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곳,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
   지인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놀러 오겠다고 하면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돼, 실망만 할거야. 여긴 볼만한게 없어. 그냥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만 기억해줘!"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그저 비하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늘 밖으로만 내돌았던 것이 미안했던지 지난 한달동안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동물원, 수목원, 놀이동산, 야구장, 축구장 등등. 그런데 이 도시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규모만 크고, 무료로 개방했으나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다른 도시의 그것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도심이라도 예쁘게 다듬어져 있으면 좋은데, 스카이라인을 고려하기는 커녕 다 쓰러져가는 가옥 옆에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색적이기는 커녕 한숨만 나온다.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다른 저편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본문 중에서)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닷가에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이었다. 집집마다 붉은 지붕을 살포시 얹고 있는 바닷가 마을 "노브리예나체". 시리도록 파란 바다 위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에 펼쳐져 있어 그 빛깔의 대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는 월드컵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는 정도, 개인적으로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렸던 발칸 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로 그 유명한 아드리아 해변을 끼고 있단다. 한때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중 하나였으나 1991년 6월에 독립한 나라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곳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니,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을 겪은 나라임에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비롯해 많은 곳들이 잘 보존돼 있다. 그 전쟁이 어떤 형태로 치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가능하면 자연과 옛것을 건드리지 않고, 설혹 무언가를 새로 만들더라도 기존의 것들과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옛것을 보존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새것이라고 모두 보기 좋은 것은 아닌데, 크로아티아의 노브리예나체 요새를 보면서 황홀함보다 안타까움 마음이 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너와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 존재하듯이 자그레브에서는 무엇과 무엇, 또 무엇과 무엇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것…." (본문 중에서)


   노브리예나체 요새와 함께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은 호수와 나무의 요정이 산다는 "플리트비체"였다. 이 숲은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가 끊임없이 흘러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단다. 숲 곳곳에는 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다리를 이루는 나무들이 인공적으로 깍아놓은 반듯반듯한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알고 있는가? 넥타이를 처음 매기 시작한 곳은 17세기 크로아티아라는 것을. 전쟁터로 나가는 사랑하는 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넥타이를 매주었단다. 앞으론 넥타이를 볼 때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그 고운 마음을 떠올리게 되리라.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는 사진과 일러스트, 약간의 텍스트가 함께 있는 책이다. 텍스트들로만 가득한 책들보다 페이지가 더 더디게 넘어간다. 멋진 사진과 일러스트에 시선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곳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지 말까를 고민했다던 저자의 마음이 이해된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점점 더 많은 곳들이 내 여행 목록에 추가돼서 고민이다.

09-108.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2009/08/2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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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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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남아프리카를 향해 가볼까요?
   닉네임처럼 자주 뒷북을 치는 나. 보통 때는 뒷북치는 것이 오히려 즐겁기도 한데, 유독 한가지만은 아쉬울 때가 있다. 다른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을 읽지 못했을 때, 게다가 그 책이 이미 절판된 상태라 뒤늦게 사서 읽지도 못할 때 정말 안타깝다. 닉네임을 뒷북소녀라 짓는 바람에 더 뒷북을 치는 것 같아 괜히 닉네임을 원망해 보기도 한다.
   2006년에 출간된 장태호의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1인출판사인 "종이심장"에서 출간된 책이라 입소문을 듣고 읽으려 했을 때는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그래서 혼자 책의 내용을 짐작해 봤다. 추운 남극에서만 사는 펭귄이 어떻게 더운 아프리카에서 살 수 있을까? 게다가 표지에는 펭귄이 버스를 타고 있다. 아마 펭귄은 장태호라는 지은이의 닉네임일거라고 생각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간 그의 블로그를 보니 닉네임이 내가 예상했던 펭귄이 아니라 테오였다. 그렇다면 정말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단 말인가?
   나처럼 읽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8월의 첫날 삼성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절판된 책이 표지만 바꿔 다시 출간된 줄 알았는데, 두 권을 모두 읽은 사람의 서평을 읽어보니 편집과 내용이 모두 바뀐 완전 개정판이란다. 게다가 제목도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로 살짝 바뀌어져 있다. 드디어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볼더스비치에는 실제로 펭귄이 살고 있다. 러시아처럼 추운 나라도 아니고, 냉방시설이 갖춰져 있는 동물원도 아닌 남아프리카 해변에 어떻게 펭귄이 살 수 있을까? 남아프리카는 지중해성 날씨 때문에 겨울이 있고 날씨도 춥다고 한다. 남극에서도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둘리처럼 빙하 타고 떠밀려 왔을테고, 마침 떠밀려 온 곳이 추운 겨울이었다면 충분히 정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하얀 얼음 위가 아닌 모래해변을 걷고 있는 펭귄이 이채로웠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내가 상상했던 남아프리카는 인종차별로 떠들썩한 곳이다. 그런데 내 상상과는 달리 남아프리카는 여유가 있고 한가함이 있는 곳이다. 즉 그곳은 자유로움을 만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적지만 그만큼 돈 쓸 곳이 적은 곳, 적은 돈으로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 그곳에 오래 머문 사람만이 그곳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 남아프리카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펭귄만큼 이채로웠던 것은 사막처럼 보이는 '아틀란티스 샌듄'에서 샌드보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새하얀 눈이 아닌 새하얀 모래 언덕에서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느낌은 어떨까. 사르륵 무너져 내리는 모래 덕분에 스키장에서처럼 넘어져도 다칠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또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번지 점프 코스인 블루크랑스 번지브릿지가 있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 위에 세워진 다리,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그곳은 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도로다. 그 도로 아래쪽에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다리 아래 계속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 길을 걷는다니, 게다가 그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튼튼한 로프를 사용한다고 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이곳에서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을까. 그들이 뛰어내리면서 무엇을 보았을지 궁금하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끝없는 해변, 깊은 계곡과 드높은 산도 멋지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 또한 매력적이다. 갓 잡아온 참치에서 선뜻 1㎏만 베어내 파는 참치잡이 어부, 좋아하는 풍경을 보기 위해 아예 이사를 온 남자, 개인 정원이지만 오픈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농장주, 유쾌한 드럼 연주에 꼬사 노래까지 불러주는 봉봉카. 거리적으로는 상당히 먼 곳이지만, 넉넉한 시골 사람들 같아서 낯설지 않다. 그저 책을 통해 그들을 만났을 뿐인데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같고 안부인사를 건네고 싶다.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p244)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향함이라고 말하는 에세이스트 테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그의 바람처럼, 낯설고 이채로운 남아프리카의 사람들을 만나 즐겁다. 언젠가 그곳을 향하게 되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 한번 나누리라. 그가 남아프리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소금 사막이라고 하는데, 그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09-115.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2009/08/2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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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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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마세요!
   사실 난 겁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리 인기있는 공포 영화라도 도저히 볼 엄두를 못낸다. 책도 마찬가지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을 때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 때문에 몇 번이나 주위를 살펴봤는지 모른다. 『베일』은 표지부터 섬뜩하다. 과연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을까? "베일"이라는 제목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이라는 부제.  왜 이 책을 읽고 싶어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아마도 오츠이치라는 작가의 명성 때문에 그 공포는 더했으리라. 도저히 혼자서는 읽을 자신이 없어서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과 사람이 가득하고, 열람실이 모두 유리창으로 돼있어 내부도 화창하다. 드디어 용기를 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제 새벽에 써 둔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책을 들었다가 오싹함에 그냥 덮어뒀다. 지금은 온가족이 모여있는 일요일 오전, 혼자가 아니니 다시 용기를 내 서평을 쓴다.)

   『베일』은 「천제요호」와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 두 편의 중편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천제요호」는 "스즈키 쿄코 님,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우리도 작별을 했겠지요."라는 야기의 편지로 시작한다. 그가 갑작스럽게 쿄코 곁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쿄코는 길에서 힘들어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괴상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쿄코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며칠 쉬다 가라며 그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쿄코, 가족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지만 점점 그와 친해진다. 그는 모습은 괴상했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이미 정이 들어버린 쿄코는 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며 계속 머물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라면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공장으로 일을 하러 나간다. 그러나 사건은 그 공장에서 있었다. 공장 주인의 아들이 붕대 속에 감춰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한 것이다. 심한 화상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그를 폭행하며 막무가내로 벗기려 한다. 그로인해 그는 돌변하기 시작했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쿄코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쿄코에게만은 자신의 잔인함을, 붕대를 벗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는 무슨 이유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일까? 진짜 심각한 화상을 입은 것일까?
   그의 이름은 야기, 그 사건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벌어졌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코쿠리 상 놀이를 혼자 집에서 하고 있었다. '코쿠리 상'은 일종의 초혼술로 영혼을 불러 질문하고 대답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분신사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흰 종이 위에 50개의 히라가나와 '예', '아니오'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신사 앞에 세우는 토리이를 뜻하는 간단한 그림을 그려넣는다. 출발점은 그림 위, 거기다가 10엔 동전을 올려놓고 여러 명이 검지로 누르고 있으면 어떤 신비한 존재에 의해 10엔 동전이 움직이는 것이다.
   야기는 이 이상한 놀이를 믿진 않았지만 너무 지루한 나머지 혼자서 하게 됐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누구 있어요?"라고 묻자 "예"  위에 동전이 올려져 있었다. 야기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사나에라고 했으며, 그녀는 앞을 내다볼 줄 알았다. 날씨를 맞추고 친구의 죽음도 맞췄다. 점점 야기가 사나에의 예언을 믿어갈 즈음 사나에는 4년 후에 야기가 죽는다고 한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야기는 죽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의 아이가 되기로 하고 불멸을 얻었다.
   야기가 그녀와의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칼을 잘못 다뤄 손톱이 날라갔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아픔은 이내 사라지고 손톱이 날라간 자리에는 새 손톱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손톱은 사람의 것이 아닌 동물의 것이었다. 야기는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 새로 난 손톱에 붕대를 감고 감췄다. 사나에를 원망했지만 이미 거래는 성사됐다. 그날 이후 야기는 다치지 않게 극히 조심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의 몸은 점점 더 많은 붕대를 감게 됐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야기, 그러나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길 한가운데서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에게 쿄코가 손을 내민 것이다.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는 화장실 벽에 몰래 남겨둔 낙서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 몰래 담배를 피기 위해 쓰는 사람이 적은 화장실을 찾은 '나'는 아주 반듯하게 쓰여진 낙서를 발견한다. '낙서하지 말라.' 다음날 화장실을 찾은 '나'는 또다른 낙서를 발견한다. 'K. E.'와 '2C 갈색 머리', 'V3'라는 사람이 각각 그 낙서에 답을 달아놨다. '나'도 '너희들 대체 누구냐.'라는 답을 적어놓고 'G. U.'라고 이름을 남겼다. 그렇게 낙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맨 처음 '낙서하지 말라.'고 낙서를 남긴 사람이 '이 학교에는 깡통이 너무 많다.'고 했고, 다음날 자판기가 모두 망가진 것이다. 또 '사나다 선생의 빨간색 차는 교통에 방해된다. 내가 배제하겠다.'라는 낙서가 남겨진 다음날 사다다 선생의 빨간색 차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망가졌다. 다음 표적은 미야시타 쇼코라는 여학생으로, 몰래 담배 피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나'는 미야시타를 위험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를 유인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표적은 미야시타가 아니었다. 그는 미야시타를 미끼로 '나'를 유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야시타는 딱 한번 담배를 피다가 꽁초를 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그런다. 범인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청소하는 노파였다.

    다소 짧은 분량의 소설들로, 제목이나 표지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소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나자 괜히 억울했다. 이 정도의 소설을 가지고 지레 겁을 먹다니.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오츠이치의 천재성이 이 작품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단 말인가. 특히 두번째 이야기는 공포라기보다는 추리소설의 느낌이 더 강했다. 진정한 공포를 맛보려면 『ZOO』를 읽어봐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전혀 엄두를 못냈던 책인데 『베일』을 읽으면서 용기가 조금 생겼다.
   책을 덮고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이라는 부제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생각만으로도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09-113. 『베일 :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 2009/08/2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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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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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을 못 읽는데 글을 어떻게 쓸까? 이 책은 그렇게 쓰여진 책입니다!
   가끔씩 이런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안경을 벗으면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 얼굴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그나마 안경을 착용하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만약 내 눈이 퇴화 혹은 노화해서 안경을 껴도 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까. 게다가 여느 사람들보다 더 민감한 눈을 가진 탓에 병이라 얻어 시력을 잃으면 어떻게 할까. 그 공포는 사춘기 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 크다. 물론 누구에게나 보는 행위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공포는 나처럼 책 읽는게 낙이자 책 읽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1년동안 책 한권 읽지 않는 사람보다 더욱 크게 작용할 것이다.
   나의 막연한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워드 엥겔, 그는 활자 중독자에다가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 공포는 어느날 아침 갑자기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배달된 신문을 읽으려 했지만 그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신문의 형태는 늘 보던 것과 같은데, 활자는 마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라의 것 같았다. 병원을 찾은 그는 자신의 병명이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읽지는 못하는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왔던 뇌졸증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보통 뇌졸증을 앓게 되면 시력을 완전히 잃거나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혹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단지 읽지 못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글을 써야하는 작가다. 방금 자신이 쓴 글조차 읽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겠는가. 그럼, 일을 그만두면 되지 않겠냐고? 그에게는 아직 돌봐줘야 하는 막내 아들이 있다. 게다가 그는 지독한 활자중독자다. 단순히 글을 쓰지 않는 것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활자를 향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만 포기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글 읽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가 해주신 말을 떠올린다. "네가 아는 걸 쓰렴." (p154) 그래서 그는 자신이 창조한 베니 쿠퍼맨에게 자신과 같은 병을 앓게 한다.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저자가 직접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그의 작품이 깊이와 진정성이 있다고 평했다.

   "손상된 부분은 읽기 능력이었습니다. 글을 쓸 수는 있지만 방금 써놓은 글을 읽지 못하게 된 거죠. … 그래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고쳐 쓰지는 못합니다. … 시각 능력은 대부분 정상이지만 텍스트를 볼 때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어떤 글이라도 첫눈에는 세르보크로아티아 글자처럼 낯선 활자들로 보입니다. 제 이름을 비롯한 낯익은 단어들도 낯선 활자들로 보여서 천첞 발음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어떤 기사나 리뷰에서 한 가지 이름이 되풀이되더라도 볼 때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낯선 모양으로 보입니다. " (p134~135)


   이 책은 하워드 엥겔이 '실서증 없는 실독증'을 극복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극복기는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기억을 하는 것에도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또 글은 엉망이다.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하지만 이해해야 한다. 그가 병을 완전히 치유하고 나서 쓴 책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병을 앓고 있고,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여느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을 들였다. 
   책 뒷부분에는 이와 관련해서 '더 읽을거리'가 있다. 올리버 색스의 책을 비롯해 뇌 장애를 그린 문학 작품이 함께 소개돼 있어서 함께 읽어보면 그의 병을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

09-114. 『책, 못 읽는 남자』 2009/08/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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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정당방위에서 광기로 변한 살인, 귀를 막고 밤을 달린 그의 마지막은?
   얼마전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로 처음 만난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 그의 작품 앞에 붙는 수식어가 상당히 화려하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서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지막까지 1위를 다퉜단다. 게다가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스터리 작가라고도 한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가? 아니 이미 사랑받고 있는 것과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다를 수도 있다. 아무튼 난 홍보성 문구는 신뢰하지 않으니 일단 읽어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역시 이런 수식어가 붙을만 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살인장면과 살인자가 공개됐고, 닫혀 있는 문을 열지 않는 것과 살인 이유를 알기 위해 쉬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다소 빈약한 부분도 보였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상당했다. 과연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떠할까? 결국 그에게 붙은 수식어처럼 나도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온다 리쿠가 그랬듯이 한번 우리나라에 소개되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이 출간되곤 하다. 그의 작품이 처음 소개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작품이 나왔다. 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던 참에 다음 작품이 나와서 반가웠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마찬가지로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또한 시작부터 살인자가 공개된다. 나미키는 세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그리 급하게 세울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일 필요는 없지만 무작정 미룰 수도 없기 때문에, 차근차근 완벽하게 준비를 하면 된다. 철저하게 준비한 다음에 실행하려고 했던 그의 살인 계획은 뜻하지 않게도 당장 실행해야 할 상황이 된다. 그의 살인 계획을 눈치챈 아카네가 그를 먼저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몸싸움을 벌이던 중 나미키는 그녀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아무리 정당방위라 해도 앞으로의 그의 삶은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하리라. 그런데 아카네는 왜 갑자기 그를 죽이려 한 것일까? 왜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 나미키가 그녀를 경계하게 만든 것일까?
   이시모치 아사미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을 작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몇 장만 읽어도 독자들은 머리가 근질근질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미키는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이 한가지 궁금증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데, 갑작스럽게 실행으로 옮기게 된 그의 살인 방법도 궁금하다. 완벽한 살인을 꿈꾸던 그가 갑작스럽게 그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와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처음부터 살인자가 공개된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후시미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의 나미키는 둘다 완벽주의자로 매사에 분석적인 사고를 한다. 그래서 살인 또한 완전 범죄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또 한명의 냉철한 사람이 있었다. 유카는 후시미의 범행 방법을 보지도 않고 추론해 냈으며, 시미즈는 나미키가 행동하기 전에 이미 사건을 예상하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자가 있으면 추리 소설의 재미는 배가 된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빠트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알라우네'이다. 무고한 죄로 교수형에 처한 남자가 흘린 정액에서 피어났다는 독일의 전설 속 식물로, 알라우네를 얻는 자는 영원한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전해지낟. 하지만 알라우네를 뽑을 때 나는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들으면 죽기 때문에, 끈으로 묶어 개에게 끌도록 하고 본인은 귀를 막아야 알라우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p333~334)


    이 책은 독일 전설에 나오는 '알라우네'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미키가 세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은 그녀들이 '알라우네'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원죄 피해자들의 가족이며, 나미키는 원죄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활동했다. 원죄 피해자 지원단체는 그녀들이 사회에서 강하게 살 수 있도록 심리 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괴물은 사회에 엄청난 해를 끼칠 것이며, 그녀들이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되기 전에 나미키는 그녀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미키의 살인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있지만, 어느 누구도 살인을 저지를 명분은 없다. 게다가 살인은 한번 저지르게 되면 폭주하게 된다. 처음엔 죄책감이나 망설임을 느꼈던 사람도 그 횟수가 거듭되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것을 범하게 된다. 그래서 연쇄 살인범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흡인력만 있는 추리소설은 아니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처럼 미흡함은 보이지만, 그와 함께 귀를 막고 밤을 달려보라!

09-112.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2009/08/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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