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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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던 게 타 인터넷 서점 서평단으로 활동했을 때이다. 문학 분야의 서평단에게 주었던 세계문학 엽서가 있었는데, 책갈피로 사용하던 중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책의 표지를 보고 언젠가는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작품이 에밀 졸라의 책이라는 것도 머릿속에 각인시켰고. 그러다 리커버 특별판을 알게 되었고, 이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두 권을 합본해 두께가 상당하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제목이 다른 것도 아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지 않는가.

 

세일 할 때의 백화점을 가본 적이 있는가. 지하의 식당 매장에서부터 1층의 화장품이나 명품 매장 등 아주 넓은 공간인데도 발디딜 틈새가 없다. 모든 사람이 백화점으로 몰려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치이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실라치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향수나 립스틱이라도 고르려면 판매직원이 나에게 오는 시간 또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여자들은 물건에 집착한다. 쇼핑이라는 병에 중독되면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쇼핑은 습관이다. 습관처럼 구매하다보면 그 욕망을 자제할 수가 없다. 백화점을 비롯해 쇼핑몰은 우리의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욕망에 굴복하고 만다. 소설 속 여자들의 소비 행태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100여년 전의 소설임에도 현재와 같다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예쁜 물건을 보고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해 한두 개 사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핸드백에서 조용히 꺼내 들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가 구매한 제품을 자랑하고 싶어 어쩔줄을 모르는 것이다.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마음 먹어도 막상 물건이 있는 장소에 가면 그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특히 마르티 부인의 행동이 안타까우면서도 마치 우리를 보는 듯 했다. 남편의 수입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자꾸만 물건을 사들이는 그녀 때문에 남편은 가욋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다. 실크 스카프를 만지는 그녀의 탄식, 그 물건을 부러움에 쳐다보는 다른 여인들의 탄식어린 눈빛들. 백화점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곳이었다. 여성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화려한 쇼윈도로 여성을 현혹시키고, 바겐세일의 덫으로 유혹했다. 여성들이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욕망을 자꾸 주입시켜 거대한 유혹의 덫을 놓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 있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거대한 백화점의 장소를 이용해 인간들의 소비 행태를 말하는 한편 거대한 자본 속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에밀 졸라는 시골에서 올라온 드니즈라는 인물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니즈가 동생들과 함께 처음 파리에 도착후 큰아버지의 가게를 찾아 가던중 맞닥뜨린 백화점의 위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려한 백화점 건물의 한쪽에 어둡게 자리한 큰아버지의 가게는 사람들의 소비와 욕망이 어디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거대한 자본앞에 소상인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백화점은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을 유혹한 후 더 많은 물건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실크 스카프 하나만 사겠다던 여성들은 모자며 장갑들을 사기를 주저하지 않고 실크며 기성복을 사들인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판매원들이 한 몫을 하게 된다. 기본급 외에 판매 수당을 주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이 팔려고 하기 때문이다. 출근 순서대로 판매 순서가 정해지지만 제대로 지키기가 힘들 정도다.

 

 

 

무레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야심은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이 자신이 이룩한 백화점의 왕국에서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여성을 위한 신전을 지어 바친 다음, 그곳에서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로 여성을 취하게 한 다음, 그녀의 욕구를 부추겨 달아오른 욕망을 충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393페이지)

 

소설이 그렇듯 에밀 졸라의 주인공 드니즈는 이곳,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성장해 나간다. 시골뜨기에서 백화점 사장 무레의 인정을 받고, 판매직원들의 신임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더군다나 무레의 사랑을 받지만 현명한 여인답게 그의 식사 초대를 거절한다. 그를 사랑하되 하룻밤의 연인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소설에서 드니즈와 무레의 사랑의 전개는 아주 미미하다. 여성들이 소비의 욕망에 어떻게 굴복하는지,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주로 보여준다.

 

드니즈는 백화점의 거대한 상권의 변화, 이것들에 관한 새로운 시대를 예감했다. 백화점 주변 소상인들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다는 이야기다. 여성들에게 물건을 파는 행위는 욕망의 본질을 파는 행위와도 같다. 그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 유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거울'로서의 소설이 요구되던 시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소설에 심취했던 에밀 졸라.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다. 놀라운 작품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그 모든 것을 담아 100여 년전의 소설이라 믿지 못할 정도였다. 고전문학이 왜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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