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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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경우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많이 건넨다. 출신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나타낸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 음식, 문화에 이르기까지 나와 상대방의 다른 것과 비슷한 것을 비교할 수 있다. 사샤 스타니시치라는 남자가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하여. 자기와 부모님, 조부모님에게로 이어지는 출신을 말하며 우리를 유고슬라비아를 이루었던 보스니아로 향하게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재 내가 태어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존재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9페이지)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뉴스를 들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보스니아에 속해있던 사람들의 기억들 속에서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었다. 보스니아 내전은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갈등의 구도로 볼 수 있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이슬람교도인 어머니와 세르비아계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가했던 인종 차별처럼 이들도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핍박하였다. 그것을 피해 독일로 오게 된 스타니시치의 가족들은 출신지를 그리워하며 적응해나가야 한다.

 

 

 

생각해보라.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 돌아갈 날만을 기대하게 되는데 고국이 없다면 마음이 어떠할까. 자신의 아이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다고 해도 그 그리움은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사샤 스타니시치에게 할머니가 있다. 발코니에 서서 창밖의 한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곧 가겠다며 달려가지만 소녀는 사라지고 없다. 할머니는 여든일곱 살이면서 동시에 열한 살, 그리고 일곱 살이다. 할머니가 말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비셰그라드에서 태어났던 자신의 출신을 찾아간다. 외국인청에 보낼 서류를 작성하고 아버지와 함께 축구 관람을 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전쟁의 기억들과 상흔이 함께 있다.

 

할아버지 페로는 용을 퇴치한 전설 속 용사 서 게오르기우스를 숭배하는 마을 출신이었다. 용을 숭배하는 마을답게 용 모양의 펜던트나 용 모티브 자수, 밀랍으로 만든 작은 용 모양의 양초는 사샤 스타니시치에게 익숙했다. 출신을 말하는 소설에서 왜 용의 그림이 그려진 표지였을까. 용의 머리와 꼬리 부분만 있고 나머지는 점처럼 흩어진 것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이들의 나라를 말하는 듯 했다.

 

물론 과거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났던 1991년과 1992년의 상황과 2018년의 현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죽음을 피해 달아났던 비셰그라드를 방문할 수 있었고, 자신의 출신지의 근원인 할머니는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근원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출신지를 기억하고 출신지의 근원인 할머니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작가의 배경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 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그런 소속감과 함께 우리의 가장 작은 공통분모는 '충분하다'였다. (295페이지)

 

소설 속 스타니시치가 말하길 유고 사람들 대부분 출신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더불어 이 일이 별거 아니라는 사람은 문제가 있으며 차별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표현했다. 독일에서 생활하며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건 그 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되지 않으니 대화할 수 없으며 자식이나 손자를 내세워야 한다. 결국에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갔을 때를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끌어간다. 소설의 시작부터 할머니가 등장해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에 서 있는 스타니시치 가족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다. 할머니를 따라가다보면 이 소설의 주제와 마주할 수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 점차 손자인 사샤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꾸 과거의 사람, 즉 테오 할아버지가 보인다는 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할머니를 보스니아라는 나라에 비교하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가 기억을 잃고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 이제 한 나라도 사라지고 없다. 크리스티나와 세르비아라는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그들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럼에도 출신지를 잊지 않는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산인 것이다. 문득 나라를 빼앗겼을 때의 조선이 떠오른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애썼던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우리 또한 세르비아 출신들처럼 갈 곳 잃은 사람들처럼 정처없이 헤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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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3-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쟁도 끝난 시기에 느닷없이 전해졌던 보스니아 내전과 인종청소의 소식은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느닷없어 보였었죠. 유대인학살을 겪고도 또 그런 일이 생기나 싶었는데 그것에 관한 기록이 있었군요. 그 시대를 조부모세대는 가장 견디기 어려웠겠어요. 치매를 현실로 보는 매일이지 않았을까요?
정말 우리나라 독립투사들께 감사드리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