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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ㅣ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곳,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
지인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놀러 오겠다고 하면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돼, 실망만 할거야. 여긴 볼만한게 없어. 그냥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만 기억해줘!"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그저 비하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늘 밖으로만 내돌았던 것이 미안했던지 지난 한달동안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동물원, 수목원, 놀이동산, 야구장, 축구장 등등. 그런데 이 도시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규모만 크고, 무료로 개방했으나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다른 도시의 그것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다못해 도심이라도 예쁘게 다듬어져 있으면 좋은데, 스카이라인을 고려하기는 커녕 다 쓰러져가는 가옥 옆에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색적이기는 커녕 한숨만 나온다.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다른 저편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본문 중에서)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닷가에 옹기종기 들어선 집들이었다. 집집마다 붉은 지붕을 살포시 얹고 있는 바닷가 마을 "노브리예나체". 시리도록 파란 바다 위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에 펼쳐져 있어 그 빛깔의 대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는 월드컵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는 정도, 개인적으로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렸던 발칸 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로 그 유명한 아드리아 해변을 끼고 있단다. 한때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중 하나였으나 1991년 6월에 독립한 나라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는 곳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니,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쟁을 겪은 나라임에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를 비롯해 많은 곳들이 잘 보존돼 있다. 그 전쟁이 어떤 형태로 치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가능하면 자연과 옛것을 건드리지 않고, 설혹 무언가를 새로 만들더라도 기존의 것들과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옛것을 보존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새것이라고 모두 보기 좋은 것은 아닌데, 크로아티아의 노브리예나체 요새를 보면서 황홀함보다 안타까움 마음이 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너와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 존재하듯이 자그레브에서는 무엇과 무엇, 또 무엇과 무엇이 함께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공존하는 것…." (본문 중에서)
노브리예나체 요새와 함께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은 호수와 나무의 요정이 산다는 "플리트비체"였다. 이 숲은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가 끊임없이 흘러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단다. 숲 곳곳에는 나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다리를 이루는 나무들이 인공적으로 깍아놓은 반듯반듯한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알고 있는가? 넥타이를 처음 매기 시작한 곳은 17세기 크로아티아라는 것을. 전쟁터로 나가는 사랑하는 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넥타이를 매주었단다. 앞으론 넥타이를 볼 때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그 고운 마음을 떠올리게 되리라.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는 사진과 일러스트, 약간의 텍스트가 함께 있는 책이다. 텍스트들로만 가득한 책들보다 페이지가 더 더디게 넘어간다. 멋진 사진과 일러스트에 시선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곳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지 말까를 고민했다던 저자의 마음이 이해된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점점 더 많은 곳들이 내 여행 목록에 추가돼서 고민이다.
09-108.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2009/08/23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