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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삼촌과 프라이드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
단편소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이기호, 《문학동네》 2010년 봄호
단편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은 이기호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 실려 있습니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마음일까요? 아니면 갚아도 갚아도 다시 불어나는 사채 빚 같은 것일까요?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은 20년 가까이 프라이드를 타고 다닌 삼촌과 프라이드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p.48)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하나 남은 막내를 장가 보내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모아 할머니가 삼촌에게 사 준 1987년식 프라이드.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그랬나 봅니다. 차만 있으면 여자들에게 점수 좀 딸거라는 것 말이지요. 하지만 삼촌은 하라는 연애는 안하고 프라이드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할머니가 삼촌에게 프라이드를 사준지 두 달 정도 지난 후에 삼촌은 잘 다니던 피혁 공장을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기 시작합니다. 방 하나 마련하지 않고 숙식도 프라이드 안에서 해결하고, 어쩌다가 차례나 제사 때문에 집에 들러도 이내 프라이드를 타고 떠나버립니다. 이런 삼촌에게 프라이드를 사 준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래도 할머니는 애써 이렇게 위안합니다. 몇 년 동안 정성껏 키운 누렁이를 팔아서 산 차라서 삼촌이 그토록 애지중지 한다고요.
20년 가까이 프라이드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삼촌이 어느날 갑자기 열쇠와 자동차 관련 서류들을 남기고 떠납니다. 이제 막 운전면허증을 따서 근질근질하던 '나'는 삼촌의 프라이드를 끌고나갔다가 알게 됩니다. 삼촌의 프라이드는 후진이 되지 않았고, 수리를 하려면 중고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며, 삼촌이 남긴 서류들은 모두 폐차에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삼촌은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타고 다녔던 프라이드를 차마 폐차할 수 없어서, 혹은 이 프라이드를 사준 할머니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추측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트렁크 속에서 삼촌이 20년동안 꼼꼼히 정리해 둔 차계부를 발견한 '나'는 삼촌과 프라이드의 자세한 사정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삼촌이 남긴 주행기록을 바탕으로, 어쩌면 하동에 있는 옛 연인을 찾아 떠난게 아닐까 해서 하동까지 내려가지만 집 근처만 배회할 뿐입니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처럼 이 소설 또한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답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삼촌이 20년 가까이 프라이드를 타고 전국을 떠돌아 다닌 건 첫사랑 그녀를 찾기 위함이었으며, 마침내 그녀를 찾아서 삼촌의 발이자 애인이기도 했던 프라이드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서 할머니에게 돌려준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결론내어 봅니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에서 또 하나의 재미는 프라이드를 통해 한국의 자동차 역사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적, 우리 집안에도 프라이드를 타고 다니는 삼촌 나이만큼의 사촌오빠가 한 명 있었습니다. 소설 속 삼촌이 타고 다니던 하얀색 프라이드는 아니었지만, 엉덩이가 뭉툭한 프라이드는 차종을 전혀 몰랐던 어린 제가 보기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차였습니다.
오토미션이 나가서 후진이 안되는 프라이드로 후진을 할려면 핸들을 잡고 직접 차를 밀 수 밖에 없습니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진 것은 '나'와 삼촌 사이의 거리가 아니었을까요?
프라이드는 87년 3월부터 기아자동차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치백 스타일의 자동차였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139시시 70마력짜리와, 1323시시 78마력 가솔린 엔진 두가지 모델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렁크가 뒤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세단 모델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처음 보는 해치백 스타일의 자동차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뒤에서 차가 받으면 운전자가 즉사한다는 둥, 트렁크엔 도시락 하나 실을 수 없을 거라는 둥, 기름통이 너무 작아 오토바이랑 다를 바 없을 거라는 둥, 앞에 손잡이만 하나 달면 딱 리어카라는 둥, 대부분 무시와 비하의 말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해 3월 5일 서울 영동 무공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신차 발표회장엔 나흘 동안 무려 18만 명의 시민들이 한꺼버에 몰려, 그런 말들을 모두 무색하게 만들었다. 신차 발표회 후 한 달 만에 가계약 건수가 9천 대를 넘어섰고, 87년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그해 계획했던 총 3만 대의 판매실적을 모두 달성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프라이드가 그토록 단기간 안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저렴한 차량 가격과 다른 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연비가 톡톡히 한몫했지만, 그해 3월부터 집중적으로 방영된 텔레비전 CF의 공 또한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얀색 캐주얼 차림의 젊은 두 남녀가 한강변을 걸어가다가 프라이드를 타고 석양이 지는 도시 저쪽으로 사라지는 광고는, '도시의 젊은 생활, 나의 삶 나의 꿈, 프라이드'라는 카피와 함께 매시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유치하기까지 한 그 광고는, 남자 모델의 특이한 승차 자세 대문에 더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남자 모델은 한쪽 다리를 미리 쭉 펴서, 그러니까 마치 태권도의 뒷발차기 비슷한 자세로 몸을 낮춰 운전서겡 올라탔는데(아마도 차체가 낮아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사람들에게 낯설고 또 한편으론 신기하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그 광고가 나온 이후, 거리 곳곳에서 택시를 그런 자세로 올라타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고, 나와 내 친구들은 자주 그런 자세로 버스에 올라타다가 기사 아저씨에게 호되게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p.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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