리가 그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호랑이가 오두막으로 들어와 엄마 아빠를 먹었던 때를 기억한다. 부모님을 먹으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때. 그리고 산수 숙제를 도와줬던 호랑이들을 기억한다. '잊혀진 작품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그들이 모아두었던 물건들. 인보일 일당이 있었던 잊혀진 작품들의 세계로 들어갔던 이해할 수 없었던 마가렛. 그리고 송어 부화장에서의 인보일 일당의 죽음들.

 

 

 

삽화와 함께 짧은 시적인 글들로 채워졌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말하고자하는 궁극적인 의미를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그리는 워터멜론 마을은 모호한 안개 풍경이었다. 요일마다 다른 색을 내는 워터멜론과 요일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워터멜론의 의미. 오두막 전체가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폴린의 집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이상향이었던 걸까. 헨젤과 그레텔이 발견한 과자로 만든 집처럼.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폴린과 함께 워터멜론 슈가로 만들어진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가 아름답다고 표현했던 아이디아뜨도 결국엔 죽은 호랑이들의 집을 태우고 난 뒤의 장소가 아니던다.

 

아이디아뜨는 죽음과 생성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호랑이들이 죽인 자리에 만들어진 송어 부화장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본다. 이미 죽은 것과 앞으로 살아갈 것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송어 부화장은 피바다가 될지도 모르고 이어 송어들은 집단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음이란 뭔가 다른 것이야. 어떻게 될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56페이지)

 

워터멜론 슈가라는 아주 달콤한 제목에서, 잊혀진 것들을 생각하고, 잊혀진 것들의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과 그곳을 멀리하려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엔 삶과 죽음은 한끝차이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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