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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휘릭 휘릭 어휴… 휘릭 휘리릭 후유…
이야기 하나가 마무리 될 때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지막 마침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책장을 붙들고서 바보처럼 엉엉 울며 어깨를 들썩였다. ‘착한 인생’을 앞에 두고 그저 이런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착한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착한 사람을 답답해하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이용해먹는 세상. 때로는 생존을 위해 악한 인생을 선택하는 세상.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나는 오늘도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생각의 틈을 막아 버린다. ‘착한 인생’을 힘겹게 사는 이웃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착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착하게 살아 봐야 남들한테 이용만 당하지’하는 악에 받친 확신을 되뇌며.
경북 안동의 ‘신세계 병원’에는 매일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손님으로 북적대는 사랑방에는 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의사가 한 명 있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리더스북. 2008)는 그 의사가 몇 년간 써내려 간 낡은 일기장이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경철 의사는 그저 담담하고 세밀하게 그들의 삶을 묘사할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늘어놓지도, 독자들의 반응을 이끄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오늘은 누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가만가만 이야기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의 마음 앞에 나는 시종일관 울컥거리고 말았다.
신장암 진단을 받고 “선생님, 죽으려고 왔어요.”하며 찾아온 남자,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담담히 앉아있던 아내. 얼마 후 의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내는 인근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인근 빌딩에 있는 식당에 점심 먹으러 들렀던 어느 날, 의사는 우연히 비상계단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는다. 빚 독촉에 시달리며 제발 몇 달만 봐주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던 그녀는 바로 그 남자의 아내였다.
“왼손에는 한 입 베어문 열무김치 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색바랜 양은도시락에 담긴 차가운 밥과 검정 비닐에 싼 열무김치, 그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서러운 식사를 하는 중에 빚 독촉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도시락 위로 떨어지는 눈물과 콧물, 왼손에서부터 팔뚝으로 타고 흐른 벌건 김치 국물 자국, 그리고 도시락에 담긴 찬밥 한 덩어리가 그의 고단하고 처절한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착하고 맘 좋던 사람들, 희망을 앉고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제 열정에 녹아 병이 들고 만다. 병든 몸을 짊어지고도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오로지 ‘가난’, 악성 종양보다도 뿌리깊은 가난 때문에.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골의사’는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한다는,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말도 한없이 조심스럽고 죄스럽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갚을 길이 없어 글로나마 기억하려는 그의 마음이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여백까지 빽빽한 247쪽의 책은 247명의 고된 인생이 되어 내 마음을 짓누르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
착한 마음이 미덕이 아닌 시대라지만 적어도 바보 취급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는데.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