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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김 박사가 누구인지 당신이라면 말해줄 수 있을거예요!
단편소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이기호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입니다. 앞서 발표한 두 권의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까지 모두 읽어본 결과 역시 이기호 작가는 단편소설을 참 잘 쓴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세 번째 소설집을 온라인 서점에서 보자마자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런 소설집을 읽을 때는 으레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 작가와 편집자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겠지만, 소설집에 실린 순서대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표제작부터 읽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끌리는 제목의 단편소설부터 읽을 것인지, 혹은 발표연도까지 표시되어 있다면 발표순으로 읽을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소설집에 따라 다르지만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표제작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김 박사가 누구길래 이렇게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제목을 단 것일까요?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중인 스물네 살의 최소연. 분명 붙을거라고 생각했던 임용고시에 아슬한 점수 차로 떨어지자 노량진 고시원으로 향합니다. 휴대전화도 끊고 메신저도 지우고 머리도 귓바퀴가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짧게 자른 후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던 그녀에게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 11층 문이 열리면 너는 등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욕을 할 것이다.
─ 11층 문이 열리면 너는 등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OO놈, 지랄하고 자빠졌네'하고 욕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욕을 입에 담아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서 들어본 적도 없는 그녀는 처음에는 그냥 무의식이라고 여겼지만, 점점 더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반복해서 들려오자 의심하게 됐고 심지어 등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내리면서 그녀의 팔꿈치를 밀치며 내리자 그 말들이 예언처럼 느껴져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주기가 짧았지만 점점 더 심해져서 누군가 그녀에게 말 시키는 것이 두려워지고, 공부하는데도 엄청난 방해가 됩니다. 임용고시를 준비중이라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없었던 그녀는 김 박사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김 박사입니다.
지금 최소연 씨의 상황은 일종의 강박증세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현재 최소연 씨가 직면한 현실, 그러니까 뜻하지 않은 시험 탈락과 그로 인한 좌절감, 다시 반복되는 수험생활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일정 부분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많은 수험생들이 증상과 증세는 달라도 하나쯤 강박증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연 씨의 경우, 그게 전부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소연 씨가 말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다른 이유가 더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제 솔직한 견해입니다. (……)
최소연 씨는 '난생처음 듣는 욕'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언젠가 한 번 쯤 최소연 씨가 '경험'한 것들이 되살아난 경우일 것입니다. 그것들이 최소연 씨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가 고되고 각박한 수험생활을 틈타 전면에 등장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그 강박증세를 없애기 위해선 그 기원을 먼저 알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일시적인 치유일 뿐, 언제고 다시 반복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원을 알아내 거기에서부터 하나하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게 더 확실한 치유법일 것입니다." (p. 107~109)
김 박사의 답변을 들은 후 그녀는 강박증세의 기원을 찾아냅니다. 그 기원은 바로 '엄마'였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그녀가 어릴 때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 사람 이름이 적혀 있는 검은 수첩을 보며 욕을 해댔다고 합니다. 그 때의 엄마 목소리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녀 앞에 메아리처럼 돌아온 것입니다.
강박증세의 기원을 찾아낸 그녀는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치유법을 찾으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부정하고 맙니다. 이제 엄마를 보는 것 조차 두려운 그녀에게 이번에는 그런 엄마를 이해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합니다. 김 박사 자신도 어머니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았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그녀가 김 박사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김 박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입을 꽉 다물어 버린 김 박사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단편소설 하나는 재미있게 잘 쓰는 이기호 작가이니 읽을까 말까 갈팡질팡 하지 말고 어서 읽어보세요. 그리고 말해 주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김 박사는 도대체 누구인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