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이화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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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학창 시절에 우리 역사에 대해 깊게 배우지 못했다. 정치, 사회, 경제, 윤리를 배우는 시간도 극히 적었지만 어차피 나도 싫어하는 과목이고 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배우는 국사 시간만큼은 달랐다. 적게 편성된 수업 시간도 아쉬웠고, 국사를 가장 싫어한다는 친구도 안타까웠다. 나는 혼자서 역사 책들을 찾아보며 우리 역사를 알고자 노력했다. 내 나름대로 우리 역사에 대해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가끔 우리 역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울분을 토하기도 했었다.

 

역사는 늘 새롭게 씌어져야 하며 따라서 모든 지난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 칼 베커 -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책의 이미지와는 달리 참 예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를 보는 순간 덜컹 겁이 나기도 했다. 한반도의 형성에서부터 6월항쟁까지 나열되어 있는 차례를 보면서 두꺼운 두께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꺼운 두께에 도전하면서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불쑥 불쑥 몰랐던 역사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특히 근대사를 읽으면서는 곳곳이 지레밭 같았다.

오랫동안 대구에서 살아왔으면서도, 1946년 10월 1일 미군정의 폭정에 시달리다 못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던 '대구 10ㆍ1 사건'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3년 동안 벌어진 한국 전쟁에서의 인적 손실이 2차세계대전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집결한 학생들을 공수부대원들이 가혹하게 진압한 1차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였다는 것도 미처 몰랐었다. 

그동안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는 여러 책들을 통해 찾아보았지만, 한번도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1980년대를 경험했었다. 어릴 적 우리집은 시장 근처에 있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는 노점상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고 생계가 곤란해진 노점상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를 했던 것이다. 어린 나는 최루탄의 매운 맛에 눈물 콧물을 다 뺐었다. 1990년대 초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맞은편에는 전문대학이 있었고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그럴 때마다 시위대와 진압대들이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해산 될 때까지 그대로 학교에 발이 묶여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간접적으로나마 나도 8,90년대를 경험했었다. 그렇다면 먼 과거의 일보다는 더 관심을 보여야 했을텐데 그동안 왜 그리도 무관심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나열식의 평범한 개설서보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개성 있는 내용으로 엮은 역사책이 요구되기도 한다. (p. 11)

 

이 책은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국사 교과서를 보다 깊고 넓게 읽는 듯한 느낌이다. 또 교과서처럼 건조한 목소리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작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그에게는 진정한 대통령이 한명도 없었는가보다. 그 어느 대통령에게도 '전(前)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은 국가 간의 전쟁이었으므로 조일전쟁, 조청전쟁으로 불러야 바른 역사 용어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처럼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전체적인 흐름과 개괄적인 사건을 파악하기에 적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7/08/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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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정조대왕 -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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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장 훌륭한 인물인 줄 알았고, 당연히 왕 중의 왕은 세종대왕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발표한 새로운 지폐에 들어갈 10명의 후보들을 보면서, 새 지폐에서 정조대왕과 정약용 선생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역사 속 인물들의 경영론이나 리더십을 다룬 책들을 서점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조선의 이노베이터'라는 부제를 보면서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류의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정조대왕이라는 사실에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한 장 두 장 책을 읽어 나가면서 만약 이 책을 외면했더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조대왕의 경영론이나 개혁론 등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다. 오롯이 한 아버지의 자식이었던 인간 이산, 그리고 한 나라의 아버지였던 정조대왕을 다루고 있다.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이덕일은 정조대왕의 의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선대왕의 비밀이 담긴 금등지사를 둘러싸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으며, 정조대왕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그러나 『이산 정조대왕』에서는 그의 탄생 전부터 죽음 후까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이 책 저 책을 통해 짜집기를 하다시피 알고 있었던 그의 삶이 통째로 담겨져 있다. 역사란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내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제대로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추수밭에서 나온 '엽기 시리즈'의 역사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엽기적이었다기보다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말투가 엽기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용을 보건대 『이산 정조대왕』은 정통 역사서임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적인 말투와 맞닥뜨리는 순간의 놀라움이란. 다행히 '엽기 시리즈'처럼 불편할 정도로 엽기적인 말투는 아니었고, 이 정도면 깜찍하게 봐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역사를 이야기하는 엽기적인 말투는 추수밭의 트레이드 마크인가보다. 

 

지금은 이렇게 위대한 대왕이라고 추앙 받으며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조대왕은 외로운 왕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버지의 신원을 스스로 회복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그,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해서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백성을 위해 살고자 했던 그였지만 신하들은 물론 할아버지(영조), 할머니(정순왕후), 어머니(혜경궁 홍씨)까지 권력이 두려워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그 권력 때문에 그가 평생 염원했던 일까지 죽음으로 사그라지고 말았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없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래도 '만약에' 사도세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수순대로 왕이 되었더라면, 마흔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정조대왕이 행했던 '개혁'은 사도세자의 손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처럼 그가 '개혁 군주'라고 주목받는 일도 없을테지. 정조대왕의 꿈이 실현 직전에 원상 복구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감히 만약이라는 가정법으로 입에 올려본다. 엯

 

 ...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정조 독살설에서 시선을 떼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한 시대의 희망을 온전하게 그려냈던,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허망하게 가버린 개혁군주 정조에 대한 애달픈 송사가 아닐까. (p. 101)

 

2007/08/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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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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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나는 잠을 잘 땐 유난히 예민하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는 벌렁거리는 심장 때문에 다시 잠을 청하기가 힘들어진다. 성격이 예민한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리 예민한 성격도 아니다. 유독 잠을 잘 때만 그런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던가. 엄마가 막 가게를 시작했을 때 가끔씩 가게에서 주무실 때가 있었다. 아빠의 회사도 엄마 가게 근처였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할머니와 지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할머니께서는 토요일이 되면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럴때면 나와 동생은 단둘이서 자야만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에 하루였다. 잠결에 큰소리가 들렸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렸다. 깜짝 놀라서 일어난 나는 그것이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싸우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빨간 벽돌집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회색빛의 촌스러운 시멘트 집이 드문드문 있었고, 대부분은 한옥이었다. 그런 한옥 집에서 방음은 커녕 옆집의 재채기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한참을 옆집의 싸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형광등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직 잠결이라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는 금새 천장으로 번지는 불꽃을 보고서야 동생을 깨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 집은 엄마 가게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엔드게임

 

도코노 일족은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암기하는 힘, 멀리서 생긴 일을 아는 힘,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힘 등 평범한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신비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신비한 능력을 절대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신비한 능력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빛의 제국』과 『민들레 공책』에는 그런 도코노 일족이 등장한다.

 

그러나 『엔드게임』에는 지금까지의 도코노 일족과는 이질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에이코의 눈에는 '그것'이 멋대로 줄기가 뻗친 '상한 딸기'로 보이고, 도리코의 눈에는 '은색의 볼링핀'으로 보인다. 어떤 것으로 보이는가는 그들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도리코는 캔 공장에서 끔찍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 캔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마치 볼링핀이 쓰러지는 소리처럼 도리코에게 들렸다. 그래서 도리코는 하얀색이 아닌 캔처럼 '은색의 볼링핀'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질적인 '그것'이 눈에 보이면 '그것'을 '뒤집어' 버린다. 그러다가 내공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것'에게 오히려 '뒤집힘'을 당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던 도리코의 아버지 하지메가 어느날 사라진다. 도리코와 도리코의 어머니 에이코는 아버지가 '뒤집혔다고' 생각하며, 자신들도 언젠가는 '뒤집힘'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실 '뒤집힘'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서로가 '뒤집고 뒤집히는'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적(흑)과 동지(백)의 개념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더이상 '뒤집힘'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은 도코노 일족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렇게 믿고 살아가려 한다.

 

끝의 시작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p. 324)

 

트라우마, THE END.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듯이, 트라우마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움에 떨었던 그들처럼,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이미 실체가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길.

 

현 시점에서는 더이상의 "도코노 이야기"는 없을거라고 한다. 그동안 신비한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일족을 엿보는 재미가 솔솔 했는데. 상상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온다 리쿠의 머리 속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07/08/0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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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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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코노 이야기_두 번째

 

첫번째 도코노 이야기인 『빛의 제국』에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일족들이 등장한다.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암기하는 힘, 멀리서 생긴 일을 아는 힘,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힘 등 해리포터나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게 쓰이는 그런 힘들이다.

 

두번째 도코노 이야기인 『민들레 공책』에는 '미네코'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미네코는 자신이 소녀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며 우리에게 들려주는데, 그녀의 소녀 시절을 기록한 것이 바로 '민들레 공책'이다.

 

『민들레 공책』은 이런 이야기

 

어린 시절 미네코는 '마키무라'라는 촌락에서 살았으며, 그곳은 대지주 마키무라 가문이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었다. 단순히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마키무라'라는 가문의 이름이 지명이 된 것은 아니다. 마키무라 가문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촌락에 학교나 공회당을 세우고 용수로 건설이나 도로 정비를 진행하는 등 많은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마키무라 가문에는 병약한 막내딸 사토코가 있었다. 아버지가 의사였던 미네코는 집안에만 있어서 친구가 없었던 사토코의 친구로 마키무라 가문을 드나들게 된다. 마키무라 가문에는 미네코 외에도 드나드는 아니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양화를 공부하는 시나씨, 청일 전쟁 때 아들을 잃고 발명에 몰두하는 이케히타 선생님, 마키무라 나리님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신타로씨, 불사였지만 지금은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에이케이씨 등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토코는 점점 건강해져서 미네코와 함께 머리에 리본을 달고 여학교에 다니자는 약속까지 하게 된다. 그 무렵 미네코는 사토코에게서 '다른' 점을 발견한다. 사토코는 어린 소녀의 생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까운 미래의 일을 암시하기도 한다. 사토코가 곧 누군가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 후에 하루타 일가가 마키무라 가문을 찾아온다. 그리고 '마키무라' 촌락, '마키무라' 가문과 도코노 일족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백년 전 마키무라 가에서는 큰며느리를 맞아들였는데, 부지런하고 예쁜 며느리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며느리 몰래 며느리를 조사한 당주는 며느리가 신비한 힘을 가진 도코노 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평화로운 가을날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며느리는 안절부절 못하며 산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며느리의 말을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산이 무너지기 직전 마을에 있던 경종을 울려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정작 며느리 자신은 피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 며느리가 '먼 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로 마키무라 가는 일족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도코노 일족들에게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일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네. 단순히 말이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정신을 자기 안에 통째로 보존하는 것이야. 그것을 우리는 '넣는다'고 하거든." (p. 172)

 

 

'인물' 중심의 이야기

 

『굽이치는 강가에서』, 『여섯번째 사요코』, 『네버랜드』,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라이온하트』 등 그동안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사건'이 중심이었다. 인물과 배경이 설정되면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물론 추리 소설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반면에 『민들레 공책』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중심이다. 이야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사토코가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마을에 헌신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마키무라' 가문에 머물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마키무라' 가문에 머물고 있으며, 독자들은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이게 된다.

 

『민들레 공책』을 읽다보면 사토코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사건이 언제쯤이면 실체를 드러낼 것인가였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런 사건도 없이 '마키무라' 가문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끝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들었던 궁금증이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이 책에는 '리본', '뉴 센츄리', '스케치', '빵', '찬스', '포즈', '모델', '발코니', '홀' 등과 같은 단어들이 굵게 표시되어 있다. 외래어들을 굵게 표시한 것 같은데, 작가의 의도인지 역자의 의도인지 어디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지 않다. 분명이 설명이 있었는데, 내가 놓쳐버린건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자기가 행복했던 시기는 그 당시에는 모르는 법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처음으로 아아, 그때가 그랬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수많은 돌멩이를 주워 짊어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계절이 지나간 뒤에, 지친 손으로 바구니를 내려놓고 지금까지 주운 돌멩이를 살펴보면 그중에서 몇 개인가 작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p. 10)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법이야. 자기가 손에 넣었다가 잃을지도 모르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손에 넣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명확하지 않나. (p. 87)

 

저희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을 보거나 냇가에서 몸이라도 굽히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절대로 볼 수 없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는 타인만을 보고 생활합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타인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감정이나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성장함에 따라 문자 그대로 자기를 발견하는 셈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자기 모습을 찾아내어갑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 181)

 

2007/08/0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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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 풍경 드로잉 -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배운다! 스케치 쉽게 하기 4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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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는 「기초 드로잉」, 「인물 드로잉」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번째이다.

그동안 『스케치 쉽게 하기』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림은 아무나 그리는게 아니라는 내 생각이 나도 연습하면 그릴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거의 10년 만에 스케치북이라는 것을 사서 한장씩 한장씩 그려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 그려야 된다고 생각하니 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이내 자신감을 상실하고 지워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작가 김충원은 그런 것에 개의치 말라고 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말이다. 어차피 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없는데 선이 비뚤비뚤 해지라도,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냥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림은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니까, 남들이 보는 것과 똑같이 표현하려면 그냥 편하게 사진을 찍어버리면 될테니까. 

학창 시절 가장 많이 그렸던 것이 풍경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물 드로잉」보다 더 쉽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정경들은 나만의 언어로 담는 시간

스케치는 세상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표지글)

 

풍경 드로잉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그려 넣을 필요는 없다. 주제를 정해서 주제에 맞는 부분만 트리밍해서 그리면 된다.

80%를 보고 20%를 그린다. 초보자일수록 대상을 관찰하기 보다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드로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인데, 자신의 그림에만 집중하다 보면 사실과 다른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급 화가들도 처음부터 멋진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서 멋진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듯이 사실과 다른 그림을 그렸다고 절대 포기하거나 주저하면 안된다.

 

나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다시 그리도록 시작하게 만들어 준 책. 나에게 하나의 꿈을 심어주고 간다. 언제가는 나도 기억에 담아 두고픈 풍경을 카메라가 아닌 스케치북에 담을 수 있겠지 하는 꿈.

 

2007/07/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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