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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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요망지게, 안녕해!

오디오클립에서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듣는 연재 소설'로 먼저 만난 『복자에게」. 작가는 "완청은 사랑"이라고 했지만, 듣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는 완청하지는 않았고 맛만 보았다. 무엇보다 담담하게 읽어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좋았다. 평소 글에서 느꼈던,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런 목소리였다.

가죽 사업을 하던 부모님의 부도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들. 동생 영웅이는 어려서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남게되고, 영초롱은 제주의 한 부속섬에서 보건소 의사로 일하고 있는 고모에게 맡겨진다. 서울에 남은 사람이, 내년이면 중학교에 입학해야 되는, 게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라는게 원망스러웠던 영초롱은 새벽마다 깨어 옥상을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실수로 발목을 다친 영초롱은, 새로 전학가는 학교에 이 상태로 갈 수 없으니 등교를 미뤄달라고 했고 고모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동생 영웅과 통화를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 된 영초롱은, 우연히 복자를 만나게 된다. 영초롱이 보건소 의사 선생님의 조카라는 걸 알아본 복자는, 섬에 들어와서 할망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서 발목을 다친거라며 영초롱을 할망당으로 데려간다. 성당 고해소도 아니고 신부님도 없는데 뭘 말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던 영초롱도 할망당에서 자연스럽게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24쪽)하며. 그렇게 영초롱과 복자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복자가 따르던 이선 고모와의 일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영초롱은 진학 때문에 고고리섬을 떠나게 된다.

말하기 싫은 날들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입을 열어서 공기를 들이쉬고 혀를 움직여 어떤 소리라도 만들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말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리니까. 복자와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고 이선 고모와 나의 고모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79쪽

마치 어른들의 감정싸움을 대리하듯이 복자와 나의 관계는 끊임없이 나빠졌다.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른들 같은 기만의 기술이 없었고 한 번 받은 상처를 아무렇지 않은 듯 포장하는 기술도 없었다. 잃어버린 친구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더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은 이어지지 않았다. 98~99쪽

처음에는 석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보기도 했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 불리한 상황을 소송 당사자들에게 일깨워주는, 판사의 권한이었다. 하지만 상대편 변호사의 항의를 듣거나 지나친 개입이라며 업무상 경고를 받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그 짓도 그만두었다. 결국 분노의 목적과 명분은 사라지고 그냥 분노라는 상태만 남아 활활 탔다. 화는 눈덩이처럼 뭉치고 뭉쳐져서 차가운 불면의 밤이 왔고 병원의 처방약이 없으면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위원회에 불려가 그런 소명을 열심히 한 끝에 나는 여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 36~37쪽

영초롱은 판사가 되어 제주도로 돌아온다. 법정에서 욕을 하는 바람에 좌천된 것이다. 제주도로 돌아오 영초롱은 복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복자는 영광의료원과 소송 중이었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복자는 산업재해를 당했고, 의료원과의 소송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복자는 그 소송과는 별개로 그저 친구 영초롱을 보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초롱에게 영광의료원 소송이 배당되었고, 두 사람이 동창인 걸 알게 된 영광의료원 쪽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복자 또한 영초롱이 회피 신청을 해주길 바랐다. "회피인가 할 수 있다며, 판사가 그렇게 하면 안 맡게 된다며. 나한테 중요한 재판이고, 나도 나지만 여전히 치료비가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래. 우리 재판에서 이겨야 해."(216쪽) 복자는 아마도 소송에 지게 될 경우, 영초롱을 원망하며 지낼 수도 있어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복자의 그런 마음도 모른채 영초롱은 서운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에서 (영초롱이 닮고 싶어하는) 양선배에게 그 사건을 다시 배당했고,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영초롱은 법복까지 벗게 된다.

"나? 편지 써."

"누구에게?"

"그냥 친구에게 써."

"뭐라고?"

"안녕하냐고."

"안녕, 이렇게만 적어요?"

"아니, 다른 말들을 길고 길게 쓰다가 마지막에야 그렇게 쓰지. 안녕하냐고, 오늘도 안녕히 있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이상한 방식으로 쓰는 편지였다. 보통은 첫머리에 인사를 넣고 다른 소식들을 적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은 안녕이라는 인사가 가장 하기 힘들었다는 뜻 아닐까. 그 인사마저 꺼려지고 미안한 마음을 고모가 계속 품고 있었다는 의미 아닐까. 28쪽

고고리섬에서, 영초롱의 고모는 밤마다 타자기로 편지를 썼다. 편지봉투에는 "청주여자 교도소 이규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훗날 법 공부를 하면서 이규정의 판결문을 찾아보게 된 영초롱은 왜 고모가 "안녕"이라는 말을 그렇게 어려워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법복을 벗고 한국을 떠난 영초롱은, 고모처럼 복자에게 편지를 쓴다. 팬데믹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지금 당장은 부칠 수 없지만 곧 부치게 될 편지를.

복자야,

우체통은 시청역 4번 출구 앞에 정말 있어. 거기에 그게 있다는 건 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이야.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그곳에서 이 편지를 부칠 거야. 그때까지 다만, 요망지게, 안녕해. 237쪽

법정에서 욕까지 하며 열렬하게 판결을 내렸던 영초롱(나는 이 인물이 문학상을 거부하던 작가와도 닮았다고 생각했다)이, 어떤 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법복을 벗고, 심지어 복자 옆에서 소송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한국을 떠나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게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에게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끝맺음 되었을까. 읽고나면 이런 질문들과 여운이 남는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김금희 스타일"이었다. 우리 삶엔 언제나 드라마틱한 전개란 없으니까,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일들도 많으니까.

마지막 이 편지는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버티고 있는 모든 복자에게, 즉 우리들에게 던지는 안부인사 같기도 하다.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81쪽

책상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잘 안 되면 다 쏟아부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자주 상처받고 여러 번 실망한 아이가 쉽게 선택하는 타인에 대한 악의. 96쪽

밤의 공중에서 보면 도시는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이 도시가 어느 때보다 여름이 창창하다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나 얼음을 찾는 승객들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이 어떤 때보다도 와글거리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억들이 흔들리고 부유했다. 기억을 되살린다는 건 그렇게 한없이 풍성해지는 일인 듯했다. 통제를 벗어난 많은 것들이 나의 재단을 훼방하고 흐트러뜨려놓는 상태,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름을 닮은 시간들이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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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1-23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keep going ~

뒷북소녀 2020-11-23 15:13   좋아요 1 | URL
요망지게 안녕하시죠? 매냐님에 비하면, 더 열심히 읽고 기록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