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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왜 그들은 결혼을 택했을까?
사실 굉장히 궁금하다. 결혼에 대한 생각자체를 뒤집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은 사회적 약속이다. '정 때문에 산다' 이런 말을 우리 부모와 그 이상의 세대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랑'이라는 전제를 주례사부터 시작하여, 대개의 일상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한다.
난 플라토닉 러브를 믿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 이면에 얼마나 복잡한 권력관계가 깔려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에 깔려있는 육체성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여튼 <반짝반짝 빛나는>의 이 두명은 결혼을 감행한다. 주인공 쇼코는 무츠키가 좋았기에 결혼해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좋은 감정'이 진실이라면, 쇼코는 플라토닉 러브를 믿는 다는 것이 된다. 왜냐면, 무츠키는 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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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전화는 이래서 싫다. 우울한 일만 생각하게 된다. 무츠키는 여자를 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키스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내와 호모 남편, 참 내, 그야말로 끼리끼리다(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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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마리를 찾아볼 수는 있다. 무츠키가 자신의 히스테릭한 조울증을 '치유'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쇼코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랑'과 '좋아함'에 대한 전제를 '환상적인 감정' 그 자체로 환원해 버려서 시작되는 그들의 결혼은 당연히 순탄할 수가 없다. 감정과 일상이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사회적 약속'이니까. 결혼은 둘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둘과 그 주위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충돌하는 것이니까. 만약 둘의 감정이라는 것이 일치되게 '정신적 사랑' 그 자체에, 어쩌면 '우정'에 충실하다 하더라도 이건 쉬운 상황이 아니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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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느냐?"(p.19)
"그러나 물을 안는다는 말 만은, 내 안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말았다. 소꿉장난처럼 재밌고, 자유롭고 편한 결혼의 대다라고 생각하였다"(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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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장난도 아니고,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소박하게 생각하다니. -_-; 이제 난점들이 솟구쳐 올라간다. 쉽게만 생각해 봐도, 양가 가족들의 문제에 봉착할 테고, 게이 남편의 '남자친구'에 대한 문제가 올라올 것이다. 더 문제는 아내 쇼코가 게이 남편에게 '게이 남편' 이상을 기대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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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장 무츠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하네기의 꿈을 꾸다니, 무츠키 탓이다. 무츠키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가슴에 응어리진 불안이 점점 목구멍으로 치밀고 올라와,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p.44).
나는, 세상이란 참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도시의 하늘에야말로 별이 필요하고, 무츠키 같은 사람한테야말로 여자가 필요한데. 나 같은 여자가 아니라, 좀 더 상냥하고 제대로 된 여자가(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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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성애자'였던 남자친구의 꿈을 꾸면서 남편을 찾는 아내. 갈등은 이미 시작부터 내재해 있었다. 남편 무츠키 역시 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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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늘 쇼코는 굉장히 말이 많다. 나는 곤이 열변으로 꾸며 냈을 이야기를 생각하고, 장인의 인상 좋게 웃는 얼굴을 떠올리고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딸과, 사위와, 사위의 애인이 내 천자(川)를 그리며 자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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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츠키의 하해와 같은 도량은, 아내의 '애인'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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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휴대폰이 울린 것도 미리 계획된 일이었던 것이다. 무츠키의 식욕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는데, 환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었는데. 나는 옆에 있던 미즈호의 가방을 껴안고, 먼저 노란색 손수건을, 그리고 화장품 지갑과 수첩을, 갈색 선글라스 케이스를, 헤어 브러시와 유타의 비스킷을, 차례차례 땅바닥에 내던졌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하네기도 하네기다. 부탁을 한다고 이렇게 대뜸 나오다니, 멀쩡한 얼간이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왕왕 울었다(pp.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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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고조되고, 병원에 실려가는 아내, 아내는. 뭔가 깨닫는다. 결국 남편은 그녀가 기대했던 그런 '평범한 남편'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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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 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pp.125-126).
좋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설교할 수 있겠어? 미즈호가, 나한테 아내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고 그랬어. 나한테 필요한 것은 상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각이라고(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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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둘은 인정했다 치자. 하지만 또 쉽지 않은 건 위해서 언급했던 '사회적 약속'으로서의 결혼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약간의 거짓말(남편이 그 애인과 헤어졌다고, 그리고 아이를 갖겠다고)을 통해서 '쿨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남편에게 자신과 맞선 1주년 기념으로 남편의 '남자친구'를 선물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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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림, 이란 말이지. 무츠키의 인생에서,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무츠키는 왜 느닷없이 그런 얘기를 한 걸까(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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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후에도 이런 아쉬움은 계속 따라다닌다. 여튼 그들은 '우정'을 통해서 '육체적 이성애'를 포기함으로써 그들의 결혼을 유지하고 '플라토닉 러브'에 도달한다.
그들의 우정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서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그게 궁금했다. 난 여전히 침대에서 부대끼면서 싸우면서 그렇게 지내는 부부를 상상하기 때문이겠지?
에쿠니 가오리의 표현은 현란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눈에 그림으로 꽂힌다. 하지만, 불편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왠지 모르게 '판타지' 그 자체라고만 생각되어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