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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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요양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뵙고 왔다. 지난 번에 뵈었을 때보다 살이 내린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텃밭에서 따 간 빨간 자두를 드렸을때 달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고, 잘게 썰어진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또 안도했다. 엄마에게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심코 보낸 하루가 엄마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울컥해진다. 만일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를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뒤늦은 후회다. 이렇듯 엄마에게 갈 때마다 나는 엄마와의 이별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 아직은 우리를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등을 눈에 담는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이런 마음과 비슷한 책을 만났다.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해지는 글을 주로 쓰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길지 않는 짧은 소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원래 아빠는 바쁜 법이어서 아들이 어렸을 때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는 아들의 아들, 손자에게 애정을 쏟는다.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정성을 쏟는다.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숫자 게임이라든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손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이야기, 할아버지의 뇌가 졸아들어 점점 작아지는 기억의 공간을 따스한 이야기로 헤집는다. 자꾸만 기억의 공간이 작아지지만 기억 속에서 애틋했던 이야기는 살아 남는다. 먼저 간 할머니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 손자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물론 할아버지의 또다른 자아다. 할머니의 기억과 손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저보다 작아졌구나.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들이 재기발랄 했다면, 이번 중편 소설은 우리의 주변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우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몇번이고 거듭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별 생각없이 오늘 하루를 보낸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 뇌가 쪼그라 들면서 머릿 속 기억들은 점점 자취를 감춰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며 말을 하곤 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들과 손자의 대화는 다정하다. 꽤 많은 시간을 작별 연습을 하는데 군더더기가 없다. 담담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손자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을 훌쩍 넘겨 다 자란 청년의 모습으로 할아버지 곁에서 위로의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을 그리워 할지 모른다. 느리게 이별 연습을 했던 시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 아마 작가도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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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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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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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가 현직 판사일때 쓴 책이 간간이 출간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한번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했다는 그의 신간 소식에 이번에는 반갑게 읽게 되었다. 일단 단편으로 된 추리소설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웬걸 나는 밤에 책을 읽다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내용 때문에 갑자기 싸해 지는게 굉장히 이입되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법조인이 쓴 소설이라는 편견을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하는 놀라움이 일었던 것 같다.

 

총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에서부터 도진기 만의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죄를 다시 물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형이 증인으로 나오게 해 사건의 내용을 뒤집는다는 이야기였다. 법학 전공자답게 법을 이용해 무죄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물론 우리가 예상한 식의 결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반전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정도다. 쌍둥이 중 동생이 강도 살인을 하고, CCTV도 증거로 확보된 마당에 당연히 그가 유죄를 받을 줄 알았지만, 그것을 예상한 검사가 있었으니 바로 호연정이라는 검사였다. 이렇게 영특한 검사가 있으면 우발적 범행이든, 계획적 범행이든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제대로 찾아내어 단죄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증명」에서의 호연정은 「선택」이라는 단편에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인물로 나와 또다른 재미를 즐거움을 준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변호사를 그만 둔 호연정은 하나의 사건을 맡았다. 외과의인 딸이 둘째 아이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후 첫째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한 할머니의 사건 의뢰였다. 죽기 전 생명보험에 들었으나 딸의 죽음을 자살로 본 경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딱해 보인 연정은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서를 찾아가게 되고, 다시 사건을 구성해본다. 남편이 죽은후 아이들밖에 없었던 딸이 자살할 리 없다고 한 할머니의 말과 딸이 근무했던 병원 관계자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 직원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선택」의 결말은 감동적이며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결말을 이끌어낸 호연정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왠지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캐릭터라서 일까. 아니면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 호연정 만의 시선이어서 일까. 자살과 타살의 경계에서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정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선택」을 선택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소설 속 딸과 둘째 아이는 죽었지만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외에도 약간은 환상적인 어쩌면 괴기스러운 소설도 들어 있었다. 여자 무당과 한 남자의 시신이 있던 곳에 칼을 들고 있었던 살인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유죄로 인정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판사에게 편지로 보내 온 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며 사건의 전말을 적었던 「죽음이 갈라 놓을때」와 법정안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 때문에 놓친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다는 「구석의 노인」이란 단편도 즐겁게 보았다.

 

판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것 때문에 보게 된 사건과 사람들의 모습을 추리소설의 형태로 나타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직업때문에 소설의 소재는 아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으리라. 좀더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소설과 괴기스러운 판타지를 나타내는 소설 때문에 다양한 즐거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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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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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악인을 만난다.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경험한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한 발자국 건너면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얼마전에는 전봇대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음악을 크게 틀어놨다고 의지하고 있던 줄을 잘라 사망하게 한 사람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어디선가는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존 버든은 『658, 우연히』라는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숫자 게임과 퍼즐 맞추기식의 추리소설로 꽤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신작을 읽으며 다시 한번 존 버든식 퍼즐 맞추기에 대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존 버든의 소설 속 데이브 거니는 마흔아홉 살의 전직 형사다. 어떤 사건으로 세 발의 총격을 받아 경찰을 그만두고 집에서 은둔하고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때 그의 형사적인 감각은 상당히 날카롭고 예리하다. 심지어 사건을 파헤치느라 자기가 점점 자기 안으로 파고들었던 감각을 잊을 정도로 사건에 집중한다.

 

'착한 양치기 사건'에서도 그렇다. 저널리스트인 코니 클라크의 딸, 킴은 저널리즘 박사과정의 일환으로 살인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희생자의 가족, 자녀이야기로, 부모가 살해되었는데 사건이 끝내 해결되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이 가족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피해자의 가족을 인터뷰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코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착한 양치기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 6명을 죽인 사건으로 피해자 차량 근처에서는 플라스틱 장난감 6개가 종류별로 한 개씩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방송에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탐욕을 일삼는 인간은 탐욕의 숙주, 즉 숙주를 제거 한다'라는 착한 양치기 선언문을 보내왔다. 데이브 거니는 킴과 함께 피해자 가족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어딘가 퍼즐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연쇄살인범의 동기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을 위해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킴과 데이브 거니의 집엔 누군가가 그 사건을 막는 듯한 일이 일어난다. 킴의 집에는 칼이 사라지거나, 바닥이 핏방울이 맺힌 것을 보이기도 하고, 데이브 거니의 헛간은 불타버렸다. 누군가 사건을 파헤치는 걸 방해하고 경고를 보내는 것 같은데, 그가 누구인지, 킴의 전 남친인 로버트 미스인지, 착한 양치기 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데이브 거니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다. 10년 전의 사건 파일을 훑고,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건이 발생한 순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든 사건이 동일한 중요성을 지녔는가, 발생한 여섯 차례의 사건 중 나머지 사건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없었는가, 등이다. 범죄심리학자가 쓴 살인범에 대한 프로필 또한 믿을 수 없었고, FBI가 사건을 양치기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데이브 거니는 살인범인 착한 양치기의 신경증적인 살해 동기를 의심했던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착한 양치기는 자신의 동기를 교묘하게 감춰두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바라보기를 바랐고, 10년간을 아주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을 킴과 거니가 깨우고 있었다. 사건을 수면에 드러내자 '악마를 깨우자 마'라는 경고를 나타냈던 것이다.

 

데이브 거니가 가장 의문을 가졌던 점은 실제 표적을 죽이기 위해 특정한 차를 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가 였다. 데이브의 아내 매들린이 말하는 <검은 우산을 쓴 남자>라는 영화의 내용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도움을 준다기 보다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방법을 내보인달까.

 

언젠가 작가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데이브 거니 또한 형사로서의 직감, 일반 경찰들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생각들을 지녔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건은 다른 양상을 띤다. 살인범이 교묘하게 감춰둔 살해 동기를 파악하는 것과 살인범이 원하는 방식의 수사가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지를 말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보는 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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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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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하면 생각나는 건 음악이다. 그의 음악 중 특히 많이 알려진 게 《재즈 모음곡 2번 》의 [왈츠 2번] 곡은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연주곡을 좋아해 휴대폰 벨소리로, 휴대폰 통화연결음으로 한동안 사용했었다. 다른 곡들에 비해 부드럽고 감미로워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사용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사용되어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곡이다. 특히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배우 이병헌과 이은주의 숲속의 왈츠 장면은 아주 유명하다. [왈츠 2번]에 맞춰 춤을 추는데 그 장면은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몇 곡 들었는데, 역시 다시 들어봐도 좋은 곡이었다. 연주곡과 함께 그에 관련된 내용을 읽으며 쇼스타코비치의 삶의 한 부분과 음악에 관한 신념등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을때 어디선가 검색해 본 글에서, 그의 음악은 좋지만 소비에트 공산당에 협조해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전쟁 상황 속에서, 혹은 공산당 정치체제하에서 자신만의 순수한 음악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에 글을 쓰는 작가들이 일제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고 해서 친일이라 몰며 얼마나 비난을 했던가. 아마 쇼스타코비치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음악이 없어서는 안될 것 같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에트 연방의 제재를 받아야 했다. 그의 생각과는 조금 순화된,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줄리언 반스는 어두운 시대, 시대의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음악을 하겠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신념을 소설속에 담았다. 줄리언 반스의 글답게 건조한 문체로 쓰여진 작품인데, 소설 속에서 우리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자유연애자였던 그의 삶에서 사랑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 단어일 뿐이었다. 삶이 당신에게 "그래서"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운명이라 불렀다. 그래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로 불리게 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22페이지)

 

그 말들이 그의 음악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그대로 놔두었다. 권력층이 말을 갖게 하라. 말이 음악을 더럽힐 수는 없으니까. 음악은 말로부터 도망간다. 그것이 음악의 목적이며, 음악의 장엄함이다. (87페이지)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삶에서 12년 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했다. 1936년, 1948년, 1960년, 1972년. 그 해마다 자신에게 액운이 찾아왔다. 1936년의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을 사랑했던 투하쳅스키 대원수와 친구였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가 심문을 받았다. 그와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느냐, 어떤 사람들과 있었느냐, 그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는 식이었다. 그 시기의 쇼스타코치는 작은 가방을 들고 승강기에 기대어 그들의 부름을 기다렸다. 아내 니타와 딸 갈리야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승강기에 기대 밤을 새우며 이웃집 가족이 지나가면 다시 탔다가 내리는 식이었다. 마치 어딘가를 다녀오는 모습으로. 평범하기 보이길 원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소비에트는 자기 마음대로 음악을 만들 수 없었다. 소비에트 관객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고, 그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가는 그에게 러시아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임명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그가 공산당에 가입해야 했다. 오직 음악만을 원했던 쇼스타코비치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시간이 없을 뿐더러 자기는 작곡가이지 의장이 아니라며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겸손함으로 보고 끝내 그를 작곡가 조합 의장으로 앉혔다. 그가 공산당에 가입한건 당연했다. 

 

책 속에서도 나타났지만, 공식 석상에서 공산당을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했고, 글 속의 인물의 이름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인해 넘겼다. 아마 이런 것들 때문에 쇼스타코비치가 소비에트 연방에 동조했다고 그런 것 같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 우리 존재의 음악 -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181페이지)

 

순수하게 음악만을 하고 싶었던 쇼스타코비치였다. '한 달간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10년간 대중을 즐겁게 해줄 아름다운 음악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였는데. 그에게 있어 음악은 혼돈 이었을지 모른다. 음악으로 모든 것을 잊고자 했으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했다.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며, 그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오로지 음악 그 자체로 남기를 바랐던 작곡가로서의 쇼스타코비치의 번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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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하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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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역사 속 인물을 제대로 다루기 보다는 팩션을 가미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 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역사속 인물을 재조명 하기에는 좋지만, 제대로 이해 못하고 팩션 속 인물로 새겨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재조명되는 역사의 인물에게 생명감을 부여하는게 사실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역사서에 나타난 몇가지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건 어쩌면 작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사임당이 살았던 시기가 중종이 재위하던 시기로 나온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에서 중종이 왕이 되기전까지의 팩션으로 된 이야기를 읽으며, 중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산군을 폐위 시키고 신하들에 의해 왕이 되었던 중종이 자신도 그처럼 될까 우려해 우유부단한 정치를 펼쳐왔다는 건 이해할 만도 하다.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치를 펼쳤으나 이러한 사림파의 정치를 반대한 훈구파의 세력을 겁낸게 또한 중종이었다. 이는 임금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또한 대리청정을 한 세자와 함께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이겸을 질투하고 그를 경계했던 것 또한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았다.  

 

 

 

동명의 드라마 원작에서도 나타난 것과 같이 작가는 사임당을 현모양처로만 그리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남편 역할을 했을 뿐더러 다정한 엄마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또한 자신 때문에 유민들이 핍박받았다고 생각해 그들과 함께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고자 했던 것 또한 사임당과 유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함께 종이를 만들고 이윤이 생기면 함께 나눠갖는 것을 강조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 또한 죽지 않아서 자모회에서 곤란에 처한 한 부인의 치마에 포도 그림을 그린 장면은 압권이었다. 화기를 숨기고 살았지만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역할 탓인지 조선시대의 중종과 현대의 민정학 교수 역할을 했던 최종환이 밉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성으로서 사임당, 어머니로서의 사임당, 화가로서의 사임당, 종이를 만드는 장인으로서의 사임당이 현대의 지윤과 겹쳐 보였다. 천재 화가로서 오로지 사임당 만을 향한 마음을 품고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이겸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그가 가진 열정과 재능이 지금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한 열정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에 오죽헌에 다녀왔었는데, 강릉에 가게 되면 오죽헌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진실이든 팩션이 가미되었든 사임당의 불꽃같은 예술혼을 기억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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