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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 '라면 한 봉지'는 무엇인가?
나는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딱 떨어지는 것이 좋다. 그래서 체 게바라가 말한 불가능한 꿈도 꾸지 않는다. 단 몇 퍼센트의 가능성만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을 꿈이라 부르지 않는다. 꿈이라고 명명되어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도전이라는 조건이 따라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도 확실한 것만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한번쯤 더 큰 세상으로 나가 그 세상과 마주하고 싶지만, 그 세상 또한 불확실한 세상이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늘 불확실성 앞에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보자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기보다는 차마 나같은 사람은 범접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대학생 때, 같은 학부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를 복수 전공하려 했었다. 실습만 나가면 복수 전공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은 나같은 사람은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들을 도우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그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삶보다 그들의 삶을 먼저 생각할 수는 없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날개를 달고 태어난 천사일 것이다. 그러니 나같은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비야, 그녀는 내가 할 수 없다고 한 일들을 모두 해내고 있다. 그래서 부럽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것을 해내기 위해 그만큼의 대가를 치뤘기 때문이다. 대신 그것들을 하지 않고 살지만, 적어도 그녀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내 또래의 많은 여성들이 갖고 있는 그녀에 대한 동경은 없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그녀가 이번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늘 챙넓은 모자와 작업복 차림의 그녀를 보아왔던 터라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조금은 낯설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바람이 분걸까? 그랬다. 분명 그녀에게는 한 차례의 바람이 지나갔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단발머리에 작업복 스타일을 고수했던 그녀가 예뻐지기로 결심한 이유,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건네려면 예뻐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평소 혜자마마라고 부르는 김혜자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땀 냄새 폴폴나는 작업복을 입고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면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꽁꽁 숨겨뒀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몇 장 읽고나니 그동안의 그녀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인간을 가장한 천사가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범접하기 어려웠던 그녀가 나와 같은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어떤 힘으로 그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나같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나를 질타했다. 불확실한 것이 싫어서, 용기가 없어서 꿈조차 꾸지 못하는 나를 꾸짖었다. 어릴적에 나는 지금과 사뭇 다른 아이였다. 그땐 꿈도 있었고, 내가 처한 상황에 늘 감사해하며 행복해할 줄 알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꿈도, 감사함도, 행복도 모두 잊어버렸다. 그녀의 질타는 내 자신을 일깨워줬다.
그녀는 오지에서 구호 활동을 펼칠 때는 라면 한 봉지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라면 한 봉지'는 무엇일까?
09-110. 『그건, 사랑이었네』 2009/08/1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