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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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주 얇은 책이 좋은 경우가 있다.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잠깐의 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같은 경우 두꺼운 책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렇게 얇은 책은 좀 서운한 감이 있지만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다면 이것 또한 굿이다. 그림과 글의 조합이 좋기 때문이다. 글이 없이 그림만 있는 책을 볼 경우가 있다. 글이 더 좋다고 여겼으나 그림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글이 있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우리는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건 어른들 보다는 아이들이 더 잘할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마음껏 상상하는 것. 이게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은 아주 짧은 소설이다. 카트 멘시크의 그림이 수록된 단편으로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더라 열심히 생각한다. 스무 살이었던 시절이 너무 오래되어 한참을 생각해보지만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때라 친구들에게 장미를 받았을테고, 남자 친구가 없었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생일파티를 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밤바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겠지.

 

스무 살 생일이 맞이하는 여성이 있다. 이탈리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생일날 근무를 바꾸지 못했다. 생일 날 근무중 한 번도 아프지 않던 플로어 매니저가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플로어 매니저에게는 고유의 업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식당 사장에게 저녁 식사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 일을 그녀가 하게 되었다. 식당 6층에 있는 사장의 방으로 웨건을 밀고 갔다. 생일이라는 그녀에게 사장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한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 소원은 단 한 가지여야 했다.

 

 

 

아가씨,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거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34페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단지 그것 뿐이야. (57페이지)

 

그 소원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는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스무 살 생일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인공 또한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걸리는 소원을 빌었을 것이라는 것뿐.

 

담백한 문장의 담백한 단편이었다.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어떠한 소원을 빌었든 우리의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다른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의 삶은 나의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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