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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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대물림되는 것일까.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날 때부터 폭력적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게 없어서. 예를 들면, 남들 다 있는 부모가 없거나, 재산이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사랑받지 못하거나 할 때 드러나는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제 마음을 대변하듯 혹은 그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했던 것 같다. 매 맞는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제 아이를 매로 때리는 부모가 되듯. 어쩌면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자라서 부모가 된후 자식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때리는 사람들.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리는 것 같다.

 

 

여기, 한 사람의 폭력의 역사를 만났다.

그가 경험했을 처음의 폭력은 아마 열일곱 살의 엄마로부터가 아니었을까. 열일곱 살의 나이에 화장실에서 난 아이. 어린 엄마는 미혼모들이 기거하는 센터에 있었을 것이며,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느 누군가에게 입양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시점. 어린 엄마가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겠다며 데려가던 그 시점부터 아이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집도 직장도 없었던 엄마가 곧 자신을 버릴 것은 당연했으므로. 그런 그가 고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반 구성이란. 고아원 아이들이 몇명, 한 부모 아이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로 구성된 반이라니. 처음엔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느껴지는 차별 또한 그들의 피부에 금방 와닿았다.

 

 

수많은 차별 중에서 고아원 아이들만큼 차별받는 아이들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반 아이 중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있었는데, 애들이 고아원에 있는 아이라고 수군수군댔던 것처럼, 주인공 장태주의 반 아이들도 그렇게 수군댔다. 소심한 아이였던 장태주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 책 읽는 아이였다. 그가 어느 순간에 폭력성이 드러났던 건, 자기를 놀리는, 그러니까 태주가 기르는 새에게 해꼬지를 하는 아이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알수 없었던 폭력이 내재되어있었다는 것. 그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어느 순간 폭력의 한가운데, 아니 정점에 있었던 태주에게 중학교 입학은 또다른 폭력의 장에 빠지는 것과도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의 짱이니 하는 것처럼. 그를 자기의 발 아래에 두고 싶었던 아이도 결국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판박이였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 상납받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있다보니 그가 배운 것 또한 그런 것 뿐이었다. 내 발 아래에서 기어라, 뒤를 봐줄테니, 같은.

 

 

고아원과 폭력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에게도 인생의 단 한 사람, 그를 챙겨주는 사람을 만났다. 소년원에서 만난 담임 공민수가 그였다.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겼던 것이다. 그가 담임을 따라나섰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담임은 그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권투를 배우게 했다. 담임의 아내와 할아버지와 담임과 함께 네 사람이 밥상의 네 면에 앉아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의견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와 싸우며 즉 권투를 하며 돈을 버는 것도 가족과 함께 있으니 가능했고,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가족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담임, 누나,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가 승승장구할 때의 불안함이란.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대부분의 사람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힘들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가 꼭대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부터 불안했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소위 막장 같은. 우리가 수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많이 봐온 것 같은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소설이 좋다. 우리의 예상과 너무도 딱 맞아버리면 허무할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너무 신파같잖아. 요즘엔 어디서 봄직한 신파같은 소설 그다지 별로라고 말하지만,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걸, 그곳이 혹은 지옥의 불길이라도,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만 있었다면 그의 생은 달라졌을까. 불구덩이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면서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건 장태주라는 인간의 어떤 모습까지 보게 될까라는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부러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가 폭력을 다시 휘두르기 시작했던 것도 결국엔 가지지 못한 것,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가 빛의 한가운데서도 두리번거리며 찾아 헤맸던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그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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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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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이자 코미디언이라는 유병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텔레비젼에서 본 게 다다. 뭐랄까. 많이 웃기기 보다는 그의 책 제목처럼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달까. 한마디로 웃픈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짙은 쌍커풀, 탈색하듯 염색한 머리칼. 그 외에 그에 대해 아는게 뭐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짧은 책이다. 글도 짧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유병재 만의 날선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으로 정곡을 찌른다. 어수룩한 모습 뒤에 감춰진 명민한 그의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가 느낀 감정 그대로 표현한 글 들에서 어쩐지 통쾌함이 느껴졌다.

 

잘난 사람들 따라 살 필요 없어. 그렇게 못 산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애당초 너나 내가 여태 살아온 가닥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냐? 분수 맞춰 사는 거야. 너무 멋있는 사람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20페이지, 「멘토」중에서)

 

그도 이처럼 술을 마시며 후배에게 일장연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인이 멘토로 삼았던 인물들에게 들었던 말일까.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일까. 자기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속에서 시니컬함을 느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잃으면

대개 명예와 건강도 잃는다.  (32페이지)

 

부정하고 싶지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의 글에 딴지를 걸 수 없다. 예전의 명언은 예전의 명언일 뿐. 현재와는 맞지 않다. 글 속에서 세상 살아가는 어려움이 엿보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 이렇게 생각하는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느끼고 사는 구나, 싶다. 글에는 그 사람이 생각이 드러난다.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바라보는 지, 그 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받게 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101페이지)

 

그의 말 그대로 블랙코미디다. 웃으면서 말하지만 어쩐지 슬퍼 보이는 감정들. 세상을 사라보는 그의 생각들이 담겨 있어서 그럴까. 방송 작가로 일했던 탓인지, 그의 글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까고 있지만 그의 진정성이 엿보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생각들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는 여태 그의 피상적인 것만 바라보았나 보다. 내면의 것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하루하루는 바쁘고, 타인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권에 책에서 다른 사람을 알게 된다. 무관심했던 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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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꼭 묘비처럼 나왔어요 ㅋㅋㅋ 정말 블랙코미디다

Breeze 2017-11-16 17:53   좋아요 0 | URL
ㅠ.ㅠ 묘비처럼 나오게 하려는게 아녔어요.
 
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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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림책을 만났다. 한 편의 시에 그림을 입혔다. 시를 읽기 시작하면 금세 끝나버릴 감정들이 그림으로 인해 오랜 시간을 붙들었다.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이 된 형식이다. 어쩌면 어린아이들이 볼 그림책인것만 같다. 그런데 동시가 아니고 함민복의 시다.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이 누구나 읽어도 무방하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흔들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이 가진 아름다움 중의 하나가 여백이다. 그 전에는 무조건 글자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백의 미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함민복, 한성옥의 시그림책을 읽으며 빈 공간에 들어찬 마음들을 느꼈다. 금세 사라지고 말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한 줄의 시에, 몇 줄의 시에, 그 마음들을 담았다.

 

처음엔 유아들이 보는 그림책처럼 글자가 없는 것에 당황했다. 활자에 너무도 익숙해진 습관이었다. 아이들처럼 그림을 보며 감정들을, 시에서 다 드러내지 못했던 것들을 느껴야 함에도 글자를 찾고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었다.

 

 

 

그림에서 흔들리는 나무에 대해 생각했다. 흔들리는 나무, 흔들리는 감정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의 흔들림이 아주 얇은 시그림책에서 느꼈다. 때로 우리는 이처럼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을. 뭔가로 꼭꼭 채워야 한다고만 생각했으니.

 

삶의 모든 것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아주 짧은 시에서. 얇은 시그림책에서.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튀우는 일이었구나

 

 

 

 

마음을 비우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삶인 것을.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는 흔들린다.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아파하는 수도 있다. 그저 오늘을 끝나기만을 바라는 때도 있다.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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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7-10-30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꼭 사야겠어요 너무 좋네요

Breeze 2017-10-31 17:54   좋아요 0 | URL
한편의 시가 그림책 한권에 오롯이 담겼어요. 어른아이 다 좋아할만한책이죠. ^^
 
나쁜 하나님
주원규 지음 / 새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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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가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직책 하나 뿐이다. 담임 목사로 있던 미국에서 추문을 일으키고 파문을 당한 이력이 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율주 시로 오게 되었다. 율주제일교회의 실세이기도 한 김인철 장로의 부름이 있었다. 국회의원이자 율주시를 개발로 이끈 인물, 율주제일교회 또한 예전과 다르게 화려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초대 목사님이 목회를 할때는 낮은 강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우러러 볼 정도로 높은 강대상과 화려한 목사 집무실로 바뀌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버텨야 했다. 하지만 율주시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곳에서 오래된 역사를 지키고 있는 한 소녀를 만났다. 철거 중인 구역사 건물로 빠져 나오게 된 그. 마치 그의 앞날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오래 전에 청년부로 교회에서 성가대도 했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을 바라보는 이 소설은 불편한 감정이 따랐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겪는 증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소설 속 주인공 정민규 목사를 바라보는 감정 또한 목사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달까. 목사도 인간이기에 종종 추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내가 다녔던 어느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한 전도사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웠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굉장히 존경하는 목사님이었는데 그도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소설 속 정민규 또한 추문을 겪은 후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담임 목사 자리가 마지막 직업일 수도 있겠고,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정민규는 꼭 그런 방법으로 김인철 장로를 폭로해야 했나, 였다. 몇년 전 책으로 나왔다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 가 개봉되었을 당시 커다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였는데, 원작 소설과 함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소설을 읽으며  「도가니」의 내용이 생각났다.

 

교회에서 지체장애인 시설을 지원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라는 생각은 소설  「도가니」 에서처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정신지체 장애인 시설인 신애원을 통하는 구름다리. 그 구름다리가 잠금장치로 막힌 것은 교회가 신애원을 바라보는 마음 장치가 아니었을까.

 

 

 

 

권력과 돈에 눈이 먼 정치인이 장애인 시설 아이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성폭행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입장이라 그를 기소하지도 못하고,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는게 말이나 되느냐 말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자료를 뒤로 하고서 스스로 소돔과 고모라로 향하는 것은 자멸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민규의 믿음, 한영호 장로의 믿음을 말하기 위해 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정민규의 논문 주제로도 쓰였던 아브라함의 믿음, 즉 인신 제사의 개념을 넘어서는 초극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간의 신에 대한 믿음은 어디까지 이며, 신을 믿는 것 또한 하나의 이상(理想)일 수 있는지 비틀린 믿음을 마주 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다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식이었다. 해피엔드식의 결말을 기대했으나 소설이 끝나고서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종교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진정 신은 있는 것인지,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인지. 문득 유발 하라리의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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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7-10-27 17:06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상반된 감정이 생기더군요. 감사합니다. ^^
 
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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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시대의 역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잊고 산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보이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우리는 숨막혀 하며 그 시간들을 떠올리려고 한다. 그 시간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시절에도 희망이 있었을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 때에도 삶이 있었으니 지금처럼 오늘 하루를 위해 살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난다는 건 소설 속 역사를 떠올리는 일이다.  

 

소설 속 배경은 1945년 패망 직전의 만주 땅이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그리고 그 두사람 사이에 조선인 여성 길순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한다. 자경단원인 요리사 첸은 관동군 사령관 모리를 암살하고자 황궁에 숨어든다. 그를 잡아온 헌병대에게서 그가 요리사라는 말을 들은 모리는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불가능한 요리를 주문한다. 기름과 어떠한 양념도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조리도구도 한정되어 있어야 하며 제한된 시간은 단 1분이다. 불가능한 요리를 완료해 사령관 모리의 혀를 만족시킨 첸은 그날 부터 장교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한다.  

 

소설 속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모리)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전쟁을 싫어했다고도 하는데 요리애호가 이자 예술비평가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 시와 문학을 강의했던 인물이다. 그가 바라는 건 고향 구마모토의 풍경과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 잠시나마 전쟁과 직위를 잊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121페이지) 라고 말하는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그가 자주가는 곳은 그들이 용궁이라고도 부르는 극락사다. 그곳의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며 향수를 달랜다. 그에게 있어 요리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구마모토의 천수각,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왕첸. 그는 천재 요리사다. 모리를 죽이겠다고 장교 식당에 들어가서도 그의 혀를 자신의 요리로 길들이게 하는 남자다. 그는 아버지의 요리법을 배웠다. 요리의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 요리에 가장 중요한 칼과 도마를 대하는 자세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그를 아버지가 죽으며 남겨둔 도마가 요리로 이끌었다. 아버지의 도마는 그에게 요리를 하는 매개였다. 모든 요리에 임하며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독을 써 사령관 모리를 죽일 수 있음에도 지금이 아니라고 시간을 늦추는 일이다. 자신의 요리를 그의 혀에 길들이는 일. 그를 죽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칼을 다룰 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재료들은 접시에 오르는 순간까지 말썽을 부리잖아. 칼은 등을 보여서도 안 돼. 칼날로 재료를 지그시 눌러가면서 놈들의 눈을 제압해.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을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98페이지)

 

 

 

나는 인간이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닌 고통의 맛을, 사랑했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따위가 아닌, 혀를 뚫고 혀를 째며 점막에 와닿는 그 찢어지는 아픔을! 그건 혀로 느껴지는 맛이 아니라 온몸으로, 몸으로, 몸, 몸으로 느껴지는 맛이다. (317페이지)

 

이 둘 사이에 조선 여인 길순이 있다. 남방으로 가겠다고 했다가 위안부의 삶을 살았던 여인이다. 길순은 사내들을 믿지 않았다. 자신을 훔쳐본 오빠의 대의(나라를 구하겠다는)도, 첸의 대의도 믿지 않았다. 오빠의 대의를 위해 메모지를 남기지만, 자신이 왜 그 일을 해야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힘든건 사내들이었다. 대의를 위해 어머니 베베와 자신을 두고 갔어도, 모리의 품에서 혀가 잘린 남자의 요리를 맛보면서도 그녀는 끝없이 갈구한다. 삶과 죽음의 눈 앞에서 고향 청진을 떠올린다. 돌아가야 할 그 곳. 돌아가지 못하는 청진의 고향집 부엌을. 

 

모리와 첸, 길순에게 삶과 죽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암살하려던 자도 그를 독살시키겠다는 것보다는 그의 혀를 자신의 요리로 길들이려고 하고, 그를 죽일 수 있음에도 그의 요리를 맛보며, 그의 혀를 잘라서도 혀로 맛보지 못하는 궁극의 요리를 맛보고자 한다. 죽어가는 이에게 극락사의 부엌에서 마치 어머니처럼 안고 있는 여자. 사내들을 미워했지만 결국 사내들을 품어 안았던 것인가. 그들에게 칼은 현재의 상황이고, 혀는 현재의 상황을 잊고자 하는 꿈꾸는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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