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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만 자신과 친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선배가 등장한다. 굉장한 독서가인 그 선배는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지만, 피츠제럴드처럼 위대한 작가는 예외라고 했다. 당시는 피츠제럴드가 죽은지 28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했던 《위대한 개츠비》는 《상실의 시대》를 통해 처음 접한 사람도 꽤 될 것이다. 나 역시 《상실의 시대》를 덮자마자 바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으니까.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는 번역 저작권을 보호받고 있지 않는 작품이라 많은 출판사에서 내놓았는데, 버전이 다른 번역본으로 읽다보니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곤 한다.
5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바다 건너에 집을 샀고,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그가 바로 개츠비다. 개츠비는 5년 전 우연히 만난 데이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지만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던 개츠비와 부유한 집에서 자란 데이지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그래서 개츠비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진짜 처지를 알고 데이지가 떠날까봐.
그는 거짓 핑계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을 경멸했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지에게 고의로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가정의 뒷받침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계 어디에서든 갑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p.210)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형씨. 한동안은 그녀가 나를 차 버려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똑똑한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본래의 야망을 잊은 채 순간순간 점점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고, 또 갑자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에게 앞으로 할 일을 들려주면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창한 일들을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p.211~212)
그러던 중 개츠비는 1차 대전 때문에 해외로 파병되고,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개츠비의 귀국은 늦어지고 만다. 개츠비를 기다리던 데이지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예전에 개츠비에게 느꼈던 것처럼 안도감이 느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데이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도 그 정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함께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톰의 재산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데이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대저택을 구입했다. 개츠비는 여전히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자가 된 자신을 보면 데이지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아니 준비한 사랑의 끝은 참으로 잔혹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 밖에 몰랐던 개츠비, 그는 너무 순수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p.227)
《위대한 개츠비》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이자 개츠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캐러웨이다.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올곧다. 개츠비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만남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도 이미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유일하게 개츠비의 편에 서고,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다.
몇 번을 읽는다 해도 결말이 바뀔리가 없고, 이미 개츠비의 비극적인 결말까지 알고 있는데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또 읽을 때마다 개츠비의 '위대함'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사랑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예전에는 개츠비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츠비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개츠비가 얼마나 순수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2013. 05. 22.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