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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집은 마음속 깊은 곳의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장소다. 학교 혹은 직장이 끝난 후 돌아갈 곳이 있는 곳. 그곳은 편안한 곳이어야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면? 집에 들어가도 어느 누구와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면? 혹은 사람이 있어도 나를 안아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가족으로 봐야 할까? 타인으로 봐야 할까?
소설은 아이큐 160이상의 지적 조숙아 루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집밖으로 떠돌 수 밖에 없는 한 소녀는 이제 엄마가 모든 걸 잊고 자신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남동생 죽은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더이상 자신을 안아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는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붙박이 정물화처럼. 루는 집에 들어가는게 즐겁지 않다. 2학년이나 월반을 해서 자신보다 두 살이 많은 아이들 틈에서 루는 그저 수업을 들을 뿐이며 어느 누구와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열일곱 살의 뤼카만이 그녀에게 말을 걸 뿐이다. '꼬맹이'라고 부르는 그의 관심이 싫지 않지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다.
루는 학교가 끝난후 역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한 여자애를 만났다. 그 애의 이름은 노(No). 그애는 거리에서 사는 아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흔히 노숙자라 부른다. 거리에서 사는 아이라.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진 것을 잃은 어른도 아니고 열여덟 살이 가까운 소녀가 어떻게 거리에서 살게 되었을까. 꼭 발표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숙자에 대한 발표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노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진 돈을 털어 카페에서 그녀에게 무언가를 사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발표 핑계를 댔지만, 궁극적인건 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리라.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하며 마음속의 아픔을 누군가와 나눠야만 하므로.
살아오는 내내, 나는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바깥에 있었다. 난 항상 이미지나 대화의 바깥으로 동떨어지고 어긋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말이나 소리를 나 혼자만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잘만 듣는 말을 나만 액자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창 저편에서 못 듣는 것 같았다. (17페이지)
노와 이야기를 할수록 루는 그녀가 안타깝다. 추위를 피해 어딘가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데, 노와 어디에서 밤을 지낼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며칠후 루는 노를 만나러 갔다. 노가 있었던 곳에 그녀가 없자 루는 찾아다닌다. 그녀가 머물만한 곳에. 추위를 피해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찾는다. 쉼터로, 무료급식소로.
난 말이다, 가끔은 그냥 그렇게 있는 게, 내 안에 꽁꽁 갇혀 있는 게 더 낫다는 걸 안다. 단 한번의 눈길로도 흔들릴 수 있고, 누군가가 손만 내밀어도 갑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지 불현듯 깨닫기 때문이다. 성냥개비로 쌓은 피라미드처럼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137페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루가 마음을 열었다.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는 엄마의 온기를 노에게서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이 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노를 자신의 집에 묵게 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집에서 루는 노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러 명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 태어난 아이가 노였다. 노의 엄마는 그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버리고 떠나갔고, 또한번 그녀를 버렸다. 여기에서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노 뿐만이 아니다. 루 또한 루의 동생때문에 엄마에게서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루에게 '꼬맹이'라 부르는 뤼카조차 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가 떠난 후 엄마도 새 남자와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엄마의 부재를 겪고 있는 아이들.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애착이 집착의 상태에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인 거지, 루? 우리는 함께야? (159페이지)
버림을 받아 본 아이들은 늘 자신이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너만은 나를 버리지 않겠지라는 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아무리 루가 노를 함께라고 말해도 노는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노는 일탈을 일삼는다.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엄마의 삶을 알면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노는 엄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현실을 잊고 싶다. 언젠가는 버려지고 말거라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다.
지적 조숙아인 천재 소녀와 노숙자 소녀의 성장 이야기인 한편 유럽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수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을.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럽의 한 도시일지라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사람들, 즉 노숙자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버림을 받거나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 누군가는 집안에서 등 따시게 있는 동안 하룻밤을 지새우기 위해 잠잘 곳을 물색하는 이들의 애타는 심정이 여기에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