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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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우리는 늘 금지된 것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얼마전의 일이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 목록이 발표됐고, 출판 관계자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질렀다. 판매량이 저조했던 책들도 불온서적이라는 낙인을 받고 날개 돋친듯 팔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은 '공공연한 금서'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금서는 없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달랐다.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다른 곳 혹은 작가의 책은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그곳에서는 자유주의 사상이 담겨 있는 책들을 금지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작가 다이 시지에의 자전적인 소설로,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와 뤄는 '잘나빠진 지식층의 기득권자들'의 아들이라는 죄로 두메산골인 '하늘긴꼬리닭' 마을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게 된다. 말이 재교육이지 사실은 노동이었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뤄에게는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다행히 마을 촌장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촌장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영화가 상영되는 곳으로 그들을 보내 영화를 보고 오게 했다. 
   어느날 '나'와 뤄는 바지길이를 늘이기 위해 재봉사의 집을 찾는다. 마침 재봉사는 출장을 가서 그의 딸인 바느질 처녀를 만나게 된다. 재봉사의 딸인 이유로 여느 사람들과는 옷차람이 달랐던 바느질 처녀,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되고 예쁘지는 않지만 뤄는 그 처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마을에는 '안경잡이'라는 그들의 친구가 재교육을 받고 있다. 어느날 '안경잡이'를 찾은 그들은 '안경잡이'가 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안경잡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신 노동을 해주고 그 대가로 발자크의 책 한권을 얻는다.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양가죽 점퍼 안쪽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베껴놓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찾아가 매일 밤 책을 읽어준다. 책을 통해 자유와 사랑에 눈 뜬 그들은 '안경잡이'로부터 다른 책들도 훔쳐낸다. '나'는 정신없이 책을 읽어나갔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열심히 발자크 작품을 읽어줬다. 그리고 뤄와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만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발자크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예쁘기는 하지만 촌스러웠던 그녀가 점점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떠났다. 뤄는 그동안 애지중지 해왔던 책들을 불사르고 만다. 바느질 처녀가 아버지에게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이다.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p252)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사라졌고, 뤄는 아끼던 책들을 모두 불사르기 시작한다.

    결국 '나'와 뤄, 바느질 처녀는 발자크를 통해 중국 사회가 그토록 경계하고 금지된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분서를 하고 갱유를 해도 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때문에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부추길뿐.
   당시의 중국 사회는 엄청나게 잔인하다. 단지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일 뿐인데,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매질을 가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노동을 요구한다. 부모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들은 그 노동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또 그들의 무지함은 몸서리치게 만든다. 사람이 아픈 것은 악귀가 들었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도 매질을 가하거나 무당을 부르는게 고작이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던 다이 시지에는 신기하게도 그것을 오히려 즐겁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성장통처럼 말이다.

   다이 시지에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내놓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체험했던 삶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지요. 지금까지는 시나리오만 써왔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영화로 다루고 싶지 않았지요. 
   발자크는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지요. 작중인물들의 욕구, 욕망, '비열한 짓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날마다 보는 이웃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건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중국문학에서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작중 인물들에게 전형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자크는 잠자리를 하지 않은 여자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기사도 정신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었지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죠." (p255~256)

   그러면서 오히려 금지가 풀린 지금은 모두들 TV를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책을 읽게 하려면 금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단말인가.

09-117.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2009/08/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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