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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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렇게 그녀의 지위 혹은 역할을 설정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떠올린 '올리브'의 이미지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올리브'의 이미지를 한번 비교해 보라.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밝고 친절한 올리브의 남편 헨리 키터리지는 좋아하는 반면, 그악스러운 면이 있는 올리브는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도그녀를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꼽았고, 심지어 아들 크리스토퍼 조차 그녀가 무서웠다고 한다. 게다가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하고는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요."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교회를 나가는 헨리와 달리,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기도 하고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 때는 손님들이 성가셔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히스테릭한 면도 있어서 둘쭉날쭉하는 기분에 따라 막말도 하고, 소리도 지른다. 그러면서도 "올리브는 절대로 사과하는 법이 없는 사람"(233쪽)이었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헨리가 어떻게 올리브를 참아주는지 난 당최 모르겠어."(233쪽)

심지어 그녀를 탄생시킨 작가 스트라우트도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할 정도다.

스트라우트는 단편 「작은 기쁨」을 집필하다가, 아들의 결혼식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지쳐 '이제 손님들이 갈 때도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거구의 여인에 대해 쓰면서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의 집필을 결심한다. 그러나 올리브는 너무나 강렬한 인물이어서 페이지마다 올리브를 만나기는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그리하여 장편의 테두리 안에서 에피소드 형태로 탄생했다고. 「옮긴이의 말」, 487쪽

올리브의 이런 성격 때문에 『올리브 키터리지』는 올리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든, 그냥 지나가는 배경인물로 등장하든, 어떤 형태로든 올리브가 등장하는 13편의 연작소설 형태가 된 것이다. 첫 단편인 「약국」에서는 자신이 고용한 여직원을 살뜰히 보살피는 헨리가 등장하고, 올리브는 이런 남편에게 히스테리와 변덕을 부리는 신경질적인 아내로 묘사된다. "올리브 없이 교회에 가면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처럼 보일 것"(19쪽) 같아서 주말에 함께 교회에 가자고 올리브에게 말하는 헨리에게 올리브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아내가 남편 따라 교회 가는 게?"

"그래, 젠장, 엄청 어려운 일이야!" 올리브는 거의 침까지 뱉을 지경이었고, 분노의 문이 활짝 열렸다.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당신이 알기나 해? 종일 애들 가르치지, 염병할 교장이라는 작자하고 멍청한 회의는 줄줄이지. 장 보고 요리하고 다림질하고 빨래하고. 크리스토퍼하고 같이 숙제하고! 그런데 당신은…… 고명하신 우리 헨리 키터리지 집사님, 당신은, 고작 다른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날더러 일요일 아침을 포기하고 교회에 가서 궁뎅이 붙이고 앉아 있으라는 거잖아! 그리고 나는 그게 지긋지긋하다는 거고. 죽도록 지겨워." 19~20쪽

헨리는 "여성 해방 따윈 관심"(23쪽)없는 "데니즈가 바람직한 미국 여인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다."(23쪽) 덩치도 크고 거칠고 센 올리브와 달랐기 때문에 데니즈를 그렇게 살뜰히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올리브에게 공감하게 됐다. 아내의 고단함보다 남들 시선을 더 신경쓰는 남편, 밖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오지랖 넓은 남편. 어떻게 이런 남편을 참아줄 수 있을까. 헨리가 올리브를 참아주는게 아니지. 올리브는 참 억울하겠다.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나는 오히려 더 올리브에게 끌렸고, 올리브의 상황에 공감하게 됐다.

올리브의 연작 소설을 탄생시킨 「작은 기쁨」은 올리브가 추구하는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이 가장 공감됐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작은 기쁨」, 124쪽

"우리 던킨 도너츠에 좀 들렀다 가." 그녀가 말한다. 그들은 창가 부스석에 앉기를 좋아했고, 그곳엔 두 사람을 아는 여종업원이 있다. 종업원은 인사만 건네곤 두 사람을 내버려둘 것이다. 「작은 기쁨」, 121쪽

13편의 이야기가 있지만, 올리브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 후 올리브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다행히 『다시, 올리브』라는 제목으로 그 다음 이야기가 나왔다. (늦게 책을 읽는 바람에 오래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렇게 지랄맞은 마누라라서 진짜 미안해.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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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7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썰을 풀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활발한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후속편도 마냥 좋더라구요...
좀만 읽어야지 했다가 바로 단박에
읽어 버렸더라는.

HBO에서 새로 드라마를 맹글어 주었
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드라마는 보셨나요?

뒷북소녀 2020-12-08 10:26   좋아요 0 | URL
아, 그 썰... 정말 궁금하네요. 활발한 토론이라...
그 후 올리브의 행보(!)가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드라마는 아직이요... 후속편까지 읽고 드람를 볼까 생각중입니다.
(열심히 찾고 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