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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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209

『 단순한 이야기 』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 문학동네

 

 

 

 

 

억압과 폭력에 짓눌려 살았던 여성... 동네에 텃밭을 가꾸러 오는 어르신들께 가끔 음료를 드리며 인사를 하는데 한번 말을 시작했다하면 자신의 과거사를 읊으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과거 남편 월급날이 되면 추운 날에도 삐걱거리는 마당을 오가며 언제 도착하려나 마음을 졸일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 어느날은 월급 봉투는 텅텅 비어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서자마자 매질을 했다는 남편... 다 늙어 허리가 굽고 힘을 쓰지 못하는 노인네는 이제 본인이 없으면 밥 한톨도 얻어먹지 못한다며 지금 남편들은 마누라한테 너무 잘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신다.

 

<단순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그 할머니가 떠오른 이유는 간혹 누군가는 불행이 대물림된다고 하지만 불행이 일상이었던 누군가에게는 힘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난히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엄마'라고 소개하지만 배움이 부족하여 철들지 못했던 여성으로 정작 자신의 감정은 숨겨야했던 비운의 운명을 가졌던 여성이었고 '가부장제를 인내하는 딸'은 부모의 잘못으로 세상밖에 나오지 못했던 비극적인 삶을 견뎌내야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읽는내내 몸의 온도가 급상승 그리고 급하향하면서 입술을 앙다물어야 했던 그녀들의 삶... 독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이 책을 마주하며 그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고 싶지 않을만큼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보여준 서사였다고 말하고 싶다.

 

 

 

 

자존심 강한 영혼에게

직접적인 비교로 고통받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남성들도 이러한 굴욕을 거의 참지 못하지만

특히 여성에게 이러한 취급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도리포스 신부는 기독교의 모든 덕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가문을 이끌어가기 위한 교황의 특권으로 엘름우드 경의 칭호와 결혼이 가능한 신분이 된다. 총 4부로 구성된 <단순한 이야기>의 1,2부는 주체적 삶을 중시했던 엄마 밀너에 이어 3,4부에서는 엄격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딸 머틸다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젊었을 적 신실한 우정을 나눈 밀너씨는 생을 마감하면서 딸의 후견인으로 도리포스 신부를 지명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소문은 흉흉했고 젊은 신부가 십대 여성의 후견인이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던 탓이다. 그렇게 도착한 밀너 양... 그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아내며 아버지처럼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왠지 그녀의 반어법 대화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 부족한 것보다 판단력이 부족한 게 낫다"거나 "늙고 못생긴 신부인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라서 놀랐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게다가 어느정도 도시생활에 적응하면서 밤마다 무도회에 나갔다 아침에 들어왔다는거... 도리포스의 온화함이 무너지면서 피후견인이 빠른 시일내에 결혼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문제는 밀너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도리포스 신부였다는 점... 게다가 운이 좋게도 교황의 특권으로 결혼까지 가능하다니 아무런 제약이 없을 듯 싶었는데 과연...

 

하지만 밀너 양에게 천적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엄격한 샌퍼드 신부였다. 이교도란 것도 있었으나 되바라진 행동에 지우개로 지우듯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녀를 못마땅해 했던 그였지만 그들의 모든 삶을 곁에서 보았고 인내했으며 그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17년후... 행복은 잠시뿐 모두가 변했다.

도리포스(=엘름우드 경)은 과거의 온화함을 벗고 무자비한 폭군이 되었고 더이상 사랑받지 못했던 밀너는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사랑의 결실이 있었으니 딸 머틸다였다. 엘름우드는 마지막까지 밀너를 용서하지 못했고 거처가없었던 남겨진 딸에게는 자신의 눈에 띄지말고 조용히 시골집에 머물라고 명한다. 그리고 반항 한번 하지않고 아버지의 명을 따르는 머틸다는 과연...

 

18세기의 영국사회를 보여주는 여성 서사였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겠다. 결국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일테니... 특히 <단순한 이야기>에 나오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억에 새겨졌다. 우정을 나눈 친구로서 무한한 믿음을 보여준 우들리 양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던 조카 해리 러시브룩... 그리고 끝까지 한결같았던 샌퍼드 신부... 그들이 아무리 굴곡진 삶을 살았어도 주위의 지인만큼은 마냥 부러웠다는 사실... 엄마와 딸의 삶을 대조한 <단순한 이야기>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고 지금을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과 대면하는 뜻깊은 시간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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