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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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곧 여행이다. 어떤 삶이 이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행을 떠나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워왔지만 갑자기 생긴 사정에 따라 일정이 달라진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은행나무 숲길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부근의 장소까지 찾아 떠났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있는 경우, 주변의 두번째 장소 또한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향하지만 역시 같은 느낌에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할때처럼. 삶 또한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 투성이다.

 

매일을 여행자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도는 삶.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방랑자라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돌며 살고 있고, 어떤 이들은 그런 삶을 꿈꾼다. 100여 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된 『방랑자』는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로 때로는 타인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점점 달아오르는 군중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정말 놀랍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376페이지)

 

 

 

삶의 어느 경계선. 떠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어떤 여자의 삶처럼. 우리는 일종의 방랑자다. 소설의 아누슈카는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가 찾아와 자유 시간을 주지만, 그녀는 어딘가로 가서 마음껏 소리내어 울고 싶다. 거리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소리내어 말하는 여인을 바라보다 그녀는 탔던 열차를 내리고 다시 타기를 반복한다. 자기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렸다가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가 느꼈을 고통, 아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거리를 떠도는 여자가 되어 있는 그녀. 그 또한 하나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쿠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조그만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애태우는 한 남자의 모습이다. 사라진 순간을 되새기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없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길을 헛갈렸을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지만 쿠니츠키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각자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다음 이야기를 나타낸다. 하나의 장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에게 보내는 어느 딸의 편지는 의미심장하다. 신하가 죽자 황제는 미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영혼이 숨쉬게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달라는 딸의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어도 자신의 신하를 박제해 전시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 있는지, 영혼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몇 번의 간청을 거쳐 이제는 당당히 요구하겠다라고 말하는 딸에게서 삶의 방향을 배우기도 한다. 

 

죽은 아이나,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의 시신을 사려는 샬로타는 해부학자의 딸이다. 알코올 속을 헤엄쳐 다니는 아름답고 창백한 표본들이 그녀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도 항구쪽을 걷다가 남자용 누더기를 걸치고 동인도 회사의 선원이 되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겼음에도 떠나고 싶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 하다. 아마도 여행의 경험과 취향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인간의 표본을 말하는 부분이 많았다. 신체의 한 부분을 표본으로 남기거나 해부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태의 인간을 놓고 설득력이 부족한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관계성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118페이지)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83페이지)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일상의 시간을 잊기 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의 것들을 잊고 낯선 장소에서 미래를 꿈꾼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떠나든, 옷가지와 다른 것들을 가득 담아 떠나든 우리는 언제나 시간을 달린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도 방랑하는 여행자의 한 공간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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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많이 읽으시네요 ㅎ나도 이참에...참으야 ㅎ

Breeze 2019-12-11 16:20   좋아요 1 | URL
에세이처럼 짧으면서도 이어진 내용들이 많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페크(pek0501) 2019-11-2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다른 책 <태고의 시간들>을 사 놓고 못 읽고 있어요.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Breeze 2019-12-11 16:2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이 책으로 저자를 처음 알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