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소녀 카트린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이세욱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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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벗기,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방법!
   어릴적부터 안경을 썼던 나는 잠시라도 안경을 벗어 놓으면 불안하다. 잠을 잘 때도, 목욕을 할 때도 기어이 쓰고 있는다.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흐려 보이고, 세상이 흐려 보이면 상대방의 말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소리뿐만 아니라 입모양과 함께 판단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보다.  

   뉴욕에서 유명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엄마처럼 무용수를 꿈꾸는 카트린은 아빠와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카트린은 안경을 쓰고 있는 아빠와 함께 가끔씩 안경을 벗어놓고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나와는 반대로 카트린은 안경을 쓰지 않아 "사람과 사물의 윤곽이 예리함을 잃으면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소리마저도 점점 둔탁"(9쪽)해지는 세상을 좋아했다.
   아빠의 동업자인 카스트라드 씨가 "당신에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용기가 없어요……. 안경을 다시 쓰는 게 좋겠어요……."(19쪽)라고 말하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19쪽)라고 반문한다. 왜냐하면 "안경을 쓰느냐 벗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살고 있다"(54쪽)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발레소녀 카트린』은 『까트린 이야기』로 출간된 것을 새롭게 펴낸 것으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가 이야기를 쓰고 장 자끄 상뻬가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가족과 관련된 어두운 체험을 이야기에 담아낸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 책에서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카스트라드 씨의 말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09-52. 『발레소녀 카트린』2009/04/2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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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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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관객도 바보!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바보상자'는 TV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해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TV가 내보내는 영상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며, 최근에는 그에 합당한 액션을 취하기도 한다. 스스로 그것을 '바보상자'라 부르면서도 TV가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상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 영상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5년 미디어의 중심에 섰던 황우석 사건을 살펴보자. 미디어는 저마다 그의 학문적 성과를 칭송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추종자가 됐다. 물론 자성의 목소리도 없진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유독 한 곳에서만 그의 성과를 의심하며 증거자료를 내보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전국민은 한 과학자의 사기극에 열광했던 것이다. '침묵의 나선 효과'가 제대로 작용해서 비판적 수용은 발화조차 할 수 없었던 경우다. 

   『문명의 관객』은 이처럼 우리 주변의 현상들을 미디어가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수용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도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떠올려 보라.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인가? 아마도 기름을 흠뻑 뒤집어 쓴 뿔논병아리의 모습을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이 뿔논병아리가 태안 사건의 대명사라도 되는듯 너도나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양성 결핍 증후군'이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 발생 후 며칠동안 나는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한가지 소식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바로 사고 당사자에 대한 소식이었지만, 사고 당사자인 거대 그룹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탓인지 며칠동안 속시원한 사정을 들을 수가 없었다. 연일 뉴스를 통해 나오는 것은 점점 늘어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미디어가 자원봉사를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책에는 황우석 사태, 태안 기름 유출 사건뿐만 아니라 조류독감, 광우병 사태, 비만과 다이어트,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인체의 신비>전 등 미디어가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미디어의 일방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놓쳐버린 사실들을 일깨워줘서 속이 다 후련하다.
   비단 그것은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들에게도 문제는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자세와 역할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09-51. 『문명의 관객』2009/04/23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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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 Know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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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갔다가 얼떨결에 무임(!) 관람하게 된 영화다. 만약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얼떨결에 보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재난 영화라는 것, 또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예정된 인류의 운명, 믿을 것은 오직 종교뿐?
   195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은 50년 후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 그림을 그리고 타임캡슐에 묻는다. 그런데 한 소녀만이 그림이 아닌 숫자로 종이를 가득 채웠다. 50년 후 타임캡슐이 열리고, 아이들은 각자 하나씩 그림을 받는다. 청각 장애가 있는 캘럽이 받은 것은 그림이 아닌 바로 숫자로 가득한 종이였다. 물리학 교수인 캘럽의 아빠 테드(니콜라스 케이지)는 우연히 숫자가 적힌 종이를 보다가 어떤 사실을 알아낸다. 
   종이에 적힌 숫자는 사고가 일어난 날짜와 사망자수, 그리고 위도와 경도를 의미한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가 3건! 여느 재난 영화처럼 테드 또한 그 사고를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예정된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특히, 마지막에 일어나는 사고는 특정지역 사람들만 죽는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태양의 증폭으로 지구 전체가 불타는 것이다. 그것은 소행성에 구멍을 뚫어 충돌을 피한 《아마겟돈》처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킬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인 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까? 정답은 한가지! 그저 종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테드는 인류의 운명을 알기 때문에 영웅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캘럽을 지키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영웅 심리보다는 이런 부성애가 더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아무튼 캘럽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테드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 인류가 죽는다고 해도 자신의 아들만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캘럽은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피하는 길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는 것뿐. 그런데 이 '노아의 방주'는 단순히 믿음이 있다고해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또 메시아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꼭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 받은 자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
   테드는 캘럽을 보낸 후, 그동안 자신이 부정해왔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목사인 아버지의 믿음을 과학자인 테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마지막엔 그 아버지 품으로 돌아갔다. 결국 의지할 것은 종교뿐이라는 것인가.  

   숫자의 비밀이 풀리기 전에는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비밀이 풀린 후에는 기존의 재난 영화를 답습하는 것 같았다. 메시아가 등장하면서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띄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것이 바로 결말이라고 했다.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요소를 담고 있는 결말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끝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영화라고나 할까.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하철 사고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봤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것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의 지하철 참사를 가까이서 지켜본 탓인지, 영화 속 한 장면으로만 보아지지는 않는다.

2009/04/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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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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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럽도다! 도서관에 사는 고양이!
   한 권의 책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한 사람은 고양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은 도서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결국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가지게 됐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고양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읽은 후부터 더더욱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러므로 동물과 나 사이에는 절대 감동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세계를 감동시킨 실화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욕심냈던 이유는 그 고양이가 바로 도서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도서관이 지루하기만한 장소일테지만, 내게는 달콤한 휴일 오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멋진 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라니, 포의 검은 고양이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 No! 보살핌을 주는 고양이!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아침, 도서 반납함에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손을 넣으면 한기가 느껴지는 반납함에서 밤새 얼마나 떨었는지, 작은 고양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도서관장인 비키는 이 작은 고양이에게 '듀이 십진분류법'에서 따온 '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도서관에서 보살피려 한다. 
   하지만 조용해야 할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끄럽게 울거나 말썽을 부릴 수도 있다.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 혹은 어린이 중에는 나처럼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듀이를 키우기 위해 절대 도서관 운영비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해도 도서관 위원들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알았던 것일까? 듀이는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아이들은 듀이를 보러 도서관엘 왔고,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아이도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됐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에 방문하면 꼭 듀이와 눈도장을 찍고, 듀이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덕분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듀이가 살고 있는 도서관은 작은 일 하나도 금새 퍼지는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로, 그즈음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듀이가 나타나면서부터 도서관을 중심으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듀이로 인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가족처럼 지내게 된 것이다. 특히, 한 소년의 실수로 온 마을이 불에 휩쓸렸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이름을 불문에 붙였다. 뿐만아니라 듀이가 점점 유명해지면서 이 작은 마을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듀이는 지역 신문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과 영화에까지 출연했다.
   그러나 듀이는 사람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고양이다.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듀이는 2006년 11월 위종양으로 19년간의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단지 고양이였을 뿐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틀렸습니다. 듀이는 우리에게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존재였습니다." (p325)  

   비키는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싱글맘인 비키에게도,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도, 집이 없는 노숙자에게도 한결같이 사랑을 전하고, 그들을 보살폈다. 사람들은 그들이 듀이를 보살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보금자리인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을 듀이가 보살폈던 것이다. 
   싱글맘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25년동안 스펜서 공공도서관에서 일한 비키 마이런은 19년동안 듀이와 함께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듀이와 함께한 시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듀이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09-50.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2009/04/1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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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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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하찮은 것들'이라도 취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유명 소설가가 쓴 에세이집을 읽고 그 작가의 작품은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소설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소설가는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늘 예외는 있는 법. 에쿠니 가오리는 여러 편의 소설을 펴낸 소설가이지만, 나는 그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그녀의 에세이집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에서는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을 고스란히 닮은 에쿠니 가오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이후 5년만에 나온 에세이집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너무 멋진 제목이 아닌가. 그녀의 섬세한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그런데 원제는 『하찮은 것들』이란다. 번역판 제목과 원제가 퍼뜩 연결되지 않아 갸우뚱했다. 원래 사람은 이름값을 한다고 아무래도 센스가 부족한가보다. 오로지 '술'에 취하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다. 누군가를 취하게 만드는 대상이 달빛과 같은 '사물'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비록 그것이 아주 '하찮은 것들'이라도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편애 리스트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는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하는 '하찮은 것들' 60개가 등장한다. 샤프펜슬, 트라이앵글, 목욕, 완두콩밥, 고무줄……. 그녀의 편애 리스트는 너무 평범하고 소박해서 그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꼭 들어야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이유를 듣고 있다보면 나도 그것이 좋아진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비싼 술이나 명품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만약 그녀가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면, 나 역시 따라서 좋아지지는 않았을테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내가 편애하는 작가 리스트에 있다. 그녀의 신작 소식이 들려오면 일단 사서 읽었는데, 최근에는 내 편애 리스트에 그녀를 계속 둬야할지 고민스러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간결한 문체로 써내려간 이야기를 좋아하지, 결코 짧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도 내가 그녀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섬세한 감성을 느낄 수 있지만,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곧 있을 <2009 서울국제도서전> 때 그녀가 방한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녀에게 사인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말을 써주세요!'라고 말해봐야겠다. 그녀가 과연 어떤 말을 써줄까? 그러기 위해선 일본어 표현부터 익혀야겠군. 

어느 날 문득, 지님보다 지니지 않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필요한 것을 비교적 고루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기보다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가뿐하지 않은가. (p22, 「조그만 백」) 

"살다 보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나잖아. 피할 수 없는 거잖아. 그보다는 지저분한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상처는 없앨 수 없지만, 지저분한 것은 치울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 지저분한 거야말로 피할 수 없지. 그리고 치울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치울 수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거야. 하지만 상처는 피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p78, 「상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여행 가방이 있다. 여행 가방은 만사를 알기 쉽게 인식시켜준다. 내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알게 된다.
입을 옷 몇 가지와 소소한 화장품, 신발, 매일 두 시간씩 읽어도 끝나지 않을 만한 책, 수첩과 연필, 담배, 약 두 종류, 안약, 치약, 칫솔.
겨우 요거? 할 만큼 적다. 당연한 일이지만 여행할 때의 짐은 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분량이어야 하고, 또 사실 그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어디서든. (p83, 「여행 가방」) 

책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읽는 동안에는 그 세계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꽃이나 잎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것처럼 기묘하게 보인다. (p97, 「말린 잎 말린 꽃」)

09-49.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2009/04/1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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