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과 표지에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마세요!
   사실 난 겁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리 인기있는 공포 영화라도 도저히 볼 엄두를 못낸다. 책도 마찬가지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을 때는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 때문에 몇 번이나 주위를 살펴봤는지 모른다. 『베일』은 표지부터 섬뜩하다. 과연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을까? "베일"이라는 제목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이라는 부제.  왜 이 책을 읽고 싶어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아마도 오츠이치라는 작가의 명성 때문에 그 공포는 더했으리라. 도저히 혼자서는 읽을 자신이 없어서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과 사람이 가득하고, 열람실이 모두 유리창으로 돼있어 내부도 화창하다. 드디어 용기를 내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제 새벽에 써 둔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책을 들었다가 오싹함에 그냥 덮어뒀다. 지금은 온가족이 모여있는 일요일 오전, 혼자가 아니니 다시 용기를 내 서평을 쓴다.)

   『베일』은 「천제요호」와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 두 편의 중편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천제요호」는 "스즈키 쿄코 님,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우리도 작별을 했겠지요."라는 야기의 편지로 시작한다. 그가 갑작스럽게 쿄코 곁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쿄코는 길에서 힘들어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괴상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쿄코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며칠 쉬다 가라며 그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쿄코, 가족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지만 점점 그와 친해진다. 그는 모습은 괴상했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이미 정이 들어버린 쿄코는 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며 계속 머물라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라면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공장으로 일을 하러 나간다. 그러나 사건은 그 공장에서 있었다. 공장 주인의 아들이 붕대 속에 감춰진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한 것이다. 심한 화상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만 아들은 그를 폭행하며 막무가내로 벗기려 한다. 그로인해 그는 돌변하기 시작했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쿄코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쿄코에게만은 자신의 잔인함을, 붕대를 벗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는 무슨 이유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일까? 진짜 심각한 화상을 입은 것일까?
   그의 이름은 야기, 그 사건은 그가 초등학생일 때 벌어졌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코쿠리 상 놀이를 혼자 집에서 하고 있었다. '코쿠리 상'은 일종의 초혼술로 영혼을 불러 질문하고 대답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분신사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흰 종이 위에 50개의 히라가나와 '예', '아니오'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신사 앞에 세우는 토리이를 뜻하는 간단한 그림을 그려넣는다. 출발점은 그림 위, 거기다가 10엔 동전을 올려놓고 여러 명이 검지로 누르고 있으면 어떤 신비한 존재에 의해 10엔 동전이 움직이는 것이다.
   야기는 이 이상한 놀이를 믿진 않았지만 너무 지루한 나머지 혼자서 하게 됐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누구 있어요?"라고 묻자 "예"  위에 동전이 올려져 있었다. 야기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사나에라고 했으며, 그녀는 앞을 내다볼 줄 알았다. 날씨를 맞추고 친구의 죽음도 맞췄다. 점점 야기가 사나에의 예언을 믿어갈 즈음 사나에는 4년 후에 야기가 죽는다고 한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야기는 죽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의 아이가 되기로 하고 불멸을 얻었다.
   야기가 그녀와의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칼을 잘못 다뤄 손톱이 날라갔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아픔은 이내 사라지고 손톱이 날라간 자리에는 새 손톱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손톱은 사람의 것이 아닌 동물의 것이었다. 야기는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 새로 난 손톱에 붕대를 감고 감췄다. 사나에를 원망했지만 이미 거래는 성사됐다. 그날 이후 야기는 다치지 않게 극히 조심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의 몸은 점점 더 많은 붕대를 감게 됐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야기, 그러나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길 한가운데서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에게 쿄코가 손을 내민 것이다.

   「A MASKED BALL ─ 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는 화장실 벽에 몰래 남겨둔 낙서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 몰래 담배를 피기 위해 쓰는 사람이 적은 화장실을 찾은 '나'는 아주 반듯하게 쓰여진 낙서를 발견한다. '낙서하지 말라.' 다음날 화장실을 찾은 '나'는 또다른 낙서를 발견한다. 'K. E.'와 '2C 갈색 머리', 'V3'라는 사람이 각각 그 낙서에 답을 달아놨다. '나'도 '너희들 대체 누구냐.'라는 답을 적어놓고 'G. U.'라고 이름을 남겼다. 그렇게 낙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맨 처음 '낙서하지 말라.'고 낙서를 남긴 사람이 '이 학교에는 깡통이 너무 많다.'고 했고, 다음날 자판기가 모두 망가진 것이다. 또 '사나다 선생의 빨간색 차는 교통에 방해된다. 내가 배제하겠다.'라는 낙서가 남겨진 다음날 사다다 선생의 빨간색 차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망가졌다. 다음 표적은 미야시타 쇼코라는 여학생으로, 몰래 담배 피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나'는 미야시타를 위험에서 구해내기 위해 그를 유인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표적은 미야시타가 아니었다. 그는 미야시타를 미끼로 '나'를 유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야시타는 딱 한번 담배를 피다가 꽁초를 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그런다. 범인은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청소하는 노파였다.

    다소 짧은 분량의 소설들로, 제목이나 표지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소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을 다 읽고나자 괜히 억울했다. 이 정도의 소설을 가지고 지레 겁을 먹다니.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오츠이치의 천재성이 이 작품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단 말인가. 특히 두번째 이야기는 공포라기보다는 추리소설의 느낌이 더 강했다. 진정한 공포를 맛보려면 『ZOO』를 읽어봐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전혀 엄두를 못냈던 책인데 『베일』을 읽으면서 용기가 조금 생겼다.
   책을 덮고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이라는 부제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생각만으로도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그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09-113. 『베일 : 저 너머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 2009/08/23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