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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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기까지

우선 내 이력을 털어놔야 할 것 같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삼순이 식' 남자 꼬시기에 열광했고, <연애시대>를 보면서 오히려 가슴이 애려왔다. 감우성과 문정희의 '노력하지만 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 절절히 공감했었다. 하지만, <연애시대>는 나에게 '연애'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남자와 여자의 권력관계, 그리고 한국사회에서의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뭐, 나 역시 어쩌면 대한민국의 90%에 속하는 남자일 지 모른다고 요즘 생각하는 바인데, 겉으로는 '여성주의' 운운하지만, 실제로 내 안에 간직되어있는 마초 기질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발견하게 되고 그 때 그 때 놀라긴 하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바꾸어 가면서 사는 지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한다. 나 역시 20대 중후반의 대다수 남자들이 그렇듯, 연애가 주는 환상과 상관없이 '작업의 순서'에 대해서 이따금씩 떠올리고 그 교과서에 맞추며, '진도'라는 것에 종종 강박감을 느끼곤 한다.

세상엔 참 많은 연애소설이 있고, 숱한 사람들이 연애소설을 읽는데, 난 사실 연애소설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특정한 국면이 왔을 때에 몰아서 보는 편인데, 예를 들면 연애가 잘 안풀린다거나,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이럴 때에 연애소설을 본다. 전자의 경우 솔루션을 찾고 싶을 때이고(솔루션의 측면에서 연애소설이 수백권의 연애공식에 대한 책들보다 낫다.), 후자의 경우 나와 주인공을 동화시킴으로서 빨리 그런 쓸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이다. 지금이 그 중 어떤 시점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요즘이 그런 때이다.

한겨레에 쓰는 정이현의 칼럼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냥 요즘 잘 나가는 소설가이겠거니 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봤던 정이현 책들의 커버 '띠지'의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좀 있었을 따름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그냥 눈에 익고, "남들 다 보니까" 하는 마음에서 샀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연애소설'이 아니다. 어떤 솔루션은 커녕, 한국사회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관념들에 대해서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여자들이 말하는 남자의 '기만적 행태'에 대한 기술은 많이 읽었지만, 여자가 말하는 '여성의 환상'에 대한 소설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사실, 뭐 내 경험의 일천함일 수도 있다.

여자가 쓰는 '사랑'의 진실

이건 뭐 완전 '난도질'의 연속이다. '연애소설'이 아닌, 여성사회학이라고 해야하나? 근데 여성학이라는 것이 '남성과의 불균등한 권력관계'에 촛점을 둔다면, 작가는 여자에게 촛점을 둔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자들끼리 술자리에서 할 법한 '언니들의 연애 테크닉 강좌'를 풀어놨다고 할까?

   
 

키스할 때 눈을 뜨는 건, 나 바람둥이야, 라고 광고하는 일이다. 그러나 첫 키스에서 여자가 너무 적극적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새침한 척, 입술을 아주 약간만 벌려주었다(p.10).

대개의 남자들은 입맞춤 후에는 바로 가슴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애피타이저 다음에 메인 요리를 먹는 것처럼 당연한 순서로 생각하는 것이다. "너 그 여자애랑 진도 어디까지 나갔니?"라고 서로 비교하는 남자애들에게 연애는 포트리스 게임과 다르지 않다.

아직 확실한 관계가 아닌 남자가 가슴을 더듬기 시작하면 일단 매몰차게 몸을 빼는 편이 좋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남자에게 가슴을 허용하는 것은 보통 이상의 지속적인 친밀감을 허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가슴을 허락한다는 것은 또한 그 아랫부분에 대한 접근을 적정선까지 묵인하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이므로, 일단 가슴을 정복한 남자는 머지않아 더 노골적인 요구를 해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한다, 는 속담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p.11).

 
   

그러면서 여자들의 '속물성'이라는 것도 드러내는 데, 차 없는 남자의 피곤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나(p.12), HYATT를 통해 표현되는(p.14) '물신성'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첫번째 단편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결론부에 차를 가지고 있으며, Law School 학생인 어떤이게 꽂혀 자신이 '3년동안 묵은 팬티'를 입으면서 버텼던 '순결'을 쉽게 소멸시켜버리는, 동시에 그 '순결'이라는 것이 어떤 산화의 숭고한 과정(선혈)도 남기지 않는 '허무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남자의 '전형적 태도'와의 맞물림은 다시금 '연애'라는 것 자체의 계급성,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달콤하면서도 끝맛은 언제나 쓴 초콜렛이라고 해야하나??

'몸'을 통한 거래를 통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작성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인 <트렁크>, 아빠의 '번개팅녀'를 산부인과에 보내줄 돈을 만들려고 '로리타 사이트'의 사진을 촬영하는 이야기인 <소녀시대> 등등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뒷맛은 쓰다.

이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아는 여자애집에서 놀다가 몰래 그녀의 일기장을 보면서 키득키득 대다가 돌아보니 그 일기장에 '바보 같은 년'으로 표기 되어있는 되있던 그 멍청한 여자가 '내 전 여자친구'였다는 그런 느낌?

여자들이 읽는 다면, 아마 꿈 말고, 자기 친구에게 자기가 해주던 그런 이야기처럼 느껴질 테지만, 난 뒤집힌 '신데렐라 스토리'를 읽은 기분이다. 다이어트하기위해서 안먹다가 거식증에 걸린 나머지 간만에 '사과한쪽' 냉큼 집어들었다가 잠들어버린, 백설공주의 느낌?? 백마탄 왕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하는가?? 그런 상상들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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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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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결혼을 택했을까?

사실 굉장히 궁금하다. 결혼에 대한 생각자체를 뒤집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은 사회적 약속이다. '정 때문에 산다' 이런 말을 우리 부모와 그 이상의 세대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랑'이라는 전제를 주례사부터 시작하여, 대개의 일상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한다.

난 플라토닉 러브를 믿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 이면에 얼마나 복잡한 권력관계가 깔려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깔려있는 육체성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여튼 <반짝반짝 빛나는>의 이 두명은 결혼을 감행한다. 주인공 쇼코는 무츠키가 좋았기에 결혼해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좋은 감정'이 진실이라면, 쇼코는 플라토닉 러브를 믿는 다는 것이 된다. 왜냐면, 무츠키는 게이니까.

   
 

 엄마의 전화는 이래서 싫다. 우울한 일만 생각하게 된다. 무츠키는 여자를 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키스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내와 호모 남편, 참 내, 그야말로 끼리끼리다(p.16).

 
   


물론 실마리를 찾아볼 수는 있다. 무츠키가 자신의 히스테릭한 조울증을 '치유'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쇼코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랑'과 '좋아함'에 대한 전제를 '환상적인 감정' 그 자체로 환원해 버려서 시작되는 그들의 결혼은 당연히 순탄할 수가 없다. 감정과 일상이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사회적 약속'이니까. 결혼은 둘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둘과 그 주위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충돌하는 것이니까. 만약 둘의 감정이라는 것이 일치되게 '정신적 사랑' 그 자체에, 어쩌면 '우정'에 충실하다 하더라도 이건 쉬운 상황이 아니다. 쉽지 않다.

   
 

 "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느냐?"(p.19)

"그러나 물을 안는다는 말 만은, 내 안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말았다. 소꿉장난처럼 재밌고, 자유롭고 편한 결혼의 대다라고 생각하였다"(p.20).

 
   


소꿉장난도 아니고,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소박하게 생각하다니. -_-; 이제 난점들이 솟구쳐 올라간다. 쉽게만 생각해 봐도, 양가 가족들의 문제에 봉착할 테고, 게이 남편의 '남자친구'에 대한 문제가 올라올 것이다. 더 문제는 아내 쇼코가 게이 남편에게 '게이 남편' 이상을 기대한다는 거다.

   
 

 나는, 당장 무츠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하네기의 꿈을 꾸다니, 무츠키 탓이다. 무츠키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불안이 점점 목구멍으로 치밀고 올라와,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p.44).

 나는, 세상이란 참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하늘에야말로 별이 필요하고, 무츠키 같은 사람한테야말로 여자가 필요한데. 나 같은 여자가 아니라, 좀 더 상냥하고 제대로 된 여자가(p.55).

 
   


자신의 '이성애자'였던 남자친구의 꿈을 꾸면서 남편을 찾는 아내. 갈등은 이미 시작부터 내재해 있었다. 남편 무츠키 역시 편할 수 없다.

   
 

 요늘 쇼코는 굉장히 말이 많다. 나는 곤이 열변으로 꾸며 냈을 이야기를 생각하고, 장인의 인상 좋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딸과, 사위와, 사위의 애인이 내 천자(川)를 그리며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p.73)

 
   


하지만 무츠키의 하해와 같은 도량은, 아내의 '애인'을 소환한다.

   
 

 오늘 아침에 휴대폰이 울린 것도 미리 계획된 일이었던 것이다. 무츠키의 식욕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는데, 환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는데. 나는 옆에 있던 미즈호의 가방을 껴안고, 먼저 노란색 손수건을, 그리고 화장품 지갑과 수첩을, 갈색 선글라스 케이스를, 헤어 브러시와 유타의 비스킷을, 차례차례 땅바닥에 내던졌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하네기도 하네기다. 부탁을 한다고 이렇게 대뜸 나오다니, 멀쩡한 얼간이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왕왕 울었다(pp.116-117).

 
   


갈등은 고조되고, 병원에 실려가는 아내, 아내는. 뭔가 깨닫는다. 결국 남편은 그녀가 기대했던 그런 '평범한 남편'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 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pp.125-126).

 좋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설교할 수 있겠어? 미즈호가, 나한테 아내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고 그랬어. 나한테 필요한 것은 상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각이라고(p.129).

 
   


그래 이제 둘은 인정했다 치자. 하지만 또 쉽지 않은 건 위해서 언급했던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결혼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약간의 거짓말(남편이 그 애인과 헤어졌다고, 그리고 아이를 갖겠다고)을 통해서 '쿨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남편에게 자신과 맞선 1주년 기념으로 남편의 '남자친구'를 선물하다니....

   
 

 어둠에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림, 이란 말이지. 무츠키의 인생에서,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무츠키는 왜 느닷없이 그런 얘기를 한 걸까(p.186).

 
   


화해 후에도 이런 아쉬움은 계속 따라다닌다. 여튼 그들은 '우정'을 통해서 '육체적 이성애'를 포기함으로써 그들의 결혼을 유지하고 '플라토닉 러브'에 도달한다.

그들의 우정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서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그게 궁금했다. 난 여전히 침대에서 부대끼면서 싸우면서 그렇게 지내는 부부를 상상하기 때문이겠지?

에쿠니 가오리의 표현은 현란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눈에 그림으로 꽂힌다. 하지만, 불편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왠지 모르게 '판타지' 그 자체라고만 생각되어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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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 - 시대의 과제에 맞섰는가 한국의 저널리스트 시리즈
김지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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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런 인식이라면, 난 앞으로도 한겨레를 최고의 신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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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 분노 없는 시대, 기자의 실존 한국의 저널리스트 시리즈
박래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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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왜 샀는 지 모르겠다. 내가 음미하면서 그의 삶을 쳐다보지 않아서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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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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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중간점검

우석훈이 썼던 모든 글들을 읽어왔다. 그가 쓴 순서대로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사유의 연속선상들을 파악하는 데 신경쓰게 된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와 <음식 국부론>(도마 위에 오른 밥상)으로 시작된 그의 논의가 '농업'이라는 것의 가치와 그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그 근저에 깔려있는 착상들을 캐 보는 논의였다면, 그가 대중적인 글쓴이로 알려지게 된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는 협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미FTA의 맹점에 대한 논의였다. '순환 보직제'에 따른 협상판에서의 '날티'가 미국 협상단과의 만남에서 어떤 파괴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지에 대한 논증, 그리고 FTA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대답들을 우석훈은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 한국 사회에서 한동안 화두가 되어버린 <88만원 세대>(박권일 공저)와 한국 기업조직의 '생존'에 대한 논의를 담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박권일 공저)을 한번에 펴냈다. <88만원 세대>는 현재의 경제담론과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들에 대한 잔혹한 결과에 대한 보고이며, 그것들의 정치적 함의까지 추적하는 논의가 될 것이고,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지금까지 경제에 대해서 기업들이 진단해 왔던 논리인 '샌드위치 위기론'에 대한 조직론적인 분석이다.

그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기본적인 착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의들을 우석훈은 각각의 책들에서 맞물리게끔 '퍼즐형식'으로 쓰고 있다고 본인도 말하고 있고, 실제로 읽다보면 그것들이 느껴진다. 다행인 것은 그의 저작 하나하나가 쉽게 쓰여있고, 또한 나름의 의미 전달이 명확하게 되어있는 편이기에 단권으로 그를 접했다하여 그의 생각들의 편린을 읽어내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승호가 우석훈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냈다. 내가 우석훈을 처음 접한 건 TV 토론회(한미 FTA 체결 선언을 하던 날)였지만, 실제로 그가 블로그의 글들이나 이번 인터뷰집의 말미에 이야기하듯이 그는 인터뷰나 TV 출연을 굉장히 싫어한단다.

   
 

 인터뷰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터뷰에 대한 나의 평소 생각은 단순 무식하다. "안 한다." 난 누가 내 얼굴을 아는 것도, 이름을 아는 것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다 싫다. 원래도 대인기피증이 좀 있는데, 노무현 시절에 정부 정책 비판을 좀 강하게 했더니,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가?"라고 내 주위에서 좀 심하게 패악을 부렷다. 그래서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졌다(p.303).

 
   

하지만 그런 그가 지승호에게 잡혔다. 왜냐고?

   
 

 그런 내가 인터뷰집이라는, 익숙지 않을 뿐더러 "안 한다"는 평소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그가 지승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인터뷰를 했던 그 매체가 <<인물과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지승호라는 이름, 그리고 강준만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당위'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pp. 305~307)

 내가 이해하는 한, 지금 지승호가 그의 인터뷰를 통한 이 뜨개질이,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의 유일한 깃발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래봐야, 그가 만들 인터뷰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거대한 깃발이 되고, 진영이 되고, 그래서 파도가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혹은 한 권 한 권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지승호의 뜨개질로 엮인 이 깃발은, 추위에 잠깐 몸을 녹일 군불은 된다. 그게 다냐고? 그거라도 지금 이 상황에 어디인가, 감지덕지지. 매달 책을 내겠다는 이 사나이를 도대체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그가 그의 뜨개질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한, 우리는 이길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좋은 흐름이 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p.311).

 
   

이런 우석훈과 지승호의 만남에 대해서 난 '중간점검'을 떠올렸다. 물론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 논의의 3권과 4권이 아직 남아있고, 이론적인 논의가 더 진행되어야겠지만(사실 3권이 완결되면, 그 때가 정확한 중간지점이 될 듯하다. 4권은 대안 경제학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우석훈의 '사회적 활동'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동안 우석훈이 길에 나가는 일들이 생길 듯하다(블로그의 글들이 이를 알려준다 fryingpan.tistory.com).

이 책은 지난 우석훈의 저작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펼쳐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의 지적배경들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우석훈의 '급진적'이되 '대안제시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생협에 대한 이야기, 한국사회가 가져야 할 모델들, 또 경부운하에 대한 생각들 등등.. 그의 생각들의 저변에는 '386'에 대한 회의가 깊게 깔려있다. 그건 <88만원 세대>에서도 충분히 보여졌던 측면인데, '세대 착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며, 현재의 망국적인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한다.

그의 대안들이라는 것의 출발점에 '10대'가 있는데, <88만원 세대>의 복판 나이에 걸쳐있는 27세의 나에게 주어진 세상이 암울하다는 것을 인지할 때마다 더 속이 상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해야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최소한 TOEIC/TOEFL/TEPS 기계가 아닌 '한달에 책 10권은 읽는' 그런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 물론 외국어 공부를 한동안은 할 것이지만, 그것의 '도구적 속성'이 나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석훈을 보면서 '프랑스'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하게 되는데, 프랑스의 박사과정이라는 것이 '저작'을 내는 학자를 길러내는 학풍이라는 것이 굉장히 크게 유혹했고, '기술자'를 만들어 내는 미국 교육에 대해서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또한 결심을 해본다. 20대 저자가 되겠다는. 한윤형과 김현진이라는 동갑내기들이 활발한 저술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배아파하는 중인데, 우석훈은 김현진을 또한 예찬하기도 한다. 제대만 하면 한 권의 책을 꼭 20대를 마치기 전에 쓰고, 가능하다면 1년에 한 권정도의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끝없이 쓰고, 또 계속 읽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우석훈과 일치를 보게 된다.

   
 

 사람들이 최근에는 경제나 사회라는 게 굉장히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 같아요. 단순논리로 잘 환원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세상 복잡해졌다고 다 말하잖아요. 그런데 21세기는 복잡하다고 말하면서 사회나 경제에 대해서 사유하는 것은 굉장히 단선적인 것 같습니다. 삼단논법을 못 넘어가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좀 사려 깊어지고 지혜로워지는 게 해법인 것 같은데요. 지금처럼 잘 속아서는 민주주의나 경제나 다 힘들죠. 우리나라 국민들 다 잘 속잖아요. 황우석한테도 속고, 노무현한테도 속고, 신정하한테도 속고, 하여간 잘 속아요. 속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도 속고나면 단단해져서 속이기 어려운 국민이 되어야 할 텐데요.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상태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 같습니다(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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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승훈 2008-02-27 08:16   좋아요 0 | URL
혹시 저자이신가요?? 와우~ '힘'을 드릴 수 있었다는 데에 오히려 제가 뿌듯한데요?
아,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 엄청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좀 쳤었는데,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에 취한 후~ 음악적 지향도 완전히 바뀌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