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라수마나라 1
하일권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안나라수마나라 1 』

하일권 글. 그림 / 소담출판사

 

 

 

 

 

"마술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면...? 저주에 걸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언제쯤이었을까요? 우리 아이가 마술을 좋아한지가... 평소에도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이는 성장하면서 마술, 큐브, 요요 등의 장난감을 하루종일 끼고 놀았지요. 질리도록 마술공연을 찾아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제주도 여행 중에 마술사가 엄마의 손을 잡고 무대위에 올라 아주 기다란 검을 쥐어준 뒤로 아이는 마술의 비밀을 찾아내기 시작했답니다. 그 아이가 성장해 가끔 깜짝놀랄만한 마술을 보여준답니다. 동시에 비밀도 가르쳐 준다는 건 안비밀... ^^

 

<안나라수마나라>는 도저히 작은 소망조차 꿈 꿀 수 없는 세상에 보통의 어른으로 성장하고픈 아이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답니다. 빛바랜 세상속에 기댈 곳 없는 친구에게 마법같이 찾아온 미스터리한 남자... 어렸을땐 마치 동화의 나라와도 같았던 유원지였지만 지금은 망해서 어둠만이 자욱한 그곳... 그곳에 살고 있는 마술사는 왠지 조금은 의지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독특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품마다 단행본으로 탄생시키는 하일권 웹툰작가... 특히 '안나라수마나라'는 단단한 흑백의 스토리로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그려낸 세밀한 터치... 그리고 살짜쿵 여자친구의 손글씨가 들어있다는 메세지에 자연스레 미소짓게 만들었던 이야기... 알고 있음에도 더욱 기대되는 이야기였답니다.

 

 

 

너희들...

그 마술사 얘기 들어봤어?

우리 동네 언덕에 작은 유원지 하나 있잖아...

아무튼 그 유원지를 배회하는 마술사가 있대.

그런데 마술을 보여주기 전에

항상 상대방 눈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는 거야.

... 당신 ...

마술을 믿습니까?

 

 

돌아오신다는 아버지는 기약이없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빚쟁이들때문에 매번 불안에 떨고 있어야 하는 윤아이... 아이는 작은 단칸방에서 동생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점심은 물로 떼우고 스타킹 살 돈이 없어 친구들의 차가운 눈초리에도 버텨야 했던 소녀는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늘도 견뎌내고 있지요.

 

또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던 나일등... 부자에다 잘생기기까지한 일등은 쫓기지않기위해 쉼없이 공부와 사투를 벌이는 일등은 무언가 불안하고 속에서 타오르는 화를 어찌할줄 몰라합니다. 구멍난 스타킹을 신고도 수학만큼은 아이에게 이길 수 없는 일등은 돈을 줄테니 시험을 망치라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지금 윤아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공부... 좋은 대학에 가면 무언가라도 될 수 있고 어른이 되면 지긋한 가난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려하는데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예쁘다...

네 물방울무늬 스타킹 말이야!

 

 

 

가까스로 구한 아르바이트... 뱃속에서 요란하게 울린 소리를 듣고 아이의 손에 만원짜리를 들려주신 사장님... 집에 가는 길에 쌀을 먼저 사야하나 스타킹을 먼저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바람에 날려버린 소중한 만원... 바람에 흐르는 돈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오래전 문을 닫은 유원지였고 그곳에서 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과연 어떤 마술같은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나요?

 

유원지에 가면 마치 동화 속 공주님이 된 듯한 마법에 걸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던 윤아이... 작았던 소녀는 그렇게 마술사를 꿈꿨지만 현실은 가난의 저주에 걸리고 말았지요. 자신에게 고백한 일등이와 사귀면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진심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야 할 이야기랍니다.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버거워 내 삶이 잊혔다고 생각될때... 기적과도 같이 그 꿈을 다시 생각나게 했던 스토리... <안나라수마나라>였습니다.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사라진 반쪽 』

브릿 베넷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니그로(Nigro)'... 흑인을 낮춰 부르는 말로 현재 미국에서는 이 호칭을 폐지한 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전히 백인우월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세계에서 만연하게 거행되고 있는 패싱... 하얘지기위한? 아니면 인정받기위한?...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목적은 스스로의 삶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큰 바람이니 그저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인정받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했다.

 

<사라진 반쪽>은 이질적 시선에 대한 처절한 외침과도 같았다. 계급주의, 성소수자, 인종차별 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요소를 모조리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쌍둥이 자매의 이탈을 보여주고 엇갈린 운명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통해 지금을 살고있는 나를 투영해 허투로 살지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 했다.

 

 

 

 

 

가끔 쌍둥이로 사는 일은

또다른 모습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존재는 모두에게 있겠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마음속에서만 살아 있는 또다른 자아일 것이다.

 

 

 

지도상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곳... 맬러드...

그곳은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니그로들의 땅으로 대를 이어가며 하얀 사람들과 결합해 그들만의 작은 타운을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도 빈스네 쌍둥이가 단연 백인이라고 해도 믿어 의심치 않을만큼 완벽 그 자체였고 타운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하지만 건립자의 날 댄스파티 이후...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는거...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쌍둥이 자매... 궁핍한 삶에 찌들었던 언니 데자레 빈스는 매번 타운을 떠나겠다는 다짐을 했고 소심하지만 내면이 단단했던 동생 스텔라 빈스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현실을 바꾸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현실은 대단한 자산가인 백인의 집에서 하루종일 일을 해야했고 주인어른의 나쁜 손길로인해 더이상 견딜수 없었던 그녀들... 쌍둥이 자매는 그렇게 그곳의 흔적을 지운다.

 

데지레 빈스가 맬러드에 다시 나타났을 땐 피부색이 까만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결국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칠 곳은 이곳밖에 없었고 다른 방법을 찾기위한 노력은 쉽지가 않았기에 그곳에 머무르기로 결심한 데지레... 하지만 그녀의 뒤를 쫓는 헌터가 있었으니...

 

한편 그 어디에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스텔라...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편과 부유함... 하지만 철저히 자신을 속여야했던 삶은 행복에 대한 색이 바래지고 마는데...

 

나의 반쪽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서로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른 그녀들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듯 보였다. 쌍둥이 자매가 함께 그곳을 탈출했지만 이기적이지않은 특별한 성향은 데지레는 반항적으로 아주 까만피부를 소유한 샘에게 마음을 주었고 철저히 백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했던 스텔라는 내면의 불안으로 초조한 매일을 살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쌍둥이 자매에게는 각자의 딸이 있었다. 내 반쪽을 닮은... 엇갈린 운명이지만 도무지 끊을 수 없는 내 반쪽... 어쩌면 저자는 <사라진 반쪽>을 통해 수많은 차별을 말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내면의 외침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이 책을 마주하는 당신도 '차별'의 중심에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심리적 통찰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문학전집 209

『 단순한 이야기 』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 문학동네

 

 

 

 

 

억압과 폭력에 짓눌려 살았던 여성... 동네에 텃밭을 가꾸러 오는 어르신들께 가끔 음료를 드리며 인사를 하는데 한번 말을 시작했다하면 자신의 과거사를 읊으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과거 남편 월급날이 되면 추운 날에도 삐걱거리는 마당을 오가며 언제 도착하려나 마음을 졸일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 어느날은 월급 봉투는 텅텅 비어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서자마자 매질을 했다는 남편... 다 늙어 허리가 굽고 힘을 쓰지 못하는 노인네는 이제 본인이 없으면 밥 한톨도 얻어먹지 못한다며 지금 남편들은 마누라한테 너무 잘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신다.

 

<단순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그 할머니가 떠오른 이유는 간혹 누군가는 불행이 대물림된다고 하지만 불행이 일상이었던 누군가에게는 힘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난히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엄마'라고 소개하지만 배움이 부족하여 철들지 못했던 여성으로 정작 자신의 감정은 숨겨야했던 비운의 운명을 가졌던 여성이었고 '가부장제를 인내하는 딸'은 부모의 잘못으로 세상밖에 나오지 못했던 비극적인 삶을 견뎌내야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읽는내내 몸의 온도가 급상승 그리고 급하향하면서 입술을 앙다물어야 했던 그녀들의 삶... 독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이 책을 마주하며 그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고 싶지 않을만큼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보여준 서사였다고 말하고 싶다.

 

 

 

 

자존심 강한 영혼에게

직접적인 비교로 고통받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남성들도 이러한 굴욕을 거의 참지 못하지만

특히 여성에게 이러한 취급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도리포스 신부는 기독교의 모든 덕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가문을 이끌어가기 위한 교황의 특권으로 엘름우드 경의 칭호와 결혼이 가능한 신분이 된다. 총 4부로 구성된 <단순한 이야기>의 1,2부는 주체적 삶을 중시했던 엄마 밀너에 이어 3,4부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딸 머틸다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젊었을 적 신실한 우정을 나눈 밀너씨는 생을 마감하면서 딸의 후견인으로 도리포스 신부를 지명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소문은 흉흉했고 젊은 신부가 십대 여성의 후견인이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도착한 밀너 양... 그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아내며 아버지처럼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왠지 그녀의 반어법 대화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 부족한 것보다 판단력이 부족한 게 낫다"거나 "늙고 못생긴 신부인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라서 놀랐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게다가 어느정도 도시생활에 적응하면서 밤마다 무도회에 나갔다 아침에 들어왔다는거... 도리포스의 온화함이 무너지면서 피후견인이 빠른 시일내에 결혼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문제는 밀너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도리포스 신부였다는 점... 게다가 운이 좋게도 교황의 특권으로 결혼까지 가능하다니 아무런 제약이 없을 듯 싶었는데 과연...

 

하지만 밀너 양에게 천적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엄격한 샌퍼드 신부였다. 이교도란 것도 있었으나 되바라진 행동에 지우개로 지우듯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녀를 못마땅해 했던 그였지만 그들의 모든 삶을 곁에서 보았고 인내했으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17년후... 행복은 잠시뿐 모두가 변했다.

도리포스(=엘름우드 경)은 과거의 온화함을 벗고 무자비한 폭군이 되었고 더이상 사랑받지 못했던 밀너는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사랑의 결실이 있었으니 딸 머틸다였다. 엘름우드는 마지막까지 밀너를 용서하지 못했고 거처가없었던 남겨진 딸에게는 자신의 눈에 띄지말고 조용히 시골집에 머물라고 명한다. 그리고 반항 한번 하지않고 아버지의 명을 따르는 머틸다는 과연...

 

18세기의 영국사회를 보여주는 여성 서사였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겠다. 결국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일테니... 특히 <단순한 이야기>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억에 새겨졌다. 우정을 나눈 친구로서 무한한 믿음을 보여준 우들리 양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던 조카 해리 러시브룩... 그리고 끝까지 한결같았던 샌퍼드 신부... 그들이 아무리 굴곡진 삶을 살았어도 주위의 지인만큼은 마냥 부러웠다는 사실... 엄마와 딸의 삶을 대조한 <단순한 이야기>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고 지금을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과 대면하는 뜻깊은 시간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___ 왕비

팻 바커 지음 /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서 그의 눈에 들어왔던 테티스... 테디스의 아름다움에 현혹된 제우스는 바다의 여신이었던 그녀를 탐하려하였으나 그녀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언에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된다. 바로 그들의 자식이 아킬레우스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찌감치 어머니에게 버려져 켄타우로스 곁에서 성장하게 되었고 이후 트로이 전쟁의 위대한 영웅으로 우뚝 섰던 아킬레우스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굶주렸던 정에 대한 갈망은 그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종식해 왔다. 이후 수많은 전쟁과 생을 마감할때까지 외로움에 몸시려했던 그의 모습을 옅볼수 있었던 소설...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는 유혈이 낭자한 도륙의 현장에서 결국 진정한 승리는 그 누구도 아니였음을 보여주는 추악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닌 피를 부른 도살자 아킬레우스... 승전을 울릴때마다 남자들은 환호성을 울릴테지만 여성들은 피눈물을 흘려야했던 현실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생쥐의 신이시여, 제 말이 들리나이까!

은제 활의 신이시여, 제 말이 들리나이까!

멀리서 화살을 쏴도 명중시키는 신이시여,

제 말이 들리나이까!

역병의 신이시여, 제 말이 들리나이까!

 

 

아킬레우스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위대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우리에게 그는... 그저 '도살자'일 뿐이었다. 이렇게나 강렬한 첫 문장은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전쟁의 참상을 만들어낸 정복자를 향한 외침이었다.

 

 

열아홉의 왕비 브리세이스는 자신의 눈 앞에서 리르네소스의 성벽이 무너지고 그리스의 병사들이 돌진하여 자신의 남편과 형제의 목을 쳐내는 참상을 짙은 눈에 담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 그것이 두려워 이 높은 지붕위에서 뛰어내리는 아리아나를 보았고 자신의 몸 뒤로 어린 소녀를 숨기는 엄마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녀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당신들을 증오할 것이다" 다짐했다.

 

 

배를 타고 떠나오면서 불길에 휩싸인 리르네소스를 보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느낀 브리세이스... 승전의 기쁨으로 자신의 앞에 우뚝선 아킬레우스는 모래가 잔뜩 낀 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선택했고 그렇게 어둠이 휩싸인 곳으로 이끌려갔다. 음식과 포도주를 내어주던 파트로클로스는 내 이름을 알았다는건 자신이 리르네소스의 왕비라는 것도 알았다는 사실... 그렇게 브리세이스는 전쟁의 포로이자 몸을 내주어야 하는 왕비... 아니 노예였다. 저주의 목소리를 내던 그녀는 그렇게 생쥐의 신, 은제 활의 신, 역병의 신을 부르짖으며 저항하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노예로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노라... 앙다문 입은 그저 침묵으로 휩싸여 있었다. 전쟁을 통해 지금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 무섭게 또 어둠에 휩싸이게 된 지금... 무엇을 얻기위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참혹한 현장을 재현하는지 솔직히 무섭고 두렵기만 한 지금이다. 김대식 교수가 평한것처럼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키지만, 절망의 기억은 언제나 여자들의 몫이었다는 메세지에 울컥했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애를 먹었다.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를 읽으면서 더이상의 침묵은 절대 의미없음을 느끼게 했던 이야기...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라는 시각에서 마주한 새로운 해석이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함께 만나보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문학전집 208

 『 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턴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헤어짐도 감당할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티비에서 보는 가슴벅찬 사랑이야기 속에는 이런 결정적 요소들로 시청자의 눈물을 쏙 빼어 놓는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간절한 바람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 놓지만 실제는 그러한 현실이 마땅치 않기에 더 열정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순수의 시대>는 이성과 감성의 혼란으로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억누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랑했지만 마음껏 드러내어 보여줄 수 없었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버릴 용기가 없었으며 차가운 타인의 시선조차 이겨낼 수 없었던 주인공의 순수를 그려냈다.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을 그린 이 소설은 맹목적으로 따라야 했던 그들만의 관습을 통해 변화하고자 했음에도 쉽사리 변화하지 못했던 인습의 대물림을 보여준다. '삼각관계 3부작'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이 작품은 가장 완벽한 불륜드라마라 극찬을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에겐 그저 자신의 위치를 버리지 못한 용기없는 남성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의 급변하는 사회를 보면 애처롭게만 보이는 연민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기 위해 스스로 포기하고 마는 안타까움에 그저 애틋한 로맨스의 흐뭇한 엔딩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다시금

결혼은 지금까지 배워온 대로 안전한 정박지가 아니라

미지의 바다로 떠나는 항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출신의 닐손 부인이 처음으로 음악당에 서는 날... 그곳엔 내로라하는 뉴욕 사교계의 일원들이 모여있었다. 오페라 공연의 휴식시간 즈음, 밍곳 집안의 부수에서 처음보는 인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엘렌 올렌스카 백작부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엄청난 부호를 자랑하는 폴란드의 백작이었지만 짐승같은 행위에 죄수처럼 살아야 했던 그녀를 곁에서 보다못한 비서가 탈출을 시켰고 일년간 동거를 했다는 추문을 안고 돌아왔다는 것... 비밀리에 숨겨놓지는 못할 망정, 오페라 공연장까지 데리고 나왔으니 밍곳집안이 이렇게 나올지 몰랐다는 이들의 원성을 듣게 된다.

 

한편, 잠시 불장난 뒤로 메이 웰런드와 약혼을 하게 된 뉴런드 아처 또한 엘런을 곱상하게 보지 않았지만 뭔지모를 이끌림에 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또한 인습에 따른 결혼은 또다른 권태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대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결혼 또한 부인의 무지와 남편의 위선으로 유지되는 무의미한 결합일 것이라 판단했다는거... 약혼녀의 친절은 학습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상류사회의 관습에 따라 일정기간동안 관계를 유지시켜 결혼에 이르러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터였다.

 

 

이혼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쁜 것인지 깨닫게 하고,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나 때문에 집안이 도마 위에 오르거나

추문에 휩싸이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해서,

내가 이혼을 포기하게 만든 게 당신 아닌가요?

 

 

서로에게 이끌리는 감정은 어찌하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되찾기위해 이혼을 결심하게 된 엘렌... 그들 사회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가 이혼을 한다는 것은 안되는 이유였기에 겉으로 드러내지않은 시선을 보냈고 사촌동생 메이와 그곳의 사교계 사람들은 반성하고 있는 유럽의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권유하는데... 그녀 또한 아처에게 향하는 사랑의 감정과 집안의 우려때문에 자신의 거처를 옮겨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게 된다.

 

<순수의 시대>에서 깊이 새겨봐야 할 인물들이 있다. 인습에 따라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에 충실할 메이 웰런드, 짐승같은 남편을 피해 자신의 삶을 찾으려했던 진취적인 여인 엘렌 올렌스카 백작부인, 그리고 이성과 이상에서 쉼없이 망설였던 뉴런드 아처... '순수의 시대'에선 이 관계를 삼각관계라고 표현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의 욕심을 챙겼던 사람이 없었기에 제목 그대로 순수한 이야기였다. 흔들리는 감정을 이성으로 짓누르고 이상을 위해 사랑과 이별한 그런 <순수의 시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