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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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낸 죄의식을 일깨워주고 대신 사과까지 해줍니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전작에서 '개념 있는' 유쾌함을 보여줬던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기대는 됐지만, 종이가 아닌 모니터로 그 이야기들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론"을 떠들어 냈지만, 나같은 독자가 있다면 절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과는 잘해요』는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에서 엽기 콤비로 맹활약을 했던 진만과 시봉이 다시 등장한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시설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전에 콤비로 맹활약했다는 것을 모르는가보다. 아무튼 그들이 있는 시설은 때가 되면 약을 주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폭력을 휘두르는 곳이다. 그들은 알약을 먹지 않거나 복지사들에게 맞지 않을 때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상표를 붙였다. 
   어느날 승합차를 타고 온 구렛나루 아저씨가 자신은 멀짱한데 갇힌 거라며 담장 밖으로 쪽지를 보낸 것에서 사건은 비롯됐다. 진만과 시봉은 구렛나루 아저씨를 돋고 싶어서 양말 상자 안쪽에 '시설의 기둥들'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메모를 했다. 얼마 후 경찰과 공무원, 방송사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원장과 복지사들을 비롯해 정상인 사람들은 모두 잡혀갔다. '내부고발자'라는 닉네임이 붙은 그들은 다른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시봉은 자신의 집을 알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시설로 온 진만의 자신의 집을 몰랐다. 뿐만아니라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 시봉의 집으로 갔다. 
   시봉의 집에는 동생 시연과 그녀보다 16살이 많은 뿔테 안경 남자가 살고 있었다. 뿔테 안경 남자는 늘 시연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시연이 몸을 팔아 번 돈으로 그는 매번 경마장에 가 모두 털리고 돌아왔다. 그것이 안타까웠던지 진만과 시봉은 돈을 벌기 위해 나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포장하는 것인데 아무도 포장일에 그들을 써주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그들이 찾은 일은 '사과'를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시설에서 덜 맞기 위해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며 복지사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면 복지사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고 할 때보다 적게 때렸고, 진만과 시봉은 짓지 않은 죄를 먼저 고백하고 그 죄를 행했다. 

   진만과 시봉은 누군가가 지은 죄를 대신 사과하며 상대방이 용서할 때까지 맞거나 손목을 비틀곤 했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뿔테 안경 남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부인과 아들을 버린 남자가 자기 대신 사과해달라고 했을 때, 그의 부인은 대신 죽어줄 수도 있냐고 했다.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은 해 줄 수가 없었다. 둘 다 죽어야 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면 죽어야 할지, 하나라면 누가 죽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뿔테 안경 남자가 이미 돈을 받아버려서 그들은 대신 뿔테 안경 남자가 그의 부인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마 후 복지사들이 집행유예로 풀렸났고 그들은 '내부고발자'인 진만과 시봉을 죽이려 한다. 진만과 시봉이 시설의 모든 비밀이 적혀있는 일기장을 갖고 있다고 하자 복지사들은 진만을 풀어주며 그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한다.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시봉을 죽이겠다며. 그러나 진만은 시봉이 죽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설에서처럼 시봉이 진만의 몫까지 복지사들에게 사과하면 되니까.
   사실 시설에서 나온 이후 진만은 시봉보다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시봉은 모르는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만은 시연을 사랑한다. 그것이 바로 시봉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가 시봉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뿔테 안경 남자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시연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만과 시봉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죄를 깨우친다. 원장의 말처럼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p.215)인데, 그들이 자꾸 사과를 하라며 그 죄를 일깨워주니 꺼려질 수 밖에 없다. 자꾸 사과할 것이 없냐고 묻는 그들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내 죄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만과 시봉 콤비를 보고 있자니 영화 《새드무비》에서 이별대행을 해줬던 차태현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잘 읽고 재밌게 썼으나 아쉽게도 웃기지는 않았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팔짱 끼고 방청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전작이 훨씬 좋다고 평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내가 읽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훨씬 못 미치니, 정리하면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 연재소설로 기획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경향의 글을 쓰는 박민규는 연재소설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더욱 심도있는 글을 써냈다. 짧은 호흡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부족한 내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그의 '개념 있는' 유쾌한 이야기를 다시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09-144. 『사과는 잘해요』 2009/11/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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