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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국 책의 언어 - 조우석의 색깔있는 책읽기
조우석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12월
평점 :
‘이 사람, 글로 노는구나. 샘날만큼 신명나게.’
<책의 제국, 책의 언어>(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를 읽는 내내 맴돌았던 생각이다. 제목? 딱딱하다. ‘책의 제국’이라는 표현은 거부감마저 든다. 대학 교재 식의 지루한 글이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일단 선택. 책이 좋으니 ‘책 이야기 하는 책’을 지나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것도 병이다.
학술 서적처럼 느껴지는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서평집이다. “최근 몇 년 새 나온 국내외 주요 저술 60여 종”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조우석이 “찬찬히 읽고 그 생각의 가능성을 요모조모 따져본” 서평집.
저자 조우석의 이름에는 문화부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그런데 이 사람 출판 기자만큼책과 많이 놀았다. 지금은 당연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문의 북섹션, 그 틀을 처음 만든 ‘사고’의 현장에 조우석이 있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이 책, 재미있다. 30쪽 정도 읽으며 문체에 익숙해지고 나면 술술 읽힌다. 방송에서는 '삐-' 소리로 처리했을 말들도 종종 등장하고, 한 책을 마구 칭찬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변화무쌍하고 유쾌, 상쾌, 통쾌하다.
몇 해 전 이권우의 서평집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해토. 2005)를 읽으며 남이 쓴 서평을 읽는 재미를 알았다면, 이 책은 재미에 자극이란 양념을 얹어준다. 그것도 새빨갛고 속이 얼얼하게 매콤한 양념을. 이렇게 써보고 싶단 말이다. 서평을 읽으면서 ‘그래, 이 책 괜찮네. 한 번 읽어봐?’ 식의 머리만 울리는 반응이 아니라, 낄낄대고 웃다가, 움찔했다가, 화도 냈다가, 변화무쌍하게 몸을 움직이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면!
너무 극찬인가? 솔직히 머리말, 안 읽힌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재탄생을 위한 전주곡”이라는 부제? 부담스럽다. 1부 83쪽을 넘기데 시간 꽤나 걸렸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저자랑 같이 놀게 된다. 조우석 자신도 인정한 “종횡무진 서평”. 하지만 원래의 의도대로 책의 내용을 드러내는 일에 소홀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도 들어갈 만큼 들어갔다. 그가 아는 서평의 문법이 그러하니까.
1부 ‘우주·역사·그리고 신화 삶아먹기’가 어렵다면 4부 ‘말·언어·문학에 관한 엉뚱한 성찰’부터 읽어도 좋다. 읽고 싶은 글 먼저 골라 읽는 것도 재미. 개인적으로는 4부에 실린 서평들에 가장 깊이 공감했고, 읽는 내내 신이 났었다. 일단 새롭고 싱싱한 글을 써내는 패션지 에디터 김경의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화가로 알려졌지만 글이 더 기가 막힌 김점선의 <10cm 예술>이 포문을 연다. 다음 타자는 진옥섭. 전통 공연 연출가인 그는 <노름마치 1, 2>에서 이 시대 마지막 예인들의 삶과 예술을 담는다. 우리 것에 대한 애정도 놀라웠지만 입에 짝짝 달라붙는 그의 글솜씨에 더 감탄했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두 책 <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의 몽타주>에 대한 서평까지. 저자 조우석은 여기서 박찬욱의 글을 “우리말 최상의 산문”이라 평했다.
위에 언급한 책들을 읽지 않고도 대강의 맛은 느낄 수 있었겠지만, 역시 내가 읽고 그도 읽은 책일 때 우리의 책 수다는 더 맛깔 나고 입에 붙는다. <책의 언어, 책의 제국>에서 독자가 얻는 수확은 이런 서평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 당장 읽고 싶은 책들을 발견하는 뿌듯함이다.
2008년 읽을 책의 목록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하지만, 부담은커녕 어깨가 들썩인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은 리뷰어를 만났을 때의 기쁨, 나 혼자만 느낀 게 아니었다는 묘한 안도감, 이후에도 그 리뷰어의 글을 챙겨보게 되는 신뢰감. 온라인에서 서평 활동을 하며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오늘 오프라인에서 제대로 만났다. 일단 목록에 추가한 책들 좀 읽고 다시 만납시다 조우석씨!
+ 더하기, 표지 디자인! 이건 정말 아니지요.
심플? 그래요 심플 좋지만, 이건 심플이 아니라 '썰렁', '어색' 이지요.
출판마케팅연구소 책 참 좋은데, 디자인에도 좀 더 신경 써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