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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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정치인은 잘나거나 못나거나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딱히 지지하는 정당도 정치인도 없다. 유시민 교수*가 대구에서 출마했을 때 회사가 그곳에 있어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또 대구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생은 아니지만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두 달 전, 맬서스의 『인구론』을 가지고 보수와 진보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었다. 사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지만 누구나 읽을 수 없는 고전이기도 하다. 유시민 교수는 맬서스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수와 진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아주 명쾌한 강의였다.
 (* 당시 강의에서도 유시민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대한 말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한번 관직에 오르면 그렇게 부르는 습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혹은 전 의원이라고 불렀다. 그 중에 유시민씨라고 부르는 학생이 있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재 그의 직업은 경북대학교 시간강사이니, 유시민 교수로 부르겠다.)

   나는 지식소매상이라는 직업에 대해 제법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맛있는 음식으로 많은 고객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맛집 주인처럼, 나도 재미있거나 유용한 지식을 많은 독자들과 나누어 가지는 데서 행복을 얻는다. (p.358)

   유시민 교수는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 부른다. 무언가에 대해 직접 연구하고 이론을 펼치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누군가의 이론을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 사람도 대단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그가 낸 『후불제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에 대한 이야기다. 헌법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워서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헌법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민주공화국이었다. 어떤 나라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고 왕의 목을 잘랐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한적이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는 우연찮게 그것을 얻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반만년 동안 왕이 통치하던 나라였다. 얼떨결에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누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예전처럼 왕이 되려했고, 국민 또한 대통령을 나라의 아버지로 여기며 모든 것을 맡기려 했다. 결국 과거의 왕처럼 군림하려는 자가 나타났고, 그제서야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알게 됐고 다시 찾으려 했다. 그때부터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부 헌법의 당위"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을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국민들의 기본권도 함께 보장하고 있다. 이것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은 '후불제 헌법'이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헌법 전문을 제대로 읽어본 이가 드물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니 해석 또한 잘못할 수 밖에. 그는 1부에서 헌법 조항을 소개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2부 권력의 실재"에서는 몇 년 동안 정치 및 공직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과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10년 전 처음 이 책을 기획했을 때는 헌법 판례를 소개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사이 정치를 하면서 직접 경험한 것도 생기고, 헌법을 적용하는 상황도 많이 바뀌어서 원래의 기획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2부에는 그의 정치적인 견해가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변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애정도 있고, 비판도 함께 있다. 그는 이런 성향 때문에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견해가 담긴 2부보다는 1부가 훨씬 유익했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 나는 침묵했다 /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 나는 방관했다 /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 나와 함께 항의해줄 /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독일 시인 니묄러가 썼다고 알려진 시를 바꾼 것이다. 유시민 교수는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선한 사람도 악한 상황과 악한 시스템을 만나면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저 넋놓고 있다가는 우리가 얻은 선한 시스템인 민주주의를 놓쳐 버리는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얻은 민주주의를 온전히 누리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할까.

09-91. 『후불제 민주주의』 2009/07/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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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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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떤 이에게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한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대형 서점의 직원. 그는 신간 혹은 추천 도서를 골라내 진열하고, 책을 찾는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누군가와의 약속 전에 늘 들리는 대형 서점이 있지만, 언제나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리고 시끄럽다. 책을 찾아주는 직원은 있어도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럴 때마다 작지만 조용한 동네 서점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아도 있을 책은 모두 있었고, 주인 아저씨와 친분까지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서점들을 이젠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있는 동네 서점들도 모두 참고서와 문구를 함께 파는 문구점이 돼버렸다.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책이 좋아서 서점에서 10년 동안 일했으며,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 일했다. 어쩌면 그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의 부모님은 책과 거리가 있는 분들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책과 가까워진 것은 주간지 『위클리 리더』를 구독하면서였다. 그는 닥치는대로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가끔은 책서리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점 직원이 되고 싶었던 그는 어리다는 이유로 늘 거절당하곤 했다. 그리고 2년 후 대학에 입학하면서 취직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서점이라는 공간은 생각처럼 '멋지기만한 곳'이 아니다. 근무 시간은 길고, 근무 환경은 나쁘다. 게다가 월급 또한 적다. 그러나 그는 좋아하는 책과 늘 함께 할 수 있고, 새로 나온 책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책에는 어린 그가 책과 가까워지게 된 이야기에서부터 책과 함께 성장한 과정, 서점 직원과 출판사 외판원으로 일한 17년간의 이야기와 책에 대한 역사가 담겨져 있다.

   _____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나는 _____살이었다. 그러고 나서 6개월 안에 나는 _____라는 작가가 쓴 다른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p.54)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분노의 포도』의 작가인 존 스타인벡이다. 그는 열다섯 살에 『분노의 포도』를 처음 읽고 6개월 동안 스타인벡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는지 묻는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와 같은 작가가 없다. 즐겨 읽는 작가와 장르는 있지만 깊이 파고들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는데, 스타인벡을 좋아한다고 자신의 독서 편력을 밝히는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꼭 새 책을 사려고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만 가면 흥분을 느끼는 까닭은 장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까지고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을 지배하는 무언의 규칙은 여타의 소매업을 지배하는 규칙과는 전혀 다르다. … 우리가 한참 동안이나 매장을 서성거린 후에야 겨우 책 한 권을 산다 해도 서점 직원 중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서점에서는 얼마든지 죽치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몇 시간씩이라도 말이다. (p.10)


   그동안 책 자체 혹은 그것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유통시키는 사람들, 특히 서적판매상에 대한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그는 서적판매상의 역사와 오늘날의 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서적판매상은 사기꾼 혹은 해적처럼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오늘날 서적판매상들은 『율리시스』와 같은 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책과 서적판매상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책을 사랑해서 17년동안 책과 함께했던 한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책을 파는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저 책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 책을 팔고 지금은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소설과 교양의 위기도 없다!
   "책은 죽었다. 소설은 죽었다. 교양은 죽었다. 컴퓨터가 승리를 거두었다"(p.288) 전자책의 개발과 함께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비단 전자책뿐만이 아니었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도 그랬고, TV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전자책 뷰어까지 있는 나름 얼리어댑터인 나조차도 전자책은 한권도 사지 않았다. 책에는 고유의 촉감과 냄새가 있다. 연인과 헤어지면 가장 그리운 것이 그 사람의 향기라고 한다. 아무리 편리함이 강조되는 시대라지만 이미 그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과연 그 촉감과 냄새를 잊을 수가 있을까.

09-92. 『노란 불빛의 서점』 2009/07/1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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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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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의 목적은 사람들을 파괴하는 것이고, 그들은 철저히 파괴됐다!
   쿠바의 관타나모는 과거 미군의 해군기지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미국이 차지한 곳으로, 양항 발달이 유리해 미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돼 왔다. 이후 냉전의 종식으로 관타나모 해군기지도 그 기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9.11테러 이후 이 곳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만들고 테러와 관련된 사람들을 '적 전투원'이라 부르며 가두기 시작했다. 
   관타나모 수용소, 미국은 이곳에서 자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 용의자들을 마구 짓밟는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배후로 지목하며 무차별 폭격을 가했던 것처럼, 약간의 의심이라도 들면 무조건 비행기에 실어 관타나모로 보냈다. 
   그들 가운데는 진짜 테러리스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현상금에 팔려온 사람들이었다. 미군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 그에 비하면 현상금은 로또와 다름 없었다. 가난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돈에 눈이 멀어 제 나라 사람들을 마구 신고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금의 약점을 미국 또한 몰랐을리 없겠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재판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한번 테러 용의자로 잡히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억울하게 잡혀온 대부분의 테러 용의자들은 진짜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고문을 받고 인권을 유린당했다. 폭력은 물론이고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까지 훼손했다. 물론 테러리스트에게도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 그러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과 테러리스트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괴물이나 도깨비처럼 생긴 사람들만 악행을 저지른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관타나모는 악 그 자체입니다. 관타나모는 기소도 하지 않고, 어떤 재판절차도 없이 단지 어렴풋이 혐의만으로 사람을 5년 이상이나 가둬두는 곳입니다." (p.47)


   마비쉬 룩사나 칸은 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로, 마이애미대학 로스쿨에 다니던 중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을 접했다. 그녀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아프가니스탄 수감자들을 위해 통역에 나섰다. 당시 여러 명의 변호사들이 수감자들의 변호를 위해 나섰다. 그녀는 통역뿐만이 아니라 수감자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혹은 사람들은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미군에서 말하는 것처럼 잔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를 건넬 정도로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었고,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인보다 훨씬 관대한 사람이었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많은 중동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증오의 대상이 됐고,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수감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그들에게 고통을 가한 미국 정부는 미워하지만, 미국인 전체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원한 것은 정당한 절차를 걸쳐 재판을 받는 것이었고 그들의 가족이 석방되는 것이었다.

"신께 맹세컨대, 미국 정부와 미국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민은 위대하고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지원해준 변호사들이 그 증거입니다." (p.180)
"우리는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한 짓에 대해 고백하고 인정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p.181)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중성을 지닌 곳이다. 겉으로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면서 오직 자국민의 보호에만 열심이다. 그들이 테러 용의자들의 수용소를 미국이 아닌 쿠바에 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세계 평화 운운하며 잡아들인 용의자들이 갇힌 곳은 미국이 아닌 쿠바 땅이다. 아무리 미군들이 그들의 인권을 유린해도 미국법이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법을 어기는 미군들을 처벌하지도, 인권을 유린당하는 수감자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폐쇄를 앞두고 예산을 운운하며 미국 상하원들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과연 오바마 대통령은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미국이나 미국인을 싫어해 본 적이 없소. 나는 그들을 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들에게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나를 배반한 건 아프가니스탄인이었어요. 바보 같은 미국인들은 거짓말만 믿고 조사를 하지 않았떤 거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인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아프가니스탄에 와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랐던 게지. 내 진짜 적은 나를 미국인들에게 팔아먹은 일부 양심 없는 거짓말쟁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이오." (p.307)


09-87.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2009/07/0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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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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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감춰진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위해!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제목 그대로 먹먹함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책을 읽기 전 결말이 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쓴 연애소설을 읽은 이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불편의 정도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채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어슴푸레한 것들이 전해오기 시작했다.

   『도가니』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시(霧津市)가 배경이다. 사업에 실패한 강인호는 아내의 친구 소개로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는다.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애 학원은 안개로 둘러싸인 무진시에 있다. 게다가 마을에서도 떨어져 있어 자애학원은 마치 고립된 하나의 거대한 성채 같았다.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을 터였다.(p42) 바로 그곳에서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 등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력과 폭행을 일삼았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학교 안에서 무참하게 유린당했지만, 제대로 듣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눈과 귀를 모두 닫아버린다.
   소설에는 두 편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편은 아이들의 편에 써서 진실을 밟히고 아이들을 짓밟았던 사람들을 처벌하려는 사람들이고, 또 한 편은 아이들을 짓밟았던 사람들 편에 서서 진실은 외면한채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법정에서까지 그들의 죄상이 밟혀졌지만, 그들은 죄의 대가를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알았지만,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 오랫동안 자신들이 살아왔던 무진시가 불명예를 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치유를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 아이들이 유린당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먹먹했고, 또 그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결국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에 먹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먹먹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 말이다.

   왜 하필 그녀는 무진시를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첫장만 읽고 책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오래 전에 읽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펼쳐 들었다. 『도가니』를 읽으면서 무진시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뿌옇게 도시를 감싸고 있는 안개 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바로 마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도 쉽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또한 무진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불편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이 안개를 걷어버리고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가슴 속 먹먹함도 가실테지.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09-90. 『도가니』 2009/07/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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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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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불행이 뒤섞인 콩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들녁출판사의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는 21세기 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영어권, 프랑스어권, 독일어권, 스페인어권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의 최신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가운 피부』로 시리즈의 첫번째를 장식했던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 아프리카 콩고를 배경으로 한 『콩고의 판도라』를 내놓았다.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유명한 판도라, 콩고에는 어떤 판도라가 숨어 있을까.

   주인공이자 화자인 토머스 톰슨은 대필 작가다. 그는 프랭크의 대필 작가였지만, 프랭크는 누군가의 대필 작가였으며, 그 누군가는 스펜서의 대필 작가였고, 스펜서는 프랭크 스트럽의 대필 작가였다. 프랭크 스트럽은 위대한 작가 플래그 박사의 대필 작가로, 결국 먹이사슬의 꼭대기에는 플래그 박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대필 작가의 존재는 모른채, 또 대필 작가의 또다른 대필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채 플래그 박사의 소설을 끊임없이 칭찬한다.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토머스 톰슨을 제외한 모든 대필 작가들이 죽게 된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플래그 박사에게 궁극의 대필 작가는 자신이라고 말하려다 오히려 무시만 당한다. 이런 그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야심찬 변호사 노튼은 톰슨에게 자신이 변호를 맡고 있는 살인자 마커스 가비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써달라고 한다.
   모시고 있던 주인 형제를 죽이고 다이아몬드를 훔친 죄로 기소된 마커스 가비, 톰슨은 교도소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써내려 간다. 마커스 가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가 그동안 대필로 써줬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다. 마커스 가비는 자신이 주인 형제를 죽이지 않았으며 주인 형제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그가 어떻게 다이아몬드를 얻게 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겪었던 환상적인 모험을 들려준다. 또, 이야기 속에는 백인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면서 아프리카 흑인 또는 원주민들을 상대로 얼마나 잔인한 행동들을 했는지도 보여준다. 백인들은 그들을 단지 다이아몬드를 채집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다. 그랬다. 미지의 세계 콩고는 희망과 악이 서로 뒤엉킨 '판도라'가 된 것이다.
   톰슨이 써낸 마커스 가비의 이야기는 큰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마커스 가비의 무죄를 소리 높여 외쳤다. 결국 변호사 노튼이 바란대로 가비는 석방됐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다. 변호사인 노튼은 할 수 없었지만, 작가인 톰슨은 가비의 석방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톰슨은 앞서 여러 대필작가에게 속았듯이 노튼에게도 속았다. 마커스 가비가 들려준 이야기는 노튼이 플래그 박사의 소설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했다. 마커스 가비는 톰슨이 그려낸 것처럼 이 세상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모시고 있던 주인 형제를 죽인 살인마에 불과했다.

"톰슨, 문학과 문학산업은 처음엔 활자가 오고가고, 다음에는 숫자가 오가는 거야." (p.500)


   소설은 숨가쁘게 읽혀진다.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다음 장을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책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책 속의 책' 형태의 구성도 흥미롭고, 현실과 이야기 속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구조도 재밌다. 또,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고민과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고찰도 함께 담고 있어 생각할거리도 던져준다.
   영미소설이나 일본소설, 혹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독자라면,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시리즈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콩고에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었다. 그 전투보다 더 큰 대량학살을, 그것도 유럽 한복판에서 자행된 학살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콩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콩고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p.353)


09-81. 『콩고의 판도라』 2009/07/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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