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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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그건 어쩌면 불행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불행에 끌렸다.

『일곱 해의 마지막』, 32쪽


읽은 지 두 달 만에 다시 펼쳐든 『일곱 해의 마지막』. 잘 읽혔지만 읽고나니 정리되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남아 있었고, 김연수 작가가 쓴 또 다른 시인의 이야기인 『꾿빠이, 이상』이 떠올라서, 그 책을 읽고 다시 읽게 되었다. 역시 한 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은 재독이 진리다.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은, 1962년 5월 『아동문학』에 「나루터」라는 동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시인이 "압록강 변에서 나무를 심고 길을 닦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십여 년 전 그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그 강을 건너가던 '나이 어리신 원수님'을 떠올"리며 쓴 것이다. 당시 북한 문학잡지에 실린 다른 시에 비하자면 노골적인 찬양시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 일곱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노래하던 시인은 어디 가고 찬양시만 남았을까?

(※ 이 리뷰는 사건을 시간 순으로 재구성해 정리한 것으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주의 요망. 원망 금지.)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한 백석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석은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와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이때 여러 편의 시들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모던보이'였던 그의 시들은 인기가 많았지만,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자, 그는 만주로 가 몇 편의 시를 발표하고 절필한다. 해방이 되자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간 기행(그러니까 그는 '월북'한게 아니라 그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었고, '월북시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은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이끌던 고당 선생이 통역 겸 비서로 그를 부른다. 그때만 해도 기행은 곧 좋은 시절이 오리라 믿었고, 정국이 안정되면 선생으로 살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정도의 시를 꼭 쓰리라 다짐했다.

당시 소련에서도 해빙의 물결이 일어 세계가 바뀌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해방 후 십여 년 동안의 경직된 도식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의 감동과 개성을 되찾자"(106쪽)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기행은 작가동맹 기관지에 '나의 항의, 나의 제의'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협동조합과 공장에 관한 것이라면, 내면을 깊이 추구하지 않아도, 문학도 감동이 없어도 무조건 좋은 시라고 말하는 당시의 시단에 대한 정면공격이었다."(105쪽)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 년간의 짧고도 그나마 어렴풋했던 해빙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132쪽) 말았고, 당은 이 글을 트집 삼아 그의 사상 검증에 나선다.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88~89쪽

"아이들에게 사상성보다 교양성을 심어주는 게 우선입니다. (…) 아프리카 기린에 대해 쓰면 안 되는 것입니까?"

"동무는 우리의 서정이란 우리나라 아동들의 실지 생활감정에 의거해야만 한다는 당의 창작 지침을 여태 이해하지 못하겠소? (…) 이 시에는 주체적인 우리의 생활, 우리의 감정이 없소. 주체적으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아프리카의 기린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겠소." 20쪽

1958년 5월 15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3호를 쏘아올렸다. 문학신문 편집위원회에서 이를 기념하는 시를 게재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뜻밖에도 집필자로 기행이 결정됐다. 일 년 전 가을이 시작할 무렵, 『아동문학』의 확대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기행이 발표한 동시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뒤로 동시 청탁이 끊어진 상황인지라 기행 자신도 의아한 결정이었다. 문학신문은 당의 문예 정책을 정확하게 창작에 반영시키기 위해 만든 주간신문이었다. (…) 당은 생각하고 문학은 받아쓴다는 것. 그러자면 쓰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말아야만 했는데, 기행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비판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자아'가 너무 많았다. 그 자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53~54쪽

또다시 찬양시를 쓰라고 하는 당 지도위원에게 시를 쓰지 않은 지 십수 년이 지나서 더이상 시를 쓰지 못한다고 말하는 기행. 지도위원은 "창작이 부진하다면, 그 이유를 추궁받을 것이오. 그때는 노동계급 속으로 파견돼 그들의 사상으로 재무장하는 절차를 거치게 될 것"(57쪽)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기행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고, 또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이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장이라도 집필 금지를 당할 시가 분명했다. 이제 사상 검토에 내몰릴 각오를 하고 그런 시를 읽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거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언젠가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57~58쪽

노동자가 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사상 잔재를 청산하고 노동계급의 사상으로 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상 검토 위원회를 열어 모든 작가들을 심사, 분류한 뒤 현지 파견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개조할 것을 결의했다.(133쪽) 기행 역시 천리마 작업반에 투신하겠다며 지원서를 쓸 수 밖에 없었는데, 다른 작가들처럼 희망하는 생산 현장을 고향으로 적어 냈다. 그런데 정작 기행이 파견된 곳은 생판 낯선 삼수의 협동조합이었다.(삼수는 예로부터 벽지였고, 유배지로 자주 언급됐던 곳이다. 이곳으로 유배를 갔다가 살아돌아온 사람은 윤선도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 악명 높은 곳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예전에는 기행의 동지였지만, 지금은 위원장 자리에 있는 병도를 찾아간다. 병도는 기행에게 개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옥심과 리진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기행은 1957년에 평양으로 초청 받아온 소련 시인 벨라의 통역을 맡게 된다. 자신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기행은 벨라에게 자신의 시작 노트를 건넨다. 소련으로 돌아간 벨라는 소련에서 유학중이었던 리진선에게 노트를 맡기며 번역을 부탁하지만,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리진선은 나타나지 않고 벨라는 영영 그 노트를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기행은 소련으로 돌아간 벨라에게 한글로 쓴 자신의 시를 보낸다. 당은 이것 또한 모두 알고 있었고, 이것에 대해 추궁하기도 한다. 시를 쓰지 못하는 기행의 시를 소련의 시인은 어떻게 많이 읽을 수 있었냐고 말이다.

노어번역실에서 자신 대신 번역해 달라고 기행에게 벨라의 편지를 건넸던 옥심은 아빠를 구하기 위해 소련 국적도 포기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소련 유학생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숙청 당했고, 가족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옥심이 친한 친구가 쓴 것이라며 건넨 노트에는 기행의 눈길을 끄는 시가 한편 있었다.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81쪽

기행은(작가 조차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 시는 벨라에게 건넨 자신의 시였을 것이다. 시인을 꿈꿨던 리진선이 벨라에게 돌려주기 전에 필사해 두었을 것이다.

한편, 유배지와 같았던 삼수에 도착한 첫날. 출근 통지만 받았을 뿐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역에서 난감해하고 있는 기행에게 한 사람이 알은채를 한다. 삼수읍에 있는 인민학교의 교원 진서희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작가동맹에서 파견한 시인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여학교 시절, 흠모하던 국어 선생이 수업시간이면 줄줄 외던 시"를 쓴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그런 곳에서,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시를, 다른 사라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여학생 시절, 국어 선생을 따라 외웠다는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은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우연히 만난 시인 앞에서 그의 시를 욀 줄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그 높은 자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쓸쓸히 앉어'라든가 '소주의 마시며' 따위의 비관적이고 퇴폐적인 문장을 저토록 큰 소리로 말하는 철없는 입술을 만류하기도 전에, 기행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아니, 비로소 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랄까. 타오르는 갈탄의 힘으로 한쪽 표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난로며, 좀체 귀에 와닿지 않는 변방의 사투리며, 도내에서도 손꼽히는 축산반을 자랑한다는 협동조합을 찾아간다는 사실 등등이 모두. 그때 그는 눈이 푹푹 나리는 밤 안에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었다. 그 밤과 마음이 지금 그와 함께 있었다. 196쪽

게다가 그녀는 기행이 시에 썼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기행은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때 그 시를 쓴 시인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니까.

일 년 동안 삼수에서 '노동을 통한 개조시간'을 가지고 있는 기행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 완성된 삼지연 스키장에 관한 오체르크, 즉 현장 보고의 집필이 맡겨진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써야되는지는 알지만, 기행은 결국 쓰지 못한다. 삼수에 남은 기행은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그리고 이내 불태워버린다. 서희의 부탁으로 아이들이 쓴 시를 봐준다. 시인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서희에게 이제는 농사꾼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들이지. 우선은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었지. 제목은 사슴이면 좋겠고. 시골 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면 싶었고. 착한 아내와 함께 두메에서 농사지으며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하지." 223~224쪽

이것은 오래 전 기행이 품었던 꿈이다. 조금 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기행은 삼수에서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후 40년을 그렇게 살아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작가의 말」 245쪽




8년 만에 만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여기에는 백석 시인의 7년(1956~1962년)이 담겨 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긴 백석 시인은, 전쟁이 끝난 후 땅도, 몸도, 마음까지 모두 황폐한 곳에서 더 이상 시를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쓸 수가 없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기필코 시를 다시 쓰라고 한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움튼 시어가 아닌, 그들의 사상을 담은, 그들이 원하는 시를 쓰라는 것이다.

일곱 해의 마지막(1962년)에 쓴 시를 마지막으로, 1996년 생을 다할 때까지 더이상 시를 발표하지 않았던 시인. 그의 실제 삶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소설가의 손끝에서 그의 삶이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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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7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하려면 수년은 걸리던데,
불과 두어달 만에 재독이라니
대단하시네요...

뒷북소녀 2020-12-08 10:26   좋아요 0 | URL
김연수의 또다른 책을 읽고나니...
다시 읽고 이해하고픈 욕심이 마구 샘솟아서요.
잘 이해 안되는 책은,
완전히 기억에서 멀어지기 전에
한번 더 읽는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젠 정말 이 책 내용 완벽하게 정리됐어요.ㅋㅋㅋ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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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는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렇게 그녀의 지위 혹은 역할을 설정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떠올린 '올리브'의 이미지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올리브'의 이미지를 한번 비교해 보라.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밝고 친절한 올리브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는 좋아하는 반면, 그악스러운 면이 있는 올리브는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도그녀를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꼽았고, 심지어 아들 크리스토퍼 조차 그녀가 무서웠다고 한다. 게다가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하고는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요."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교회를 나가는 헨리와 달리,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기도 하고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 때는 손님들이 성가셔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히스테릭한 면도 있어서 둘쭉날쭉하는 기분에 따라 막말도 하고, 소리도 지른다. 그러면서도 "올리브는 절대로 사과하는 법이 없는 사람"(233쪽)이었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헨리가 어떻게 올리브를 참아주는지 난 당최 모르겠어."(233쪽)

심지어 그녀를 탄생시킨 작가 스트라우트도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할 정도다.

스트라우트는 단편 「작은 기쁨」을 집필하다가, 아들의 결혼식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지쳐 '이제 손님들이 갈 때도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거구의 여인에 대해 쓰면서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의 집필을 결심한다. 그러나 올리브는 너무나 강렬한 인물이어서 페이지마다 올리브를 만나기는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그리하여 장편의 테두리 안에서 에피소드 형태로 탄생했다고. 「옮긴이의 말」, 487쪽

올리브의 이런 성격 때문에 『올리브 키터리지』는 올리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든, 그냥 지나가는 배경인물로 등장하든, 어떤 형태로든 올리브가 등장하는 13편의 연작소설 형태가 된 것이다. 첫 단편인 「약국」에서는 자신이 고용한 여직원을 살뜰히 보살피는 헨리가 등장하고, 올리브는 이런 남편에게 히스테리와 변덕을 부리는 신경질적인 아내로 묘사된다. "올리브 없이 교회에 가면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처럼 보일 것"(19쪽) 같아서 주말에 함께 교회에 가자고 올리브에게 말하는 헨리에게 올리브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아내가 남편 따라 교회 가는 게?"

"그래, 젠장, 엄청 어려운 일이야!" 올리브는 거의 침까지 뱉을 지경이었고, 분노의 문이 활짝 열렸다.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당신이 알기나 해? 종일 애들 가르치지, 염병할 교장이라는 작자하고 멍청한 회의는 줄줄이지. 장 보고 요리하고 다림질하고 빨래하고. 크리스토퍼하고 같이 숙제하고! 그런데 당신은…… 고명하신 우리 헨리 키터리지 집사님, 당신은, 고작 다른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날더러 일요일 아침을 포기하고 교회에 가서 궁뎅이 붙이고 앉아 있으라는 거잖아! 그리고 나는 그게 지긋지긋하다는 거고. 죽도록 지겨워." 19~20쪽

헨리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23쪽)없는 "데니즈가 바람직한 미국 여인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23쪽) 덩치도 크고 거칠고 센 올리브와 달랐기 때문에 데니즈를 그렇게 살뜰히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올리브에게 공감하게 됐다. 아내의 고단함보다 남들 시선을 더 신경쓰는 남편, 밖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오지랖 넓은 남편. 어떻게 이런 남편을 참아줄 수 있을까. 헨리가 올리브를 참아주는게 아니지. 올리브는 참 억울하겠다.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나는 오히려 더 올리브에게 끌렸고, 올리브의 상황에 공감하게 됐다.

올리브의 연작 소설을 탄생시킨 「작은 기쁨」은 올리브가 추구하는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이 가장 공감됐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작은 기쁨」, 124쪽

"우리 던킨 도너츠에 좀 들렀다 가." 그녀가 말한다. 그들은 창가 부스석에 앉기를 좋아했고, 그곳엔 두 사람을 아는 여종업원이 있다. 종업원은 인사만 건네곤 두 사람을 내버려둘 것이다. 「작은 기쁨」, 121쪽

13편의 이야기가 있지만, 올리브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 후 올리브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다행히 『다시, 올리브』라는 제목으로 그 다음 이야기가 나왔다. (늦게 책을 읽는 바람에 오래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렇게 지랄맞은 마누라라서 진짜 미안해.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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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7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썰을 풀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활발한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후속편도 마냥 좋더라구요...
좀만 읽어야지 했다가 바로 단박에
읽어 버렸더라는.

HBO에서 새로 드라마를 맹글어 주었
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드라마는 보셨나요?

뒷북소녀 2020-12-08 10:26   좋아요 0 | URL
아, 그 썰... 정말 궁금하네요. 활발한 토론이라...
그 후 올리브의 행보(!)가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드라마는 아직이요... 후속편까지 읽고 드람를 볼까 생각중입니다.
(열심히 찾고 있어요.ㅋㅋㅋ)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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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라!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 이후, 나는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매일 나 혼자만을 위해 자가용을 타며, 화석연료를 소비했다. 매일 한 장의 마스크를 사용하고 버렸으며, 방역을 위해 일회용 비닐장갑이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잠깐이라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으므로, 물 또한 더 많이 소비했을 것이다.

이렇게 더 소비하고 더 많이 버렸던 것들도 있는 반면, 덜 소비했던 것들도 많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더 많이 소비했던 것들보다는 덜 소비하게 된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선, 코로나 때문에 개인적인 약속이나 외출을 할 수 없었던 지난 계절엔 더 이상의 옷이나 신발을 살 필요가 없었다. 가방도 비싼 가죽 가방 대신 부담 없이 소독하고 세탁할 수 있는 에코백이면 충분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조차 꺼려져서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식재료들을 활용했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만으로도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히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 책장에 읽지 않은 책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습관적으로 샀던 책 구매를 줄이고, 책장에서 안전하게 책을 골라 읽었다.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소독을 했는데, 책은 그렇게 소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예전처럼 일상을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 역시 우리 인간이 초래한 전염병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 주변을 벗어나 더 큰 테두리의 환경과 지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래서 호프 자런의 이 글을 읽고 반가웠다.

언젠가 이 사회가 코로나19 이전의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고 난 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음식물을 많이 낭비하며 환경에 큰 해를 가하게 될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코로나바이러스 봉쇄령을 통해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과 가족, 그리고 내 삶을 위해 꼭 '필요했던' 일들, 이를테면 우리가 수년간 해왔던 운전하고 사람 만나고 물건을 사고 비행기를 타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일 등의 대다수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었다. 좋든 싫든, 훨씬 더 좋든 더 나쁘든, 우리는 지금 50년 동안 계속해서 익숙해져 있었던 소비의 습관 없이 몇 달을 지내왔고, 대부분은 잘 이겨냈다. 「한국어판 서문」, 9쪽

1969년에 태어난 호프 자런은, 자신이 태어난 이후 50년 동안 지구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달라졌는지 통계 자료를 분석해 보여준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의 인구는 두 배로 증가하고 식량 생산은 세 배로 증가했으며 에너지 소비는 네 배가 되었다. 이런 모든 변화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심각한 기후 문제가 야기됐다고 말한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라. (…)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의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가장 커다란 과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제안이라서 실현이 가능할까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이 혼란 속에서 구하는 데 시작점이 될,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127쪽

그녀는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면, 즉 전 세계인들이 공평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나누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녀 자신 또한 이런 방법을 통해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매일 관심을 가지고, 작지만 하나씩 실천하고 노력한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줄어들지 않는 소비가 초래할 기아와 결핍과 고통의 어두운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것처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기술뿐 아니라 자원 보호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내일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해결책이 제시하는 가능성뿐 아니라 그 위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고, 행동할 기회가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눈을 크게 뜨고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해야 한다. 231쪽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내 삶이 채워져 있어서 나는 희망을 갖게 된다. 233쪽

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게으른 허무주의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고. 한 가지 해결책이 우리를 구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끼니, 우리가 여행하는 모든 여정, 우리가 쓰는 한 푼에 지난번보다 에너지가 더 사용되는지 덜 사용되는지를 고민하며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갖고 있다. 235쪽

나는 그녀의 이런 태도들이 좋다. 어떤 것이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제시하며 균형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태도. 그런 것들에 전기자동차가 있다. 전기 자동차는 납과 니켈, 카드뮴 혹은 리튬으로 만들어진 배터리를 사용한다. 깨끗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전기 자동차는 다른 쪽에서 스모그를 방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를 사용하는 아이폰이나 노트북 역시 화석연료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들 중 하나다.

내가 아닌 지구의 풍요를 위해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들

마지막으로 그녀는 지구의 풍요를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제시한다. 만약 당신도 '나의 풍요'가 아닌 지구가 풍요로워지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동참해 보라. 우리는 이미 코로나 때문에 '덜' 소비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므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Step 1 : 나의 가치관을 살펴본다

자신의 일상과 관련해 가장 공감 가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큰 두려움과 가장 강렬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고려한 후 순서를 정리한다. 그중 어떤 문제는 나에게 특별히 중요하고 다른 어떤 문제는 조금 덜 와닿을 수 있다. 집중할 주제를 하나 정한다.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게 만들 주제를.

Step 2 : 정보를 모은다

일상이 나의 가치 체계에 얼마나 반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나의 습관들과 갖고 있는 물건들을 조사해보자.

Step 3 : 가치 체계에 합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실행할 수 있는 변화를 하나만 골라보자. 조금 덜 사들인다면? 편리함을 조금 더 많이 포기한다면?

Step 4 : 자신의 가치관에 합당하게 개인 투자를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대치되는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주식을 갖고 있다면, 돈을 빼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Step 5 : 내가 속한 기관을 나의 가치 체계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의 가치관과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경험을 공유하자. 상대방들이 이야기하는 제약과 우려에 귀를 기울여보자. 믿고 있는 것들을 계속 반복해서 밝히고 옹호해보자.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도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은 변할 수 있다. 239~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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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7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고 나서 왠지...

모든 걸 다 가진 닝겡의 이야기가
그냥 그래서 새 책은 패스하는 것
으로다가. 왠지 힐빌리의 스토리
가 연상되는 듯 하기도 하고...

뒷북소녀 2020-12-08 10:06   좋아요 0 | URL
저는 전작을 읽어보지 못해서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셔서 한번 읽어봤는데...
힐빌리...도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느낌인지 쉽게 연상되지는 않지만,
저는 이 한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이제 더이상...
 
로마제국 쇠망사 1 로마제국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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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 소개

1737년 영국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병약하여, 기번은 후일 "어머니와 간호사에 둘러싸인 불쌍한 아이"라고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주 중단되긴 했지만 집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15세의 나이로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내에서 벌어지던 종교적 논쟁에 기번이 연루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게 하여 대학 생활은 짧게 끝나고 만다.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5년 동안 고전을 읽고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다시 개종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1758년 영국으로 돌아오고 (…) 1763년부터 유럽 대륙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결국 『로마 제국 쇠망사』가 되었던 작품을 처음 구상했던 것은 그가 1764년 로마에 있을 때였다. 로마의 폐허를 보고 로마사 집필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쇠망사』의 제1권이 1776년에 출간되자 그 내용의 풍부함과 정교함, 박식함, 유려한 문체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2권과 3권은 1781년에, 그리고 스위스 로잔에서 집필된 마지막 세 권은 1788년에 출간되었다. 1794년 서섹스에서 사망하여 셰필드 가족 묘지에 묻혔다. 「책날개(작가소개)」

"1764년 10월 15일, 로마에서였다.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의 폐허에 앉아서 탁발 수도사들이 유피테르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중 처음으로 이 도시의 쇠망사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해제」, 10쪽

에드워드 기번은 처음 쇠망사의 집필을 떠올렸을 때보다 시간이 꽤 지난 뒤인, 1773년에서야 비로소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방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1권)』은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로마의 군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했던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제국의 재통합을 이뤄낸 콘스탄티누스 황제(서기 98~ 324년)까지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두 장인 15장, 16장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기술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초기 그리스도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되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을 읽지 않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물론 종교인에게는 이렇게 적은 부분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를 다루고 있는 제1권의 마지막 두 장(15, 16장)은 그리스도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기번을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경멸하고 우롱하는, 또 학자로서의 자질도 의심스러운 이류학자로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해제」 6쪽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편견과 편애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제국이 해체되고 난 이후의 혼란했던 시기와 중세 시대에 교회가 담당했던 역할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해제」 14쪽

늘 위태로웠던 제국의 황제들

제국의 역사가 너무 방대해서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국의 황제 자리가 마냥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거나 행복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사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는 (안정적으로) 세습되지 않았다. 누구나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황제를 죽일 수 있었고,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수 십년 동안 제국을 통치할 수도 있었지만 며칠 만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다. 황제 가까이에 있는 군인들이 주로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제국의 화려한 궁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 사람들은 오히려 세습 군주제가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세습 군주제가 확립된다면, 적어도 내란은 없을테니까. "세습 상속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보편화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습 상속이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일 뿐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488쪽)

또, 제국의 황제들은 수도 로마에 머물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이민족들의 침입과 속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전장에 나가있는 날들이 많았다. 수도 방위를 위해서 친위대만 남겨 놓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래서 반란이 더 쉽게 일어나기도 했다. 황제가 전장에서 전사했다고 하면 되니까, 로마 원로원에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승인하면 되니까.

물론 네로 황제와 같은 폭군도 많았지만, 광활한 로마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제국의 황제들은 참 고단했겠구나. 그래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처럼 나이가 들자 스스로 물러난 황제도 있었을 것이다.

로마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나 초기 그리스도교들을 다루고 있는 마지막 두 장은 읽기 힘들었다. 이 부분은 다른 역사가의 서술과 비교하며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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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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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요망지게, 안녕해!

오디오클립에서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듣는 연재 소설'로 먼저 만난 『복자에게」. 작가는 "완청은 사랑"이라고 했지만, 듣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완청하지는 않았고 맛만 보았다. 무엇보다 담담하게 읽어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좋았다. 평소 글에서 느꼈던,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런 목소리였다.

가죽 사업을 하던 부모님의 부도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들. 동생 영웅이는 어려서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남게되고, 영초롱은 제주의 한 부속섬에서 보건소 의사로 일하고 있는 고모에게 맡겨진다. 서울에 남은 사람이, 내년이면 중학교에 입학해야 되는, 게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라는게 원망스러웠던 영초롱은 새벽마다 깨어 옥상을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실수로 발목을 다친 영초롱은, 새로 전학가는 학교에 이 상태로 갈 수 없으니 등교를 미뤄달라고 했고 고모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동생 영웅과 통화를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 된 영초롱은, 우연히 복자를 만나게 된다. 영초롱이 보건소 의사 선생님의 조카라는 걸 알아본 복자는, 섬에 들어와서 할망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서 발목을 다친거라며 영초롱을 할망당으로 데려간다. 성당 고해소도 아니고 신부님도 없는데 뭘 말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던 영초롱도 할망당에서 자연스럽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24쪽)하며. 그렇게 영초롱과 복자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복자가 따르던 이선 고모와의 일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영초롱은 진학 때문에 고고리섬을 떠나게 된다.

말하기 싫은 날들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입을 열어서 공기를 들이쉬고 혀를 움직여 어떤 소리라도 만들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말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니까. 복자와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고 이선 고모와 나의 고모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79쪽

마치 어른들의 감정싸움을 대리하듯이 복자와 나의 관계는 끊임없이 나빠졌다.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른들 같은 기만의 기술이 없었고 한 번 받은 상처를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는 기술도 없었다. 잃어버린 친구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더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은 이어지지 않았다. 98~99쪽

처음에는 석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보기도 했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 불리한 상황을 소송 당사자들에게 일깨워주는, 판사의 권한이었다. 하지만 상대편 변호사의 항의를 듣거나 지나친 개입이라며 업무상 경고를 받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그 짓도 그만두었다. 결국 분노의 목적과 명분은 사라지고 그냥 분노라는 상태만 남아 활활 탔다. 화는 눈덩이처럼 뭉치고 뭉쳐져서 차가운 불면의 밤이 왔고 병원의 처방약이 없으면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위원회에 불려가 그런 소명을 열심히 한 끝에 나는 여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36~37쪽

영초롱은 판사가 되어 제주도로 돌아온다. 법정에서 욕을 하는 바람에 좌천된 것이다. 제주도로 돌아오 영초롱은 복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복자는 영광의료원과 소송 중이었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복자는 산업재해를 당했고, 의료원과의 소송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복자는 그 소송과는 별개로 그저 친구 영초롱을 보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초롱에게 영광의료원 소송이 배당되었고, 두 사람이 동창인 걸 알게 된 영광의료원 쪽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복자 또한 영초롱이 회피 신청을 해주길 바랐다. "회피인가 할 수 있다며, 판사가 그렇게 하면 안 맡게 된다며. 나한테 중요한 재판이고, 나도 나지만 여전히 치료비가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래. 우리 재판에서 이겨야 해."(216쪽) 복자는 아마도 소송에 지게 될 경우, 영초롱을 원망하며 지낼 수도 있어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복자의 그런 마음도 모른채 영초롱은 서운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에서 (영초롱이 닮고 싶어하는) 양선배에게 그 사건을 다시 배당했고,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영초롱은 법복까지 벗게 된다.

"나? 편지 써."

"누구에게?"

"그냥 친구에게 써."

"뭐라고?"

"안녕하냐고."

"안녕, 이렇게만 적어요?"

"아니, 다른 말들을 길고 길게 쓰다가 마지막에야 그렇게 쓰지. 안녕하냐고, 오늘도 안녕히 있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이상한 방식으로 쓰는 편지였다. 보통은 첫머리에 인사를 넣고 다른 소식들을 적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은 안녕이라는 인사가 가장 하기 힘들었다는 뜻 아닐까. 그 인사마저 꺼려지고 미안한 마음을 고모가 계속 품고 있었다는 의미 아닐까. 28쪽

고고리섬에서, 영초롱의 고모는 밤마다 타자기로 편지를 썼다. 편지봉투에는 "청주여자 교도소 이규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훗날 법 공부를 하면서 이규정의 판결문을 찾아보게 된 영초롱은 왜 고모가 "안녕"이라는 말을 그렇게 어려워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법복을 벗고 한국을 떠난 영초롱은, 고모처럼 복자에게 편지를 쓴다. 팬데믹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지금 당장은 부칠 수 없지만 곧 부치게 될 편지를.

복자야,

우체통은 시청역 4번 출구 앞에 정말 있어. 거기에 그게 있다는 건 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이야.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그곳에서 이 편지를 부칠 거야. 그때까지 다만, 요망지게, 안녕해. 237쪽

법정에서 욕까지 하며 열렬하게 판결을 내렸던 영초롱(나는 이 인물이 문학상을 거부하던 작가와도 닮았다고 생각했다)이, 어떤 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법복을 벗고, 심지어 복자 옆에서 소송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한국을 떠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게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에게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끝맺음 되었을까. 읽고나면 이런 질문들과 여운이 남는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김금희 스타일"이었다. 우리 삶엔 언제나 드라마틱한 전개란 없으니까,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일들도 많으니까.

마지막 이 편지는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버티고 있는 모든 복자에게, 즉 우리들에게 던지는 안부인사 같기도 하다.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81쪽

책상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잘 안 되면 다 쏟아부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 96쪽

밤의 공중에서 보면 도시는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이 도시가 어느 때보다 여름이 창창하다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나 얼음을 찾는 승객들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이 어떤 때보다도 와글거리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억들이 흔들리고 부유했다. 기억을 되살린다는 건 그렇게 한없이 풍성해지는 일인 듯했다. 통제를 벗어난 많은 것들이 나의 재단을 훼방하고 흐트러뜨려놓는 상태,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름을 닮은 시간들이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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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1-23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keep going ~

뒷북소녀 2020-11-23 15:13   좋아요 1 | URL
요망지게 안녕하시죠? 매냐님에 비하면, 더 열심히 읽고 기록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