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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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번역하는 여자를 따라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볼까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를 찾아본다. 혹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그곳에서 직접 눈도장을 찍고 공감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이는 비단 나만이 취하는 행동은 아닌가보다. 강원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며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 또한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p.50)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p.50)이라는 그녀. 사실 이번 동유럽 여행도 지젝 덕분에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슬라예보 지젝의 『이라크 : 빌려온 항아리』를 읽고 중독성 강한 그의 세계에 빠져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의 나라인 슬로베니아를 여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는 동유럽 가운데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세 나라의 도시를 둘러본다. 역사가 남긴 상처 때문에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거인 여자를 만날 것만 같은 체코의 프라하와 베네쇼프 ─ 사실 일정 때문에 베네쇼프는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을만큼 아름답고, 주홍빛 지붕과 하얀 빨래들이 멋진 풍경을 만드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시속 8킬로미터로 가는 기차가 있고 오후 9시 이후에는 절대 알코올음료를 팔지 않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와 블레드.  

   그녀는 각각의 여행지를 책은 물론이고 영화, 음악, 그림,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보여준다. 단순히 여행지에서의 감상만을 늘어놓았다면 쉽게 공감하지도, 이만큼 재밌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소개하는 여러 문화 장르 이야기는 굳이 그곳에 가보지 않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충분히 감상하고 느껴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게다가 스무 권 가량의 책을 번역한 출판번역가답게 톡톡 튀는 글솜씨를 자랑하기도 한다. 특히, 감정 표현이 남다르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젊은 번역가라서 그런지 감정 표현이 젊고 당돌하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무협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엿 같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무언가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그녀의 비유법은 머리 숙이고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칠맛 난다.  

  『굴라쉬 브런치』라는 제목에서 '굴라쉬'는 체코의 대표적인 전통요리로, 얼큰한 쇠고기 스프다. 얼큰하고 걸쪽한 국물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해서 한 끼 식사로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란다. 그녀는 "굴라쉬 브런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낯선 동유럽 여행기지만, 그곳에서 직접 눈도장 발도장 찍지 않아도 충분히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책 말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충분히 감침맛 나는 이야기니까.

10-030.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2010/04/1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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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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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낸 죄의식을 일깨워주고 대신 사과까지 해줍니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전작에서 '개념 있는' 유쾌함을 보여줬던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기대는 됐지만, 종이가 아닌 모니터로 그 이야기들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론"을 떠들어 냈지만, 나같은 독자가 있다면 절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과는 잘해요』는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에서 엽기 콤비로 맹활약을 했던 진만과 시봉이 다시 등장한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시설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전에 콤비로 맹활약했다는 것을 모르는가보다. 아무튼 그들이 있는 시설은 때가 되면 약을 주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폭력을 휘두르는 곳이다. 그들은 알약을 먹지 않거나 복지사들에게 맞지 않을 때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상표를 붙였다. 
   어느날 승합차를 타고 온 구렛나루 아저씨가 자신은 멀짱한데 갇힌 거라며 담장 밖으로 쪽지를 보낸 것에서 사건은 비롯됐다. 진만과 시봉은 구렛나루 아저씨를 돋고 싶어서 양말 상자 안쪽에 '시설의 기둥들'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메모를 했다. 얼마 후 경찰과 공무원, 방송사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원장과 복지사들을 비롯해 정상인 사람들은 모두 잡혀갔다. '내부고발자'라는 닉네임이 붙은 그들은 다른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시봉은 자신의 집을 알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시설로 온 진만의 자신의 집을 몰랐다. 뿐만아니라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 시봉의 집으로 갔다. 
   시봉의 집에는 동생 시연과 그녀보다 16살이 많은 뿔테 안경 남자가 살고 있었다. 뿔테 안경 남자는 늘 시연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시연이 몸을 팔아 번 돈으로 그는 매번 경마장에 가 모두 털리고 돌아왔다. 그것이 안타까웠던지 진만과 시봉은 돈을 벌기 위해 나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포장하는 것인데 아무도 포장일에 그들을 써주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그들이 찾은 일은 '사과'를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시설에서 덜 맞기 위해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며 복지사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면 복지사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고 할 때보다 적게 때렸고, 진만과 시봉은 짓지 않은 죄를 먼저 고백하고 그 죄를 행했다. 

   진만과 시봉은 누군가가 지은 죄를 대신 사과하며 상대방이 용서할 때까지 맞거나 손목을 비틀곤 했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뿔테 안경 남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부인과 아들을 버린 남자가 자기 대신 사과해달라고 했을 때, 그의 부인은 대신 죽어줄 수도 있냐고 했다.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은 해 줄 수가 없었다. 둘 다 죽어야 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면 죽어야 할지, 하나라면 누가 죽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뿔테 안경 남자가 이미 돈을 받아버려서 그들은 대신 뿔테 안경 남자가 그의 부인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마 후 복지사들이 집행유예로 풀렸났고 그들은 '내부고발자'인 진만과 시봉을 죽이려 한다. 진만과 시봉이 시설의 모든 비밀이 적혀있는 일기장을 갖고 있다고 하자 복지사들은 진만을 풀어주며 그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한다.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시봉을 죽이겠다며. 그러나 진만은 시봉이 죽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설에서처럼 시봉이 진만의 몫까지 복지사들에게 사과하면 되니까.
   사실 시설에서 나온 이후 진만은 시봉보다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시봉은 모르는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만은 시연을 사랑한다. 그것이 바로 시봉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가 시봉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뿔테 안경 남자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시연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만과 시봉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죄를 깨우친다. 원장의 말처럼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p.215)인데, 그들이 자꾸 사과를 하라며 그 죄를 일깨워주니 꺼려질 수 밖에 없다. 자꾸 사과할 것이 없냐고 묻는 그들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내 죄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만과 시봉 콤비를 보고 있자니 영화 《새드무비》에서 이별대행을 해줬던 차태현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잘 읽고 재밌게 썼으나 아쉽게도 웃기지는 않았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팔짱 끼고 방청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전작이 훨씬 좋다고 평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내가 읽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훨씬 못 미치니, 정리하면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 연재소설로 기획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경향의 글을 쓰는 박민규는 연재소설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더욱 심도있는 글을 써냈다. 짧은 호흡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부족한 내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그의 '개념 있는' 유쾌한 이야기를 다시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09-144. 『사과는 잘해요』 2009/11/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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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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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우리는 늘 금지된 것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얼마전의 일이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 목록이 발표됐고, 출판 관계자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질렀다. 판매량이 저조했던 책들도 불온서적이라는 낙인을 받고 날개 돋친듯 팔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은 '공공연한 금서'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금서는 없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달랐다.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다른 곳 혹은 작가의 책은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그곳에서는 자유주의 사상이 담겨 있는 책들을 금지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작가 다이 시지에의 자전적인 소설로,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와 뤄는 '잘나빠진 지식층의 기득권자들'의 아들이라는 죄로 두메산골인 '하늘긴꼬리닭' 마을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게 된다. 말이 재교육이지 사실은 노동이었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뤄에게는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다행히 마을 촌장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촌장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영화가 상영되는 곳으로 그들을 보내 영화를 보고 오게 했다. 
   어느날 '나'와 뤄는 바지길이를 늘이기 위해 재봉사의 집을 찾는다. 마침 재봉사는 출장을 가서 그의 딸인 바느질 처녀를 만나게 된다. 재봉사의 딸인 이유로 여느 사람들과는 옷차람이 달랐던 바느질 처녀,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되고 예쁘지는 않지만 뤄는 그 처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마을에는 '안경잡이'라는 그들의 친구가 재교육을 받고 있다. 어느날 '안경잡이'를 찾은 그들은 '안경잡이'가 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안경잡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신 노동을 해주고 그 대가로 발자크의 책 한권을 얻는다.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양가죽 점퍼 안쪽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베껴놓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찾아가 매일 밤 책을 읽어준다. 책을 통해 자유와 사랑에 눈 뜬 그들은 '안경잡이'로부터 다른 책들도 훔쳐낸다. '나'는 정신없이 책을 읽어나갔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열심히 발자크 작품을 읽어줬다. 그리고 뤄와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만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발자크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예쁘기는 하지만 촌스러웠던 그녀가 점점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떠났다. 뤄는 그동안 애지중지 해왔던 책들을 불사르고 만다. 바느질 처녀가 아버지에게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이다.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p252)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사라졌고, 뤄는 아끼던 책들을 모두 불사르기 시작한다.

    결국 '나'와 뤄, 바느질 처녀는 발자크를 통해 중국 사회가 그토록 경계하고 금지된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분서를 하고 갱유를 해도 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때문에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부추길뿐.
   당시의 중국 사회는 엄청나게 잔인하다. 단지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일 뿐인데,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매질을 가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노동을 요구한다. 부모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들은 그 노동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또 그들의 무지함은 몸서리치게 만든다. 사람이 아픈 것은 악귀가 들었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도 매질을 가하거나 무당을 부르는게 고작이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던 다이 시지에는 신기하게도 그것을 오히려 즐겁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성장통처럼 말이다.

   다이 시지에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내놓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체험했던 삶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지요. 지금까지는 시나리오만 써왔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영화로 다루고 싶지 않았지요. 
   발자크는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지요. 작중인물들의 욕구, 욕망, '비열한 짓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날마다 보는 이웃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건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중국문학에서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작중 인물들에게 전형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자크는 잠자리를 하지 않은 여자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기사도 정신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었지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죠." (p255~256)

   그러면서 오히려 금지가 풀린 지금은 모두들 TV를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책을 읽게 하려면 금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단말인가.

09-117.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2009/08/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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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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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 모든 것은 상호 연관성이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서점을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살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두께 탓도 있지만 그것이 과학 이야기라는 것 때문이었다. 제목에서 비롯된 오해 덕분에 최근까지도 나는 이 책이 과학서인줄 알았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또다른 작품인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가 나왔다. 전작과 비교하면 훨씬 가벼워진 분량 덕분에 더글러스 애덤스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가 나와 맞는 작가라면 그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도전해보면 될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더글러스 애덤스와의 첫 만남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재밌는 이야기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겠는데, 그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일단 낯설었다. 무언가를 믿도록 설계됐지만 회로에 이상이 생겨 무엇이든 믿게 돼버린 전기수도사도 낯설었고, 여러 프로그램들을 이용해 말도 안돼는 음악을 만드는 리처드도 낯설었다. 그 낯선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지가 않았다. 그러나 더크 젠틀리라는 탐정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모든 것이 상호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며, 실종된 고양이를 찾기 위해 바하마까지 가야한다고 한다. 리처드는 물론이고 독자들까지 노부인에게 더 많은 수고비를 받아내기 위한 그의 억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억지가 아니다.
   40억년 전, '사락사란'이라는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정착하기 위해 오던 중 엔지니어의 실수로 인해 우주선이 폭발한다. 우주선이 폭발하면서 새어나온 생명의 씨, 즉 아미노산이 지구에 싹을 틔우고 생명체로 진화한다. 자신 때문에 수많은 외계생명체가 죽었다고 생각한 엔지니어는 유령이 돼 지구를 떠돌게 된다.
   리처드돠 더크 젠틀리의 담당 교수였던 리즈 교수는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오래전에 절판된 도서들을 추천하는가 하면, 그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가 언제부터 이 학교의 교수가 됐는지도 알 수 없다. 수상한 것이 많은 리즈 교수, 그에게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그 비밀을 더크 젠틀리가, 그것도 직관으로 알아낸다. 리즈 교수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200년 전에도 살아 있었다.
   리즈 교수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령은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에 자신이 했던 잘못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리즈 교수는 워낙 강단있는 사람이라 그의 몸에 들어가 그를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타임머신을 얻으려는 유령 때문에 일련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더크 젠틀리는 그 사건들이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추리해 낸다.
   낯선 이야기도 더크 젠틀리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유머다. "컴퓨터 작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록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도 해봤는데요. 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p38)와 같은 유머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시시한 말장난 같지만, 자꾸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유머에 중독돼 버린다.
   이 책은 '더크 젠틀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조만간 『길고 어두운 영혼의 티타임』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다음 작품에서도 더크 젠틀리의 빛나는 직관력을 엿볼 수 있길 기대한다. 

09-118.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2009/08/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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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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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곳,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
   지인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놀러 오겠다고 하면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돼, 실망만 할거야. 여긴 볼만한게 없어. 그냥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만 기억해줘!"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그저 비하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늘 밖으로만 내돌았던 것이 미안했던지 지난 한달동안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동물원, 수목원, 놀이동산, 야구장, 축구장 등등. 그런데 이 도시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규모만 크고, 무료로 개방했으나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다른 도시의 그것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도심이라도 예쁘게 다듬어져 있으면 좋은데, 스카이라인을 고려하기는 커녕 다 쓰러져가는 가옥 옆에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색적이기는 커녕 한숨만 나온다.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다른 저편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본문 중에서)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닷가에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이었다. 집집마다 붉은 지붕을 살포시 얹고 있는 바닷가 마을 "노브리예나체". 시리도록 파란 바다 위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에 펼쳐져 있어 그 빛깔의 대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는 월드컵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는 정도, 개인적으로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렸던 발칸 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로 그 유명한 아드리아 해변을 끼고 있단다. 한때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중 하나였으나 1991년 6월에 독립한 나라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곳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니,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을 겪은 나라임에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비롯해 많은 곳들이 잘 보존돼 있다. 그 전쟁이 어떤 형태로 치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가능하면 자연과 옛것을 건드리지 않고, 설혹 무언가를 새로 만들더라도 기존의 것들과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옛것을 보존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새것이라고 모두 보기 좋은 것은 아닌데, 크로아티아의 노브리예나체 요새를 보면서 황홀함보다 안타까움 마음이 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너와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 존재하듯이 자그레브에서는 무엇과 무엇, 또 무엇과 무엇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것…." (본문 중에서)


   노브리예나체 요새와 함께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은 호수와 나무의 요정이 산다는 "플리트비체"였다. 이 숲은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가 끊임없이 흘러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단다. 숲 곳곳에는 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다리를 이루는 나무들이 인공적으로 깍아놓은 반듯반듯한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알고 있는가? 넥타이를 처음 매기 시작한 곳은 17세기 크로아티아라는 것을. 전쟁터로 나가는 사랑하는 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넥타이를 매주었단다. 앞으론 넥타이를 볼 때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그 고운 마음을 떠올리게 되리라.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는 사진과 일러스트, 약간의 텍스트가 함께 있는 책이다. 텍스트들로만 가득한 책들보다 페이지가 더 더디게 넘어간다. 멋진 사진과 일러스트에 시선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곳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지 말까를 고민했다던 저자의 마음이 이해된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점점 더 많은 곳들이 내 여행 목록에 추가돼서 고민이다.

09-108.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2009/08/2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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