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1 로마제국쇠망사 1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희용.윤수인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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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 소개

1737년 영국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병약하여, 기번은 후일 "어머니와 간호사에 둘러싸인 불쌍한 아이"라고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주 중단되긴 했지만 집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15세의 나이로 옥스퍼드 대학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내에서 벌어지던 종교적 논쟁에 기번이 연루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게 하여 대학 생활은 짧게 끝나고 만다.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5년 동안 고전을 읽고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다시 개종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1758년 영국으로 돌아오고 (…) 1763년부터 유럽 대륙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결국 『로마 제국 쇠망사』가 되었던 작품을 처음 구상했던 것은 그가 1764년 로마에 있을 때였다. 로마의 폐허를 보고 로마사 집필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쇠망사』의 제1권이 1776년에 출간되자 그 내용의 풍부함과 정교함, 박식함, 유려한 문체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2권과 3권은 1781년에, 그리고 스위스 로잔에서 집필된 마지막 세 권은 1788년에 출간되었다. 1794년 서섹스에서 사망하여 셰필드 가족 묘지에 묻혔다. 「책날개(작가소개)」

"1764년 10월 15일, 로마에서였다.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의 폐허에 앉아서 탁발 수도사들이 유피테르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중 처음으로 이 도시의 쇠망사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해제」, 10쪽

에드워드 기번은 처음 쇠망사의 집필을 떠올렸을 때보다 시간이 꽤 지난 뒤인, 1773년에서야 비로소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방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1권)』은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로마의 군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했던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제국의 재통합을 이뤄낸 콘스탄티누스 황제(서기 98~ 324년)까지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두 장인 15장, 16장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기술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초기 그리스도교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되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을 읽지 않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물론 종교인에게는 이렇게 적은 부분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를 다루고 있는 제1권의 마지막 두 장(15, 16장)은 그리스도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기번을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경멸하고 우롱하는, 또 학자로서의 자질도 의심스러운 이류학자로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해제」 6쪽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편견과 편애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제국이 해체되고 난 이후의 혼란했던 시기와 중세 시대에 교회가 담당했던 역할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해제」 14쪽

늘 위태로웠던 제국의 황제들

제국의 역사가 너무 방대해서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국의 황제 자리가 마냥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거나 행복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사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는 (안정적으로) 세습되지 않았다. 누구나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황제를 죽일 수 있었고,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수 십년 동안 제국을 통치할 수도 있었지만 며칠 만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다. 황제 가까이에 있는 군인들이 주로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제국의 화려한 궁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 사람들은 오히려 세습 군주제가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세습 군주제가 확립된다면, 적어도 내란은 없을테니까. "세습 상속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보편화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습 상속이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일 뿐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488쪽)

또, 제국의 황제들은 수도 로마에 머물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이민족들의 침입과 속주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전장에 나가있는 날들이 많았다. 수도 방위를 위해서 친위대만 남겨 놓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래서 반란이 더 쉽게 일어나기도 했다. 황제가 전장에서 전사했다고 하면 되니까, 로마 원로원에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을 승인하면 되니까.

물론 네로 황제와 같은 폭군도 많았지만, 광활한 로마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제국의 황제들은 참 고단했겠구나. 그래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처럼 나이가 들자 스스로 물러난 황제도 있었을 것이다.

로마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나 초기 그리스도교들을 다루고 있는 마지막 두 장은 읽기 힘들었다. 이 부분은 다른 역사가의 서술과 비교하며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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