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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것은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같은 소설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의 자세한 내용을 알기까지는 조금쯤은 두근거리기도 했다. 소녀들의 첫사랑과는 거리가 먼 서른일곱 살 차이나는 남자에게 유린당한 이야기였다.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학원 강사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답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유린하고 그들의 마음을 훔쳤다. 소설을 읽는내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까, 부모는 뭐하고 있었나, 가장 가까이에서 소녀와 함께 했던 친구는 왜 몰랐을까. 물론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선망했던 선생님과 좋아하는 사이라고 질투했던 친구 이팅, 자신의 아픔이 너무 커 쓰치의 마음을 살필 줄 몰랐던 이원이었. 쓰치의 친구인 이팅과 이원 언니 또한 자신의 감정이 더 컸던 이유다. 세상에 둘도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질투하느라 쓰치가 보내는 사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다. 자신의 마음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열세 살의 한 소녀 팡쓰치, 작문을 가르쳐주겠다는 학원 강사에게 5년간 진행된 강간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수준높은 고전문학을 읽어주던 이웃집의 이원 언니도 몰랐다. 자신에게 호감있는 여학생을 집으로 불러 작문을 봐준다는 핑계로 강간했으며 그 기간이 5 년이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열세 살의 소녀는 그게 사랑의 방식인줄 알았다. 자신과 리궈화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이라 여겼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g/hglim69/temp/20180504091357146014.jpg)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무엇일까? 진실과 거짓은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거짓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녀는 찢겼고 휘저어 뭉개졌으며 찔려 죽었다. (94페이지)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사실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인생은 옷처럼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것이다. (268페이지)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이 쓰여졌다고 했다. 2017년 이 소설이 발표되었고 작가는 소설이 발표된지 2달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가의 부모는 작가가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고, 지목된 학원 강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났다.
소설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쓰치의 부모였다. 쓰치보다 서른일곱 살이 차이난다고 해도 딸아이를 단 둘이서 공부할 수 있게 했다는 거였다. '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 (97페이지) 라고 말했던 엄마였다. 물론 쓰치의 친구 이팅이 있어 가능했다고 보지만 부모가 방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쓰치가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도 창피하다며 다른 데로 이사를 가지 않았나. 아무 일 없는 듯 동네 사람들과 차를 마시는 리궈화와 이웃들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리궈화 가족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인가.
인내는 미덕이 아니야. 인내를 미덕으로 규정하는 건 위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비틀어진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이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미덕이야. (321페이지)
한동안 미투 운동으로 시끄럽더니 지금은 조금 주춤한 상태인 것 같다. 성폭행은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한다. 안다는 이유로,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성폭행 할 권리는 없다. 이제 막 소녀에 접어들기 시작한 아이를 공부를 가르쳐준다며 꾀어 강간을 하고 성폭행 했던 파렴치한 인간들이 지금도 버젓이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수많은 가정(假定)으로 가득찼던 지난 날의 언어들. 자기의 마음을 조금씩 내비쳤지만 알지 못했던, 혹은 모른척했던 우리들의 무관심한 자세를 다시한번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